gbu la valeur d’enseignement
마누 덕분에 가게된 ami GBU 모임.(GBU 친구들이란 뜻이지만, GBU 졸업생. OB) GBU는 나와 2010-2010년의 인연이 있는데, 대학 기독학생회이다. 교환학생을 오면서 잠시 참여했고, 한참 IVF를 열심으로 참여하던 중이라, 아벱 친구들에게 편지를 보내는 과정에서 GBU 소개 영상을 찍기도 했다. 프랑스에 도착한지 두어달만에 찍었던 영상이라, 번역에 있어 꽤 어려움도 겪었는데, 어찌 할 생각을 했는지 나의 용감함이 낯설기도 하다.
https://youtu.be/0yJsd_lXazg?si=XfM3f_uy5oXQo53V
마누가 보내줬던 것은, 이번 토요일 ‘교사’들을 위한 GBU 모임이 있으니, 가보라는 것이었다. 지난주 그녀에게 말했던 나의 교사로서의 고민들을 - 기독교인으로서 아이들과, 동료 교사들과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지 - 보고 생각해준 것이다. 동료 기독교 교사들을 만난다는 어떤 설렘.. 어쩌면 답답했던 부분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 또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을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들이 있었다.
30분 정도 늦게 도착해서, 이미 2부가 시작되었는데, 조셉이 준비한 프랑스 공교육에 대한 클리셰(고정관념) 그리고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바캉스, 여유, 급여, 데모 그리고 왜이리도 많은 사람들이 왈가왈부하는지. 일년의 52주중 16주가 공식적 바캉스. 그러나 수업준비나 교사회의는 바캉스중에 많이 일어난다. 아이들의 숙제를 검사하고 고쳐주는 과정을 포함하면 45시간이 넘는다. 그래도 사람들은 교사하면 여유있는 직업이라 생각한다. 그 이유가.. 모든이들이 10년 이상씩 학교라는 공동체에 대한 경험이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유럽 국가들의 급여 랭킹을 보았는데, 프랑스는 스페인보다도 적은 금액을 받고 있었다는 것이 다소 충격적이었다.
다음 강의는 이반이 준비한 la valeur 에 대한 것이었는데, 기독교 교사로서의 가치를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학교가 교회가 아니기에, 어려움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어려움을 인정하게 해주는 것도 안심이 되었다. 교사공간이나 식사시간의 대화들. 어떻게 기독교인으로 대화할 것인지, 동료들의 경조사에 기도하겠다는 말을 전하는 것. 두려워하지 않고 전하라는 부분도 힘이 되었다. 도미닉과 사무엘 파티에 대한 사진을 보여줄 땐 조금 긴 정적이 있었는데, 두려워 하지 않고 이야기할 것을 학생들에게 이야기 했던 그들을 보며.. 두려워할 것이 없다고 했다, 우리는. 학생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에, 선함과, 용서함과, 인자함이 담겨있는지. 기독교의 가치관을 흘려보내고 있는지 묻고있었다. 강의 후에 작은 그룹별 모임이 있었는데, 앞선 두 교사의 죽음을 hugo는 무슬림의 문제가 아닌, 정부가 가진 문제점라고 했다.
점심식사 이후엔 심리학자인 cecile이 ‘교사에 대한 격려’로 강의를 준비해줬다. 아버지를 교사로 두었던 그녀는, 아이들과, 동료들과 어찌 지내는지, 학교 수업준비는 어떻게 준비하는지, conseil de classe는 어떻게 했는지, 그녀의 사생활의 깊이 스며들었던 그녀에게 그삶은 매우 가치있게 추억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엄마로서 그녀의 예시를 보여주며, 아이들과 하려고 이상적으로 준비한 활동을 잘 해내기 어려운 것을 이야기하며. 내가 원하는 결과와 이상을 추구하는 것보다도 더, 아이들이 만족하고, 함께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스스로 교사로서의 가치를 좋은 가르침과 결과를 주었기 때문이 아닌, 가치의 기본, 가치의 원점으로 돌아가라고. 교만한 마음에서 벗어나라고 이야기해주었다. 그것이 부담되었던 마음에 안심이 되어지기도 했다.
참여한사람은 열댓명 정도였지만, 여러 년차, 여러 과목, 여러 군별, 교사를 꿈꾸는 사람들, 교사가 아닌 사람들..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intervenant scolaire는 나 하나였던 것 같다. 마지막에 세실과 대화하며, 나의 교사로서 그리고 연주자로서의 삶에 좀 더 균형이 잡혀야 겠다고- 이야기를 마무리 한것도 도움이 되었다. 장애아동 또한 그룹에 잘 적응시키려고 하는 노력이. 아이를 어떤 결과에 이르도록 하는 것보다는 어디까지 해낼 수있는지 테스트 해가는 과정을 가지라는 것. 그러나 결국 너의 피곤함과 스스로에 대한 가치를 낮게 정의함으로서 쉽게 우리는 우울증에 빠지게된다는 것이다. 그것으로 부터 나오도록 해야한다. 나도, 나의 가치와 시간을 돌보아야한다라는 생각을 더 명확히 하게 되었다. 어떤 스텝을 밟아야 하는가 고민이 된다. 곧 있을 비자변경에서.. 새로운국면을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 줄일 용기. 담대함이필요하다.
대학시절 오래 몸담았던 IVF를 생각하게 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학사로, 한국에서 살아가는 친구들, 후배들, 선배들은 여러모양으로 모임을 지속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몇몇 친구들과 연락을 이어가고 있지만, 지나간 이야기 같은 것이 내마음 한켠에 있었다. 오늘의 시간들이 그 시간에 대한 기억을 다시 켜주는 시간이기도 했다. 아벱 덕분에 gbu를 했고, 그덕에 오늘 이 시간을 또 자연스레 참여하게 되었고.. 아벱 학사들도 다양한 모양으로 이 모임들을 이어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마음의 응원.
알레시아 거리. 집에서 40분정도의 거리이기에 걸어갈 수 있었지만, 아침엔 늦어서 못했다. 비가오고 날이 흐렸지만, 일정이 마치곤 천천히 걸어 돌아갔다. 약국에 들리고 리들에 들려 이것저것 필요한 것을 채우고 시떼 유니벡시떼 공원을 가로질러 걷는다. 하늘이 조금씩 점점 어두워진다. 그러다 공원을 감싸고 있던 전등이 모두 한번에 켜졌다. 필요하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는데, 빛이 비치니 무엇이 부족했는지 깨달았다. 필요한 때에 빛이 절묘하게 찾아왔다. 우리를 세상의 빛이라고 부르신 하나님. 그리고 그 빛이 먼저 되어주신 그분이, 눈으로 보이지 않지만, 가장 알맞은 때에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고, 쓰심을 기대하게되고, 또 인정하게 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