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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ncy Jul 13. 2022

나는 12년 차 을입니다

원로와 MZ사이

 교육공무원법에 따르면 원로교사란, 정년 전에 교장 임기가 만료되어 교사로 임용된 사람을 말한다. 원로교사에 대해서는 수업 시간의 경감, 당직 근무의 면제, 교내의 각종 행사에서 우대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보통 학교 현장에서는 교육공무원법상 원로교사로 적용되지는 않지만 교육경력이 30년 이상 또는 연령이 55세 이상 정도의 교원에게는 비슷한 대우를 하는 것이 관례처럼 이어져 오기는 했다.

 이러한 선배 교사들은 많은 교사들이 부담스러워하는 담임을 맡지도 않고, 교사들이 나누어야 하는 각종 행정업무에서도 배려를 받는 경우가 많다.

 어떤 교사의 경우 경력과 연륜에 의해 부장을 맡아주시기는 했지만 실질적으로 모든 업무는 그 부서의 계원이 총괄하고 그는 결재만 하기도 한다. 심지어 아예 계원에게 본인의 도장을 맡겨두는 분도 계신다. 그런 분에게는 '프로클릭러'라는 별칭이 생기기도 한다.


 교사는 교감과 교장 외에는 모두 직급 교사로 모두 동일하기 때문에 상하 체계가 뚜렷하게 존재하지 않고 평등한 조직인 편이다. 다만 그러다 보니, 연령별 또는 연차별로 대우하는 체계가 자리 잡힌 것 같다. 아마 연공서열을 중시하는 관료제 조직이라는 것도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실제로 현장에서의 다양한 경험들이 학생이나 학부모들과의 관계에서 많은 도움이 되기도 한다. 신규교사일 때는 한 해, 두 해 앞선 선배만 봐도 존경스럽기도 했고 조언도 많이 구하곤 했다. 이렇게 한국사회의 많은 조직들이 그렇듯 교직사회도 '나이'가 중요한 줄 세우기 기준 중 하나다.


 대개 학교마다 친목회라는 조직이 있다. 학교 전체 교직원들이 그 구성원이며 그 안에서 친목회장과 총무를 선출하여 회비를 걷고, 경조사를 챙기기도 하고 다양한 친목 도모 행사를 주관하기도 한다. 또 학교가 큰 곳은 각 교무실마다 회비를 걷어, 커피나 간식도 구입하고 그 실과 전체 친목회 간 소통 담당 등 소소한 일들을 맡아주실 총무를 정하기도 하는데 그러한 역할도 대개는 나이가 어린순으로 정해진다.

 나 역시 처음 발령받은 학교에서 막내라는 이유로 친목회의 총무를 맡았는데, 그 학교를 떠날 때까지 4년간 연임했던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전체 회식을 할 때 다른 선생님들이 식사를 다할 때쯤 자판기로 가 믹스커피를 타 와 나눠드리곤 했다. 그럼 선배들은 참, 우리 막내가 잘 배웠구나, 하며 흐뭇해하시곤 했다.

 처음 발령받은 해에 연초 학교 계획에서 변동이 생겨, 2학기에는 일주일에 하루를 다른 학교로 순환근무를 가야 했던 적이 있다. 연초에 나누었던 교과 배분에 의하면 다른 선생님이 담당하는 과목으로 정해졌다. 그러나 당시 교감선생님보다 연세가 많으신, 정년이 몇 년 남지 않은 그 선생님께서는 절대 갈 수 없다고 하셨다. 협의회에서 흥분하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 대통령이 아니라, 대통령 할애비가 와도 나는 못갑니더.


 대통령 할애비도 못 보내는데 하물며 교감 선생님어쩔 도리가 없었던 것 같다. 교감 선생님은 23살의, 운전 면허증도 없는 나를 부르셨고 자네가 가야 할 것 같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학년초 서로 협의되었던 교과 배정을 굳이 바꿔가며 다른 학교로 순환근무를 가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나의 의사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이것은 불합리하다고, 나 또한 대통령 할애비가 와도 가지 못하겠다고 말하지 않은 탓일 수도 있겠다.


 또 한 번은 사회교과 전공인 내가 체육 수업을 맡은 적도 있다. 그것을 ‘상치’라고 하는데 작은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의 수가 충분하지 않아 누군가 자신의  전공이 아닌 다른 교과 수업을 맡아야 하는 일도 생긴다. 보통 누가 상치를 할지 정할 때에는 자신의 담당 교과 수업 시수가 가장 적은 사람이 맡는 것이 암묵적이며 합리적인 룰이다. 그때 담당 교과 수업 시수가 가장 적은 분은 50대의 미술 선생님이셨다. 그분도 자신은 체육 수업은 절대 할 수 없다고 완강하셨고, 또 23살의 나는 그렇게 체육수업 담당으로 호출되었다.


 라떼는, 이라는 말을 쓴다는 것이 흔히 말하는 꼰대가 된 것 같아 쓰고 싶지 않지만 정말, 라떼에는 이러한 일들이 많았다. 그런데 요즘 학교를 둘러보면 이러한 라떼 사건들이 확실히 많이 줄어든 것 같기는 하다. 요즘 학교는 라떼들 대신 MZ들이 대세이다.


MZ세대란, 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통칭하는 말이라고 한다. MZ세대는 집단보다 개인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여기며 자신들을 위한 목소리를 낼 줄 안다. 조직의 일률성보다 개인의 능력 또는 자율성을 더 중요하다고 인식한다.


10여 년 전만 해도 후배 교사들은 좀 하기 싫고 번거롭더라도 전체의 분위기 또는 관례 때문에, 또는 거절 의사를 표현하기 힘들어서 떠안듯이 일을 맡는 경우도 있었지만(내가 그러했듯이) 요즘 MZ세대 교사들은 과감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할 줄 안다. 막내라는 이유로 교무실의 총무를 맡거나, 어리다는 이유로 다른 선배들에 비해 수업 시수를 1~2시간 더 맡는 일도 없다. 나의 지인인 50대 선생님은 20-30년 전에는 혹시 개념 없는(?) 후배가 있을 경우 40대 중견 교사가 따로 불러 야단을 치기도 하고 조언을 하기도 했다고 하셨다. 아마 요즘에 그렇게 하면 미투의 대상이 될 것이다.


 어떤 문화가 더 옳은가에 대해 논하기 전에, 우선 나는 경력 12년 차의 애매한 세대로서 억울함이 느껴질 때가 있다. 마치 과거에 시집살이를 호되게 겪은 현재의 시어머니들은 지금, 역으로 며느리살이를 하기도 하는 것처럼.

 

 어떤 지인은 학년부장을 맡았는데 전체 친목회에서 학년실마다 총무를 뽑아주십사 했다고 한다. 그런데 학년실 대부분 선생님들은 다들 친목회에 가입하지 않겠다고 했다. 선배 교사들에게 회비를 걷 간식을 사 오는 등의 일을 시킬 수는 없을 것 같고, 그래서 본인이 학년부장도 하면서 총무도 해야 할 판이라고 웃지 못할 얘기를 전하기도 했다.


 요즘은 각종 민원사항들이 많아 담임을 많이 기피하는 추세이다. 그런데 보통 50대 이상인 선생님들은 특별한 사유 없이도 담임을 맡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10개월인 시기,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을 했을 때도 그 해는 배려를 해주십사 하고 바랐건만 고등학교 1학년 담임을 하며 담임의 고유업무였던 야간 자율학습 감독과 토요일 자율학습 감독을 꾸역꾸역 하게 되었다. 그때의 비담임 선생님들은 물론 각자 개인적인 사정들은 안고 있었겠지만 대부분 50대 이상의 선배들이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했던가. 젊어서 고생을 하면 배우는 것도 많고 또 나이 들어서 보상받을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요즘의 추세를  봤을 때 내가 50대 이상의 원로 교사가 되었을 때에는 지금과 같은 대우는 없을 것이라고 감히  확신한다. 아마 칼 같은 1/N의 문화이거나 오히려 호봉이 높은데 받는 만큼 더 하시오,라고 할지도 모른다. 나는 젊어서도 고생하고 나이 들어서도 고생하는 운명일까. 마치 샌드위치 빵 사이에 낀 햄이나 치즈 같은 존재일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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