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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닮은 May 05. 2022

루틴 제작의 이유

요 며칠 생각이 많은 시간을 보내 잠을 잘 자지 못하고 나서 다시 잘 수 있게 된 이후에 일정한 루틴으로 생활을 지속하려 애썼다. 내가 평소에 하던 루틴은 아니었는데 일찍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의 교회 목사님이 늘 새벽을 깨운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게 뭔지 궁금하기도 했고, 그러면 정말 좋을까 싶어 따라 하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결론을 말하자면 좋은데, 저녁에 일찍 잠이 들어야 컨디션 유지가 가능하다. 나는 열 시 반 정도에 취침을 하는 게 가장 내 생체리듬에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성보다는 늘 감성이 앞서는 사람이라 이런 루틴을 갖는다는 것도 낯설고 어려운 일인데 사람이 일정한 루틴이 있다는 건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도구라는 생각도 든다.


한동안 잠을 잘 자지 못하면서 가장 내가 힘들었던 것은 어느 생각에 빠지면 생각의 멍을 때리느라 정신을 못 차린다는 점이었다. 그냥 멍 때리는 게 아니라 어떤 생각에 빠져 멍을 때리게 되는데 넋이 나간다는 표현에 가깝다. 나는 나답기 위해 애를 쓰며 사는 사람인데 우리나라에서 자기답게 산다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내 나이에 맞는 돈과 생활수준이 있어야 하고, 비슷한 또래집단에 계속해서 어울리려면 비슷한 정도는 되어야 하니까. 그리고 가족들과도 트러블 없이 소통하고 지내려면 보통 그렇게 한다고 하는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편이 좋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건 세수와 양치, 미지근한 물 한 잔 마시기와 꽃에 물 갈아주기이다. 아침을 깨우는 이 루틴을 마치고는 방에 돌아와 기도를 하고 정해진 분량의 성경을 읽는다. 무엇이든 기록하는 것이 습관이므로 당연히 오늘의 성경 묵상에 대한 기록도 한다. 최근에 큰 노트 한 권 분량을 다 채워 마땅한 공책을 찾다가 언니가 쓰다 남은 공책에 적기를 시작했다. 가장 나를 단단하게 눌러주는 시간. 깨달아지는 것이 있다면 더 깊은 마음을 얻으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묵상을 마치고 나서는 나를 위한 기도든, 주위 사람들을 위한 기도든 짧게라도 기도시간을 가진다. 이 모든 시간은 절대 짧을 수가 없는데 기본적으로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가 걸린다. 이렇게 시간을 갖다 보면 아침 요가에 갈 시간이 된다. 


그럼 조금 급하게 운동복을 챙겨 입고 거리 계산을 하며 요가매트커버를 들고 요가원으로 향한다. 조금은 귀찮은 마음도 있지만 요가원에 들어서는 순간 그 모든 생각들은 사라진다. 나에게 요가는 명상의 시간이고, 마사지를 받는 시원한 느낌이며, 마음을 다잡는 시간인 동시에 운동이다. 한 때는 기독교인 내게 요가라는 운동 자체가 너무 의식적이게 느껴져서 하지 말아야 하나 싶기도 했다. 지금도 그 마음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요가라는 것이 굉장히 영적인 느낌이다) 나를 건강히 세워주는 것임이 분명해서 다니고 있다. 


내가 지나치게 감성적이고 감상적이어질 때 나를 일상으로 복귀시켜주는 포인트들은 되게 단순하다. 밥 먹으라는 엄마의 말, 친구랑 소담한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코를 푼 휴지, 마시다 만 물 잔 등이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광경과 같은 아무 때라도 찾아오는 일상의 순간들. 그런 아주 현실적이고 당연하고 예쁘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순간들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래서 나는 자발적으로 만들어본 적 없는 일상의 루틴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몸에 부대끼는 일이다. 루틴 하게 지내다가 바깥에서 친구를 만나거나 일을 하고 오는 날이면 너무 지친다. 체력이 달리는 느낌이 든다. 오늘은 어린이날이었는데 쉬는 날이어서 어찌나 다행이었는지. 해야 할 일이 있는데도 도저히 할 힘이 나지 않아 꼭 해야 하는 청소만 겨우 하고 낮잠을 잤다. 


너무 많은 에너지를 생각하는 데에 쓰고 싶지 않다. 생각하고 고민하는 데에 쓸 에너지를 나눠서 움직이고 나를 돌보는 일에 쓰고 싶다. 내게 지금 주어진 잘 해내야 하는 일들. 내게 찾아오지 않았지만 너무나 바라는 일 따위에 쓰지 않고 말이다. 일에도 짝사랑이 있는데 그 짝사랑은 관계에서와 달리 참으로 끊어내기가 어렵다. 일에는 마음이 없으니까 사람의 마음처럼 싫다고 내가 아니라고 하면 아니구나 하고 돌아설 수가 없거든. 그래서 그 짝사랑은 참 오래간다. 언젠가는 넘어설 수 있는 것처럼. 하지만 지금 내게 주어지지 않은 일에 짝사랑하며 시간을 보낼 바엔 내게 찾아온 일이 내가 그토록 원하던 일이 아니더라도 반갑게 맞아주고 화답해보는 것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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