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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뒤

by 수리

그동안 정말 많은 감정을 배우고 느꼈다. 가끔은 지친 일상 속에서 위로를 받기도 했고, 국적이 다른 친구들과 감정을 나누며 호흡을 맞추는 경험은 무척 값졌다. 취미 연기 수업은 그야말로 손색없이 좋았다.


단, 한 가지를 제외하고.


공연이 다가올수록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아졌다. 로빈은 늘 숙제를 내줬다. 연극의 배경을 조사해 오라, 주인공이 되어 며칠간 일기를 써오라, 아예 일상 속에서 캐릭터로 살아보라. 처음엔 낯설었지만 신선했다. 예전에 본 어느 배우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그는 극을 준비할 때 실제 생활에서도 배역으로 몰입해 살아간다고 했다.


내 캐릭터는 단단한 내면을 가진 인물이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뭐든 할 수 있지만, 마음속에는 상처가 있는 사람이었다. 젊은 시절 가수가 되겠다며 고향을 떠났다가 실패해 돌아오는 장면도 있었다. 꿈을 좇아 도시로 떠났던 모습이 어쩐지 나와 닮아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로빈이 내준 숙제를 하나씩 해내며 공연 준비에 몰두했다.


나의 경우 본업이 있다 보니 쉽지 않았다. 퇴근 후 유리를 집으로 불러 대사를 맞추거나, 연습실에 가서 동선을 맞췄다. 녹화한 영상을 보며 내 연기를 분석하기도 했다.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가끔은 로빈이 불러 극을 함께 분석하기도 했다.


문제는 로빈의 시간 관리였다. 약속이 늘 느슨했다. 6시에 부르더니 앞 팀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게 하고, 결국 8시가 되어서야 시작하는 일이 잦았다. 차라리 늦게 시작하는 팀에게는 늦게 오라고 하면 될 텐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감독인 로빈은 자기 시간에 맞춰 스케줄을 조정했고, 우리는 늘 두 시간씩 대기해야 했다. 세 번쯤 참다가 결국 내가 터지고 말았다.


그날도 앞 팀의 연습이 예상보다 길어졌다. 원래 한시간이 었던게 2-3시간으로 늘어나는 찰나였다. 나는 로빈에게 다가가 물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냐, 너무한 거 아니냐. 이렇게 지체되면 앞으로 수업을 듣기 힘들 것 같다. 나는 본업이 있고, 연기를 취미로 배우는 거라 이런 스케줄은 감당하기 어렵다.”


그러자 로빈은 오히려 화를 냈다.


“나도 내 시간 써서 너희 연습을 봐주고 있다. 그리고 대기도 연습이다. 이 바닥은 늘 기다린다. 씬 하나를 만드는 데 오래 걸리고, 배우는 대기하는 게 당연하다.”


옆에 있던 유리는 내가 로빈에게 가기 전부터 말렸지만, 나는 결국 내 불만을 말했다. 분위기는 불편해졌다. ‘대기가 곧 연습’이라는 말이 쉽게 납득되지 않았다.


유리는 미얀마에서 온 스무 살 친구다. 미얀마의 정치적으로 불안한 상황 때문에 태국으로 유학을 왔다고 했다. 그녀의 꿈은 배우였다. 실제로 미얀마에서 드라마 촬영에 참여했고, 유튜브 영상에도 몇 번 출연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소속사에서는 그녀에게 “넌 재능도 없고 예쁘지도 않다”는 말을 일삼았고, 한 번은 회사의 어른들에게 강간까지 당할 뻔 했다며 털어놓았다. 유리는 결국 회사를 뛰쳐나왔지만, 그런 일이 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말했다.


“나는 단역이라도 맡으면 몇 시간, 반나절 이상 기다린 적도 많았다. 메이저 배우가 아닌 이상 대기는 당연해. 그러니 수리, 우리는 기다려야해. 그나마 로빈은 좋은 감독이야. 더 기다리게 하고, 무시 하는 사람도 많아."


그 말을 듣는 순간 더욱 불편해졌다. 그녀와 로빈의 말이 마치 시간의 가치는 누군가에겐 소중하게, 또 누군가에겐 하찮게 취급될 수 있는 것으로 들렸다. 또한 더 나쁜 사람이 많으니 저런 태도는 양호하다는 식의 생각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회적으로 ‘대단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 이를테면 높은 연봉을 받는 이들이나 중요한 인사의 시간이 내 시간보다 더 값지다고 사람들이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당연하다고 누가 정의할 수 있을까. 인간에게 유한하게, 그리고 공평하게 주어진 자산이 아닌가.


연극의 세계에서 감독의 권한은 적어도 로빈의 행동에서는 절대적으로 느껴졌다. 로빈은 늘 자신이 해석한 방식대로 연기를 요구했고, 그렇지 않으면 반복이 이어졌다. 그 요구는 매번 달랐다. 어제는 더 뜨겁게 몰입하라더니, 오늘은 차갑게 거리를 두라고 했다. 기준은 없고, 오직 그의 주관만 있었다. 그러니 연습시간이 계속해서 길어질 수 밖에 없었다. 감독의 감정과 해석이 절대적인 잣대가 되는 듯했다. 그것이 나를 불편하게 했고, 이 세계가 가진 위험한 지점처럼 느껴졌다.


얼마 전 방콕에 동티모르 시절 알던 친구가 찾아왔다. 지금은 광고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번아웃 직전의 내 모습이 겹쳐졌다. 어느새 매니저가 되어 팀을 이끌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대견했지만, 그녀는 매일 몰아치는 업무에 지쳐 있었다. 새벽 두세 시에 집에 가거나 아예 회사에서 밤을 새운다고 했다. 그러면서 말했다.


“광고계나 연예계는 노동 인권이 보장되지 않아. 다른 업계랑 달라. 촬영할 땐 공간 대여비, 인건비 때문에 한 번에 다 찍어야 해. 그러다 보니 밤샘은 당연해. 법적 보장도 없으니 그냥 영혼이 갈려 나가는 거지.”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이런 문제는 한국만의 특수한 상황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로빈과 유리의 말, 그리고 친구의 경험을 들으며 깨달았다. 이건 업계 전체의 문제라는 것을.


내가 만난 배우 지망생들은 모두 열정으로 가득했다. 예술이라는 분야가 대체로 그렇듯, 정말 좋아서 뛰어드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기회는 한정적이고 경쟁은 치열하다. 이런 구조 속에서는 언제든 위험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대기 시간 문제로 생긴 갈등을 두고, 내가 너무 깊게 생각한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불편했던 건 사실이었다. 다행히 로빈과는 대화로 잘 풀었다. 나는 솔직하게 내가 속상한 부분들을 털어놓았고, 로빈도 사과하며 최대한 지연시간이 없게 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세상의 문제들이 단숨에 풀리지 않듯, 어떤 분야든 부조리와 불합리함은 존재한다. 그럼에도 나는 바란다. 연기를 사랑해 꿈을 좇는 사람들이 다치지 않기를. 그들의 시간 또한 존중받기를. 어린 친구들이 권력과 통제의 위협에 놓이는 일은 적어도 없기를.


꿈을 좇는 삶, 얼마나 가치 있는가. 좋아하기에, 쫓아가는 것. 아무나 할 수 없는 선택이다. 그러나 그 열정이 한정된 기회 속에 묶여 있다고 해서, 비굴해지지 않았으면 한다. 인권이 존중받는 방향으로 이 업계가 건강하게 발전하길 바란다.


잠깐 연기를 배운 입장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과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짧은 기간 동안 내가 직접 느낀 감상을 솔직히 적어본 것이니, 너그럽게 읽어주셨으면 좋겠다.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공연 준비는 막바지에 들어섰다. 부디 무사히, 그리고 즐겁게 마무리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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