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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인 Jan 10. 2024

2. 가난을 바라보는 불편함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남미여행의 시작 도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까지는 L.A. 와 리마(Lima)에서 2번 경유하는 저렴한 항공권을 끊었다. 첫 번째 경유지인 LA에서는 23시간을 보내야 하므로 공항 근처 호텔에서 1박을 하기로 했다. 호텔비가 추가되니 결과적으로 항공권이 저렴한 게 아니다. 시작부터 우리의 계산법은 이렇듯 엉성하지만, 잠시라도 LA 땅을 밟아보고 싶었다고 급포장해 본다.      


호텔로 가는 셔틀버스 차창 밖으로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LA의 어둑어둑한 저녁 풍경이 보이자 그동안 따분하게 누워있던 온몸의 세포들이 두리번거리며 일어나 살랑살랑 움직이는 즐거운 소란이 느껴진다. 

이 여행 얼마만인가!     


1박 후 리마를 거쳐 마침내, 한국을 떠난 지 54시간 만에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했다.


체크인을 마치고 저녁을 먹으러 호텔 근처에 있는 식당에 갔다. 엠빠나다와 피자, 와인을 주문하고 비로소 첫 여행지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을 즐기고 있는데 어린아이 한 명이 다가와 구걸을 한다. 말릴 틈도 없이 남편이 곧바로 적지 않은 돈을 주머니에서 꺼내주었다.     


“인도나 캄보디아 같은 곳에서도 그렇고 여행자들이 아이한테 돈을 주는 것이 오히려 그 아이 인생에 독이 된다잖아. 저 애 가족들은 계속해서 구걸해오라 밖으로 내몰 것이고, 저 아이는 근로노동으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을 못하게 될걸?”      


못마땅함이 잔뜩 묻어있는 내 말에 남편도 언짢아져서 뭘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냐 불쌍하니까 그냥 주는 거지라고 응수하며 갑자기 분위기가 냉랭해진다.      


다행히 이 삐걱거림은 10분도 안되어 종결되었다.  

    

잠시 후, 어디선가 아기를 업은 여인이 나타나 또 돈을 달라하고, 연이어 잡상인들까지 등장하여 물건을 사달라 한다. 우리는 할 말을 잃고 서로 마주 보다 그들 모두를 조용히 외면했다. 동양인 갑부 왔다고 벌써  동네방네 소문 다 난 것 같은데? 그러게, 저기 가면 호구 한 명 있다고 자기네끼리 통화한 것 같아ㅎ. 첫 불화 위기를 농담으로 풀며 무사히 식사를 마쳤다.      


이곳에서 일상적인 일이긴 하지만 걸인과 잡상인을 물리치며 식사를 하는 것이 매번 겪으면서도 난처하고 마음이 편치 않다. 어느 스타벅스에 앉아있던 날은 1시간 동안 10명도 넘는 잡상인들이 볼펜이나 양말 등을 팔러 다가왔다. 그나마 개들이 들어오지 않았던 게 다행이랄까?   

         

오벨리스크 근처에 있는 캔터키 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적이 있다. 지날 때마다 손님이 많길래 한번 들러보았더니 피자 2조각에 음료 1잔을 원화 3,400원 정도에 판매하는 가성비 좋은 식당이었다. 하지만 피자가 짠 데다 한 조각 사이즈가 너무 커서 절반 밖에 먹을 수 없었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마친 후 접시를 반납하기 위해 식당 안으로 막 들어가려 할 때였다. 지나가던 말끔하게 생긴 젊은 남자가 걸음을 멈추고는 접시 위에 남겨진 피자를 먹어도 되겠냐는 뜻으로 느껴지는 스페인어를 한다. 얼떨결에 끄덕이니 그라샤스라고 말하며 내가 남긴 피자조각을 집어서 가던 길로 사라져 갔다. 

     

그럴 줄 알았으면 억지로 꾸역꾸역 더 먹지 말걸, 치즈와 토핑이 풍부한 쪽으로 많이 남길 걸, 아니, 불러서 하나 사줄걸... 에휴, 속상하구만... 옷차림도 단정하고 멀쩡해 보이는 청년인데 값싼 피자 한 조각 사 먹을 형편이 안되나?      


드넓은 땅과 목초지, 풍부한 자원, 사막에서 빙하에 이르기까지 아름답고 독특한 광활한 자연을 가진 나라! 과거 1900년대 무렵에는 세계 5대 경제 부국이었다는데 지금은 과거의 영광일 뿐 아르헨티나 경제는 끝도 없이 추락하며 위기를 겪고 있다.  

   

남미의 파리라 불리는 낭만이 넘치는 탱고의 도시, 스페인어로 '좋은 공기'라는 뜻의 아름다운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노숙자와 걸인들이 참으로 많다.   

   

혹시나 해를 가할까 두려워 항상 그들을 피해 다닌다. 잠재적 위험에 대한 경계심과 무력한 연민이 얽혀있는 세상 불편한 마음으로 외면하며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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