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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ncy Apr 04. 2023

오늘도 상처받는 나에게

교사의 인권 부재현장

 오늘 있었던 일이다.

 아직도 심장이 떨리고, 처리해야 할 과정이 남아있는 일이라 기록하기 조심스럽지만 누군가의 따뜻한 위로와 공감이 절실한 밤이라 나의 공간에 글을 남겨본다.


 수업 시간 맨 뒷자리에 앉아있던 학생 한 명이 갑자기 일어나서 걸어 나왔다.

그리곤 나에게 마스크 한 장을 건네주고 들어갔다. 그 마스크에는 sex, sex boy, 시발 등이 적혀있었다.


 깜짝 놀란 나는 이게 무엇인지 물었고, 그 학생은 어떤 친구가 준 것이라며 킥킥거리며 그 친구를 가리킨다. 그 친구는 자기가 그린 건 아니고 창가에 있던 것을 주워서 아까 준 것이라고 항변했다.

 누가 그린 것이든, 누가 준 것이든, 그러한 것은 둘째치고 수업 도중 갑자기 이것을 들고 나온 이유를 물으니, 친구가 자신에게 그걸 준 것이 잘못된 것이니 선생님에게 이르러 나왔다고 하는 당사자.


우선 수업은 이어나가야 하겠기에, 수업은 그런대로 다 진행한 후 해당 학생을 교무실로 불렀다.


 마스크를 건네받은 건 수업시간보다 더 전이었고, 자신도 그걸 보고 불쾌해서 나에게 얘기하는 거라던 그 학생은, 마스크를 들고 나와 나에게 건네줄 때 분명 웃고 있었다.


 여기에 적힌 단어들이 무슨 뜻인지 충분히 알 것이며, 수업시간 도중 굳이 앞으로 나와 공개적으로 이것을 건넨 너의 행동은 선생님에게 친구의 불쾌한 행동을 신고하기 위한 것이라 볼 수가 없다고 하자 그 학생은 갑자기 죄송하다는 말만 의미 없이 반복했다.


 죄송하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그 학생이 자신의 행동이 지니는 의미를 명확히 알고 또 거기에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모른다면 책임지는 것을 가르치는 것도 학교와 교육의 몫이다.


 이것은 수업 방해행위이자 성희롱이며, 나는 교권침해행위라고 생각하고 절차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얘기하며 간단히 경위를 적도록 했다.

 그리고 돌아서서 가려는 학생을 담임선생님께서 훈계하시는 소리도 들려왔다.


 여전히 억울하다는 듯한 학생의 볼멘소리 어렴풋이 들려온다.


 내 앞에서 죄송하다고 얘기하던 것은 그저 그 순간을 회피하기 위한 말이었구나, 다시 한번 확인된 그 학생의 무책임함.


 특히 나는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부터는 내 아이가 그러하듯, 학교의 모든 아이들도 가정의 한 소중한 자녀라는 생각으로 대하려고 노력했다. 새 학기 첫 시간에는 아이들에게 늘 이렇게 당부한다.


나는 너희를 존중한다. 너희들도 나를 동등한 인간으로, 존중해 주기를 바란다.
존경까지는 바라지 않을 테니.


 그 학생 베슬거리던 웃음.

 마스크를 건네던 손.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궁금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던 눈빛.


 모든 것이 수치스러웠다.

 나머지 학생들을 위해 수업은 이어가야 했다.

 이곳에 나의 인권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교권보호위원회 개최를 희망한다고 교감선생님께 말씀드렸다. 나의 의견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겠다며, 그러나 학생 지도를 위해 무엇이 좋을지 내일 다시 관련 선생님들과 모여서 논의해 보자는 교감선생님의 말씀.


 안된다는 말씀은 아니었지만 내 의사를 한번 표현했음에도 다시 한번(혹은 두세 번이 필요할지도) 강력하게 표현해야 할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더 심장이 조여 온다.


 혹시나 관리자나 주변 선생님들이 굳이 일을 만드네, 라든가 잘못했다고 사과하는데 한번 넘어가주지 등의 시선으로 본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 머리가 지끈거린다.


 교권이 위협받은 상황에서 상처받은 나를 회복하고 스스로를 지키는 것은 생각보다 더 많은 굳건함과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당분간은 많은 에너지가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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