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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인 Jan 09. 2024

1. 여행도 타이밍

은퇴부부 아메리카 대륙 여행의 시작은?

“난 2월에 자유여행으로 남미 갑니다~. 몇 달 있다 올 계획인데, 갈 생각 있으면 같이 가고? 아님, 나 혼자라도 갈 것임!” 한 해가 저물어 가는 12월의 어느 날, 치앙마이 저가 골프여행을 검색하고 있는 남편에게 결연한 목소리로 땅! 땅! 선언했다.     


코로나 시국이 끝나가면서 은퇴 후 첫 번째 여행지로 찜해 놓았던 남미앓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고산병, 장거리 이동, 소매치기, 불안한 치안, 열악한 인프라 등으로 인해 체력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여행 난이도가 높다는 남미 대륙에 한 살이라도 더 젊고 건강할 때 가자는 생각인데, 또 한 해가 가고 있으니 조바심이 났다.    

 

혼자 하는 여행을 좋아하지만, 어쩐지 남미는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아 봄부터 서너 차례 남편에게 넌지시 의향을 물어봤었다. 


“이 세상에 좋은 여행지가 얼마나 많은데 하필 치안 안 좋고 위험하다는 나라를 가려고 해? 장거리 버스 타다 허리 다 나간다잖아. 낼모레면 환갑에 뇌경색 환자가 그런 후진국 여행하다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게? 난 안가. 당신도 정 가고 싶으면 혼자 패키지로 짧게 다녀와.” 가고 싶은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어 보였다.

  

이젠 정말 혼자라도 떠나야겠다고 결심하고 최후통첩을 날린 출발 2개월 전의 그날! 

“그래? 그럼 당연히 같이 가야지~.” “??” 어허라, 이 반응은 뭐지? 쉬운 남자였네. 어떻게 된 일이지?      


역시 중요한 건 타이밍이다! 

제주살이 6개월째, 식단을 조절하며 날마다 고근산과 여기저기 숲길, 한라산 둘레길을 걸으니 남편의 혈당과 체중이 내려가고 몸에는 근육 비슷한 것이 붙었다. 체력이 좋아지니 건강에 대한 자신감도 생겼다. 또, 둘이서 합리적으로 지출하며 건강하게 먹고 걷는 생활여행 패턴을 익힌 터였다. 겨울로 접어든 제주에서 거센 바람 때문에 산책도 트레킹도 못하는 날이 잦아지니 제주살이를 그만 마무리 짓고 싶던 차였다. 타이밍이 No를 Yes로 바꾸는 마법을 부린 것이다.   

   

보디가드를 겸한 든든한 동행자를 얻으니 마음속에 묵직하게 깔려있던 남미여행에 대한 불안감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마음이 날아갈 듯 가벼워졌다. 

     

여행 기간은? 

3개월? 6개월? 돌발변수가 많은 곳이라니 무슨 일 있거나 건강에 문제가 생기거나 우리랑 안 맞으면 한 달 있다 돌아올 수도 있는 거지... 일단 계획은 예산 다 소진될 때까지 다니는 걸로!   


여행 루트는? 

시계 반대방향 국민루트로 가볼까 하는데 페루 리마는 현재 시위 중이라 들어가질 못하니... LA, 리마를 경유해서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가는 편도 항공권만 티켓팅하고, 현지 가서 마음 가는 대로 흐르는 대로 다니기로 한다. 


이 때는 몰랐다. 우리 여행이 9달이나 계속될 줄을, 콜롬비아, 멕시코를 거쳐 미국 메인 주와 캐나다 동부 머나먼 PEI까지 가게 될 줄을...     


여행자보험을 가입하려니 뇌경색 입원 치료 경력 때문에 남편은 보험가입이 불가하단다. 이제 여행의 무탈함은 운에 맡기고, 80만 원 가까이 되는 보험료가 굳은 것을 기념하여 그날 밤 우리는 치킨을 시켜 먹었다.  


황열병 예방접종부터 순조롭지 않은 준비 과정을 거치며 볼리비아 비자는 결국 남미 도시에서 받기로 하고 얼렁뚱땅 짐을 꾸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2박 할 숙소만 예약한 채 출발한다.     

 

가보지 않은 낯선 길이 매일 기다리고 있는 여행, 아침마다 배낭을 메고 그 길로 나서 새로운 세상과 마주할 생각을 하니 궁금함과 설렘으로 가슴이 쿵쾅거린다. 늘 같은자리에서 반복되는 보람도 해답도 없는 책임과 의무, 관계의 피로감에서 허우적대는 나에게 청량한 휴식을 주고 싶은 여행! 멀리 떨어져 있다 보면 지혜의 밀알 몇 개 주울 수 있을까?      


30년 가까운 인생의 동반자지만 몇 달씩 24시간 내내 함께 하는 여행은 다른 국면인지라 부딪치면서 조정되는 시기가 좀 필요하겠지... 그동안 여행 가서 안 맞는다고 다툰 적은 없으니 설렘만 충전하고 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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