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권침해를 계기로 심리상담을 다닐 때의 일이다. 주로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상황들에 대해 털어놓게 되었다.
마침 그 주에 점심시간에 담임학급 교실에 자주 출입하는 학생을 지도한 일이 있었다. '타반 출입 금지'라는 생활 지도 규정이 있었고, 어길 경우 상벌점제에 따라 벌점 1점을 줄 수 있다. 우리 반 아이들이 타반 학생들이 점심시간에 자주 와서 불편하다는 얘기들을 했고, 또 생활 지도 규정에도 있는 사항이기에 점심시간이면 수시로 교실에 가서 확인하고 타반 학생들은 내보내기도 했다. 흔히 있는 일이라 벌점을 부여하지 않고 타일러 내보내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유독 우리 반에 자주 놀러 오는 학생이 있었는데, 그날도 역시 점심시간에 우리 반 교실에 그 학생이 있었다. 교실 밖으로 불러내며 그만 돌아가라고 하자, 그 학생은 단번에 후다닥 돌아가지는 않았다. 여느 때처럼. 여러 번 그 학생의 이름을 부르고서야 움직이기 시작했고 볼멘소리로 "아.. 그냥 좀 있으면 안 돼요?"라고 했다.
-응, 안돼.
- 왜요?
- 타반 출입금지가학교 규정에 있잖아.
-왜요?
-다른 반 애들이 그 교실 물건을 그냥 가져가는 경우도 있고, 그 교실은 그 반 아이들이 쉬는 공간인데 방해할 수도 있고. 또...
-저는 그런 짓 안 하는데요?
-네가 한다는 게 아니라, 그런 일들이 발생할 수 있어서 원칙적으로 금지...
-아, 저는 안 한다니까요?
계속 내 말을 툭툭 자르며 신경질적으로 말하는 아이.
결국, 그 학생을 교무실로 불러 싫든 좋든 정해진 교칙은 모두 지켜야 하고 나는 그것을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일러주며 앞으로 우리 반 교실에 들어오지 않을 것을 다짐받았다. 공손하지 못했던 태도에 대해서도 한번 더 짚어주었다.
내가 정한 교칙도 아니고 나는 교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나의 일을 하는 것뿐인데 아이들은 왜 이런 교칙이 있냐, 꼭 지켜야 하냐 등 온갖 불만과 비난들을 쏟아내며 따르지 않는 일들이 많다. 때로는 언성을 높이며, 때로는 비속어들과 함께.
이러한 사정에 대해 상담사에게 털어놓는 중이었다. 그러자 상담사는 자연스레 학생의 불평에 규칙의 필요성을 설명하려고 한 나의 대응에 문제를 제기했다.
- 왜 그런 교칙이 있는지 물으니까 저는 설명한 건데요..
- 그 학생은 그냥 친구 교실에서 놀 수 없으니 짜증이 난 거고 화를 표현한 거예요. 왜 그런 규칙이 있는지 궁금한 게 아닌데 선생님은 너무 길게 설명하려고 하셨네요.
- 그럼 전 그 질문에 뭐라고 해야 하나요?
- 응, 그렇지~? 그런데 어쩌겠어, 교칙인 걸. 선생님도 어쩔 수가 없다야.
매우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짜증이 난 아이를 공감해 주면 된다는 뉘앙스의 상담사의 모범정답이 돌아왔다.
저것이 그 유명한, 마음 읽어주기인가?
순간 억울함과 분함만이 내 가슴에 가득 차올랐다.
교칙을 안지키고, 지도하는 교사에게 툴툴거리며 불만을 쏟아내는 아이보다 그런 아이의 속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나를 탓하는 것 같았다. 학생이 나에게 한가득 자신의 분노를 쏟아부어도 나는 그언행 너머에 있는 마음을 보고 공감하고 이해해야 할까. 그것이 진짜 어른이고 교사의 모습인 걸까.
피로감이 몰려온다.
그럼 내 마음은 누가 읽어주지?
시대적 가치는 변하게 마련이고 육아, 훈육, 교육에도 나름의 트렌드가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기질육아, 공감육아 등이 트렌드이고 그것이 교육현장에도 이어져온다.
학생이 친구를 때리는 등 문제행동을 해서 부모님께 전화를 해도 '우리 아이가 왜 그랬을까요? 이유가 있을 텐데'라는 반응이 나오기도 하고, 학생을 훈계하는 상황에서 '제가 잘못한 건 맞지만 그렇다고 샘이 화내니까 기분 상해서 소리 지른 건데요.'라는 말을 듣는 것도 흔한 일이다.
이유가 있으면 모든 언행은 정당해질까? 내 기분이 상하면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도 허용되는 걸까?
공동체 생활에서 안 되는 것은 안된다는 것, 지켜야 할 선은 지켜야 한다는 것은 익혀야 한다. 아이들은 제 마음대로 다 할 수 없는 상황에 때로는 좌절하겠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더욱 성숙할 수 있다. 아이의 마음과 기분을 헤아리고 기질에 따라 대응하는 것도 물론 필요는 하겠지만 인생을 살아가며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그 아이를 그렇게 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감정이 태도가 되지 않도록, 상대방의 감정과 기분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교육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