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ancy Jul 18. 2023

잔소리는 그녀의 힘

 어느 연예인이 방송에서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그 연예인은 40이 넘은 비혼남이었는데, 70이 넘은 노모에게 일부러 이것이 먹고 싶다, 저것이 먹고 싶다 하며 어머니에게 반찬을 요청한다고 했다. 그러자 주변에서는 불효자 아니냐며 비난했지만 그 연예인은 자신의 어머니가 자신에게 반찬을 해주고, 어지러운 방을 정리해 주며 삶의 이유와 활력을 찾는다고 했다. 


 나이가 들면서 체력적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다. 퇴직을 하거나 아이가 성장하고 독립하면서 자연스레 해야 할 일들이 줄어들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자기 효능감이 줄어드는 것 같다. 아마 그 연예인이 말하던 바는 그것이리라.


 어느새 다 커버린, 경제적인 소득까지 높은 자식에게 더 이상 자신의 도움이 필요 없는 것 같다 느낄 때의 외롭고 쓸쓸한 어머니의 마음을 생각하여 자꾸 어머니에게 나름의 미션을 준 것 아닐까. '어머님은 아직도 나에게 필요한 존재입니다. '라는 메시지를 담아.


 종종 우리 집을 찾는 엄마도 오실 때마다 잔소리를 늘어놓으신다. 하루는 여기 와서 이리 봐라, 하면서 나를 현관 쪽으로 부르시더니 아무렇게나 벗어둔 우리 가족들의 신발을 가리키셨다. '이렇게 온 가족이 닮은 듯이 벗어두냐' 하시며 우리들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하신다. 

 또 어느 날은 주방의 개수대를 가리키며 A세제와 B세제를 미온수에 섞어서 철수세미로 닦아야 깨끗해진다며 나에게 친절하게 알려주시곤, 본인이 손수 닦은 거름망을 보여주신다. 그 거름망은 내 손이 닿았을 때보다 훨씬 더 깨끗하고 윤이 났다.


 몸도 마음도 피곤한 어떤 날은 엄마의 잔소리가 달갑지 않다. 사실 나는 일터에서 돌아와 정신없이 집안을 쓸고 닦고 광을 내는 것보다는 조금 어지러운 집안이더라도 내 아이와 즐겁게 놀이하고 대화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나름의 철학이 있다. 게다가 오랜만에 찾은 딸의 집에서 여기저기 청소할 곳을 찾아다니느라 허리도 못 펴고 있는 엄마보다는 함께 맛있는 것도 사 먹고, 두런두런 앉아 서로의 근황에 대해 얘기 나눌 수 있는 엄마의 모습이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늘 나의 집에서 고무장갑을 끼고, 걸레를 잡고 있는 엄마의 모습은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기도 한다. 그래서 엄마가 온다고 하시는 날에는 늘 사전에 화장실 청소와 분리수거 등 엄마가 점검할 것 같은 장소는 깨끗하게 치워놓기도 한다. 그래도 엄마의 촘촘한 레이더망에는 어림없이 허점이 드러나고 만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오랜만에 우리 집을 찾은 엄마는 분주하게 움직이셨다. '아이구, 우리 소영이가 아직도 이런 게 안되네' 하시며 내가 어질러놓은 화장대와 신발장을 정리하시는 엄마. 순간 엄마의 얼굴에서 흐르는 미소를 본 것은 내 착각은 아닐 것이다.


 더 이상 엄마의 도움이 필요 없을 것 같은, 서른 다섯 살의 똑순이 딸이 사실은 허점이 많고 여전히 엄마의 손길을 많이 필요로 한다는 사실은 엄마가 나른한 노년의 삶을 살아가는 또 하나의 힘이 되는 것은 아닐까, 란 생각.

 

 딸의 마음으로는 정말 엄마 자신만의 삶 속에서 의미를 찾고 에너지를 쏟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평생을 가족과 자식에게 헌신하고 살아온 엄마에게는 그것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나도 이제는 받아들여야겠다.


 여전히 엄마의 쏟아지는 잔소리는 부담스럽겠지만, 이제 나는 잔소리들을 늘어놓는 엄마의 미소에서 위안을 찾으려고 한다.

 오늘은 오랜만에 엄마에게 전화를 드리려고 한다. 엄마표 만능 간장양념장이 떨어졌으니 다음에 오시게 되면 한가득 만들어 놓고 가달라고 부탁을 드려야겠다. 실제로 내가 만든 양념장은 엄마가 만든 것만큼 맛있지가 않다.





 

 





작가의 이전글 한때는 소녀였던 우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