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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낌새 Aug 28. 2023

누구의 아들도 아닌 차무식

디즈니+ 오리지널 드라마 <카지노>를 분석하는 나의 정신구조 해석

<Microsoft Bing Image Creator(AI)로 생성한 이미지>


외할머니 장례식장에서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 형제들은 서로 얼마나 늙었는지 뽐내며 놀았다. 고모부는 어느 날 자다가 깼더니 눈앞에 장모님(처럼 늙은 고모)이 누워있더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최근 내가 찍힌 사진에도 어릴 적 친하게 지내던 아버지의 얼굴이 보이는데, 그럴 때면 출생의 비밀이 들통난 아침드라마 주인공처럼 불안해져서 얼른 지워버린다. 어디 생김새뿐이랴. 나의 습관과 삶의 궤적이 어쩐지 아버지나 할아버지를 닮아간다 싶으면 몸서리를 친다.


손주를 보기 바라는 욕망은 어디서 기원했을까 궁금해서 수소문하던 때가 있었다. 양육하는 즐거움과 노여움을 겪은 자식으로부터 이해받고 싶어서? 통제하고 부양하는 의무 없이 마음껏 예뻐해주기만 할 수 있어서? 재벌집은 아니지만 가업이나 자산을 믿고 증여할 혈육이 대대로 필요해서? 어느 정도 고개가 끄덕여지면서도 그런 이유가 본질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아버지의 얼굴은 나의 미래를 비추기에 마주하기 두렵다. 죽음에 더 가까워진 모습이기 때문이다. 자식의 얼굴은 나의 과거를 비추며, 마치 내가 지난 삶을 다시 사는 듯한 착각을 준다. 이런 얼굴에서 노화가 시작되면 다시 조급해진다. 생명력이 샘솟는 나의 어린 얼굴을 다시 생생히 관측하고 싶다. 마치 지구에서 아득히 멀리 떨어진 우주의 천문학적으로 오래전 모습을 바라보듯이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착각하지 않도록 애써 합리적으로 사고해야 한다. 아버지를 닮지 않으려는 나의 욕망은 어디서 기원했을까 궁리하고, 그를 누구의 아들도 아버지도 아닌 한 사람으로 재발견해야 한다.


프리드리히 니체가 선악의 저편에서 남긴 유명한 구절을 상기하며, 차무식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중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네가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그 심연 또한 너를 들여다볼 것이기 때문이다."


무식에게 아버지는 애증 하는 대상이었다. 그가 나타나면 두려웠으나 든든했고, 당분간 롤 모델이었으나 마약중독으로 가족을 착취하기에 이르자 반면교사로 전락했다. 무식은 증오하는 아버지를 극복하고자 무슨 수를 쓰든 가족을 경제적으로 부양하고 징역도 살지 않는다. 그렇게 미운 아버지에게 몰두하다가 애정하던 아버지까지 버리고 만다. 어떻게든 가족과 함께 지내려던 지긋지긋한 귀소본능 말이다. 그래서 무식이란 이름은 아는 것이 없는 무식(無識)이 아닌 식구가 없는 무식(無食)으로 읽힌다. 무식은 본보기였던 든든한 아버지의 부재를 빅보스 다니엘에게 기대어 충족한다. 친부의 장례식장에서 실제 이복형제를 박대하면서도 다니엘을 아버지라 부르고 그의 오른팔인 존을 형제라 칭한다. 한편 진짜 혈연과는 헤어져서 지내면서도 부하들에겐 한없이 너그러운 아버지처럼 군다. 베푼 신뢰를 완전히 배신할 때까지 우직하게 기다리면서도 불안에 시달린다. 이런 좋은 아빠 콤플렉스는 감'정팔이'에 휘둘리기 십상이고, 결국 누구의 식구도 아닌 상태로 비극적인 말로를 맞는다. 잘 살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앞장서서 거침없이 해내던 구세대의 몰락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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