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긴 그림자

by Qoheleth

사무라이가 낭인과 맞붙게 되었을 때, 그는 의아해했다. 칼을 쥔 손부터 딛고 있는 발까지 낭인의 모습은 칼을 잡는 자의 기본과는 아득한 거리가 있었다. 어느 도장에서도 배우지 못한 사생아 같은 칼잡이가 분명했다.


곧 서로의 칼이 맞붙게 되자 사무라이의 안정적인 자세와 강한 완력은 진가를 발휘했다. 그것은 수없는 전투와 훈련 속에 다져진 것이었다. 힘찬 연어처럼 그러나 우아한 서예가의 붓놀림처럼, 한 합 두 합 힘을 다하는 그의 휘두름은 낭인을 압도했다. 낭인은 날렵하고 가벼웠지만 도통 근본을 알 수 없는 발놀림으로 오로지 공격을 피하기만 하였다. 어느새 하나둘 모이기 시작한 군중들이 사무라이의 실력에 감탄을 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한참을 울리던 금속음이 순간적으로 멈췄을 때, 사무라이는 자신의 등이 흥건히 젖어 있음을 깨달았다. 아직 눈은 상대를 쫓아갈 수 있다. 그러나 어깨에는 분명히 피로가 걸려있다. 그는 눈을 들어 건들거리고 있는 낭인을 보았다. 그리고 눈 앞이 새파래졌다. 그제서야 그는 낭인이 노린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시간의 틈을 깨고 낭인의 칼이 그의 목을 향해 달려왔다. 마치 회오리처럼 혹은 휘청대는 것처럼, 도통 무사들의 칼에서는 볼 수 없는 각도였다. 순식간에 기습을 걷어내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사무라이는 그의 두 다리에서 후들거림을 느꼈다. 그 다음은 좌측, 등뒤로 돌아 어깨 위, 다시 걷어내니 휘감아 돌아오는 칼날. 그가 싸웠던 수많은 싸움들 속에서 보지 못했던 낭인의 움직임을, 그는 이제 예측하지 못흐고 오로지 시각과 순발력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도 조금씩 느끼고 있었다. 점차 흔들려가는 그의 집중력이 낭인의 궤적을 따라가지 못하기 시작했다.


해질 무렵이 되어서 싸움이 비로소 대단원에 이르렀을 때, 사무라이는 피에 젖은 코소데를 쥐어짜며 서산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마지막 몇 합은 낭인의 칼이 그리는 선을 도저히 쫓아갈 수 없었다. 그것은 아마도 낭인의 의도한 것이었을 터이다. 정면승부로는 방도가 없으니, 조금이라도 상대의 피로가 쌓아놓고 예측되지 않는 궤적으로 공략하는 것이 그의 노림수였을 것이다. 하루하루 성실하게 훈련으로 쌓아오던 그의 정도(正道)는 그처럼 무위로 돌아갔지만, 난세로고! 살아남는 것이 옳음일지니, 처음 스승 밑에서 칼을 잡던 시절에는 이것이 옳았지만, 세월은 흐르고 시대는 변하여 이제는 저것이 옳을 따름이로다. 그렇게 그는 기울어진 해가 만드는 긴 그림자에 자신의 운명을 비추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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