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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ncy Apr 04. 2023

무례함과 솔직함 사이

 가끔 솔직하다는 말로 자신의 무례함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얼마 전 학교설명회 겸 학부모총회가 있어 많은 학부모님들이 학교에 방문하셨다. 강당에서 설명회가 끝난 후, 담임을 맡고 있는 학급의 학부모님들과의 상담시간을 위해 교실로 가는 중, 어떤 어머님이 반갑게 웃으며 다가오셨다.

 나를 아시는 분인가 싶어 혹시 10반 어머님이신가요? 라며 물었더니 마스크를 벗으시며 나야, 하시는 어머님.


 알고 보니 7년 전 같은 학교에서 근무했던 선생님이셨다. 학부모님이 되어 우리 학교에 방문하신 것이다.


- 어머 선생님, 안녕하세요? 우리 학교에 선생님 둘째아이가 다닌다는 얘기는 들..

- 왜 이렇게 늙었어? 아줌마가 다됐네 아줌마. 세월은 못 속인다더니. 그렇게 예쁘더니(젊더니.. 였는지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반갑게 인사하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폭격. 그 뒤로 늙었다, 아줌마가 되었다, 어떡하냐 등의  걱정 아닌 걱정스러운  마디 쏟아내곤 내 옆을 지나가셨다.


 잠시 몇 초간은 멍했고 곧 불쾌함과 함께 3년 전쯤, 우연히 동네 족욕카페에서 만던 기억이 스쳐갔다.


 차.

 

 그때도 만나자마자 나에게 살쪄서 못 알아봤다며 왜 이렇게 살쪘냐는 폭격을 쏟아냈었 사람이었지.

(그땐 아이를 낳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 때라 실제로 몸이 좀 불어있기도 했다.)


 무사히 학부모상담을 끝내고, 퇴근해 집에 와서도 불쾌한 기분이 사라지지 않았다. 사실 불쾌함보다 그런 말을 듣고도 대충 웃어넘기며 지나갔던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아마 몇 년간은 이불킥감일 듯한, 모욕적인 순간에도 바보처럼 웃고 있던 나 자신.

 

 내가 가장 싫어하는 나의 모습.


 선생님도 세월을 정통으로 맞으셨네요,라고 되받아치는 내 모습을 수십 번 상상해 보았지만 이미 때는 지났을 뿐.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도 조잘조잘 있었던 이야기를 풀어내며 다시 한번 곱씹고, 그 선생님과 친분이 있는 다른 선생님에게도 털어놓았다.


- 원래 그 언니가 팩폭을 잘해.


 팩트라니.  다시 한번 묘하게 기분 나쁘지만.


 오랜만에 만난 자신한테는 얼굴이 왜 그러냐며, 해골 같다고 팩폭을 날리더라는 일화를 듣고 모두에게 공평하게 독설을 날리는구나 싶어 화난 마음이 살짝 누그러지, 정말 바보같은 나였다.

 나만 싫어해서 그런 건 아니었구나. 하는 묘한 안도감랄까.


 그러나 여전히 나는 불쾌함을 표현하지 못했던 그날의 나를 후회한다.


 언젠가 그 선생님을 다시 만나기를 바라기도 한다. 그때는 꼭 얘기해 줘야겠다. 당신은 솔직한 게 아니라 무례한 것이라고.


 예의를 갖추면서도 솔직하게 말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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