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글쓰기가 왠지 어렵다. 온몸에 아무 단어가 비어있는 느낌. 그 자리에 감기가 채워졌다..
나에게 바로크 바이올린 자리가 콩세바또아에 나왔다며 연락 주는 고마운 파울로. 덕분에 오랜만에 연락도 나눴고, 차 한잔도 했다. 오랜만에 만난 그는 중절모를 쓰고 왔는데, 머리카락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만났던 지난 6월과는 사뭇 달랐다. 알고 보니 몸에 종양이 있었고, 생각보다 심각해서 세 번의 치료를 거쳐야 했다. 그래서 일을 멈춰야 했고, 매일 핸드폰을 들고 분단위로 살아가던 그에게 수동적 쉼이 찾아왔던 것.. 그를 존경하는 부분은 두려움 없는 도전들인데, 지난여름부터 자신의 동네에 페스티벌을 열고 있다. 내년 여름에도 열기 위해 열심히 후원자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약속된 연주자들 중 대단히 유명한 연주자들도 있었다. (Ex. amandine beyer) 그의 열심과 열심의 방향이 한결같아 멋진 것 같다.
파울로가 약속시간보다 25분 정도 늦게 왔는데, 그것을 주시하고 있던 서빙 아저씨가 “그러면 안 되지.. 아가씨, 제일 비싼 샴페인으로 골라” 라며 파울로를 놀렸다. 아저씨는 우리의 스승인 파트릭과 매우 비슷한 분위기/ 목소리를 지녀 인상적이었다. 삶에 별로 관심 없는듯한 흐릿하고 느린 목소리. 보고 싶은 파트릭.
그와 헤어지고 나는 프낙에 들러 파친고를 한 권 더 샀다. 10유로 안팎으로 사는 건데, 파친코 책은 9,90유로. 이렇게 풍성한 책이 저렴하여 고마우면서도, 작가에겐 미안한 기분도 들었다. 이 모든 이야기를 이 푼돈으로 읽을 수 있다니! 여하튼 나의 마니토가 이 책을 좋아하면 좋겠다.
일요일 오후엔 아랑언니를 오랜만에 만났다. 언니는 한국에 동생 결혼식으로 일주일 다녀왔고, 상뜨에 연주를 다녀왔고, 여러 잔병치레로 고생하다가 지금은 꽤 건강한 상태가 되었다 했다. 가려던 카페가 꽉 차 우연히 간 디저트/식사 집이었는데, 형형색색의 색감에 몸 둘 바를 몰랐다. 오래된 일식 카페 같기도 했고, 20구의 허름한 파리 카페 같기도 했다. 그래도 모든 게 따뜻하고 담백했다.
언니가 자신이 곧 마스터가 끝난다는 말에 뭐? 언니 1학년 아니었어? 하고 되물었다. 시간이 너무 잘 흐른다.. 언니가 합숙에서 읽었던 콰르텟 이야기가 듣기 좋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콰르텟 연주.. 어렵지만 동경하게 되는.
언니와 얘기하다 샹젤리제 오케와 레쟈플로의 연주를 예약했다 했다. 연주 찾아가지 않는 나를 덕분에 반성하게 되었는데, 마침 유나언니가 급 월요일 점심쯤 연락이 와서 월요일 (당일) 저녁에 공연 보러 오지 않겠냐 했다. 기침을 안 할 자신은 없었지만, 연주는 보러 가고 싶었다. 시간도, 궁금하던 연주팀이라는 것..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간 샹젤리제 거리는 너무나 화려했다. 요즘날씨가 따뜻하긴 한 편이지만, 전구로 인해 온도도 올라간 것이 아닐까 싶었다. 화려한 거리에 잠시 겨울인걸 잊기도 했던 거 같다.
연주는 mozart의 enlèvement au serail (후궁으로부터의 탈출)이었는데, 소문으로만 듣던 le concert de la loge의 공연을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그 팀과 같이 연주하고 싶다면서.. 한 번도 제대로 들어본 적도 없었다. 로쥬는 바이올리니스트 julien chauvin의 지휘로 연주되는 팀인데, 유나언니 말대로, 바이올리니스트가 지휘해서 그런가 바이올리니스트들이 굉장히 잘한다. 첫 ouverture의 살아있는 바이올린 소리에 온몸이 깨어나는 것 같았다. 무대가 두렵지 않은 바이올리니스트들 같았고, 거트현이 차랑 차랑하게 소리 내는 것이 꼭 불꽃이 튀는 것 같이 들렸다. 크지 않은 편성에 2층 발코니에 앉은 내게 미세하게 현의 마찰음이 다 다가왔다. Musiciens du Louvres나 concert spirituel과 다른 또 다른 에너지.
오페라를 미장센 없이 진행하는 대신 해설자가 있었는데, 다 이해하진 못했지만, 그의 연출에 일반 오페라를 보는 것 보더 행복했다. 집중하게 되는 목소리와 말투..
무대뒤편 연주자들이 나올 통로에서 유나언니를 기다리다 그가 나오는데 “진짜 멋졌어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부끄러워 멀리서 쳐다만 봄..
연주 덕분에 비르지니도 보고, 칸타타 연주 후로 다시 미셸(퍼커션)도 마주쳤다.
내게 최고의 시대연주자인 유나언니가 맨 뒷줄에 앉는다는 게 그 오케스트라가 어느 정도인지 알게 되던 ㅋㅋㅋ 어느 정도 잘해야 하는지, 얼마나 내가 더 잘하고 싶은지 가늠하게 되던 시간.
한 달 만에 만난 유나언니에게 이사사실을 알리고.. 더 이상 동네친구가 아님에 좀 아쉬워하며..
샹젤리제 앞 에펠탑은.. 사진 안 찍고 못 배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