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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숙 Oct 07. 2024

할머니의 사랑

온전한 사랑은 올곧게 자라게 한다 

"엄마, 10월 4일 재량휴일이라 학교 안 가요."

"아빠는 3일 날도 출근이라는데 우린 뭘 할까?"

아이와 동시에 "우리 강릉 갈까요?" "강릉 갈까?"

그렇게 모녀 여행이 또 시작되었다.




"겨울아, 이리 와 보렴."

할머니의 부름에 달려간 거실에는 돼지저금통이 놓여 있었다.

"할미가 겨울이 주려고 한 푼씩 모았단다. 우리 함께 얼마나 모였나 세어볼까?"

거실 한복판에는 은색 동전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셋이서 쪼그려 앉아 동전을 10개씩 탑을 쌓았다.


"만원 이만 원 삼만 원...... 십만 원"

"할머니, 십만 원이 넘어요!"

"더 모으려고 했는데 무거워서 들 수 있어야지. 우리 겨울이 이걸로 필요한 것 사렴."


친정엄마는 항상 겨울이를 주겠다며 어릴 적부터 동전을 모으셨다. 힘든 시절 한푼 두푼 모은 습관이 몸에 밴듯하다. 덕분에 아이도 돈이 생길 때마다 저금통에 돈을 모았다. 중학생이 된 아이는 할머니의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할머니를 힘껏 안아주었다.


할머니와 손녀는 눈을 맞추며 자신들의 언어로 사랑을 표현한다.

"하늘만큼 땅만큼 우주만큼 사랑하는 겨울이, 할미가 많이 사랑해."

"할머니 저도 하늘만큼 땅만큼 우주만큼 사랑해요."

어쩜 이리도 사랑이 넘칠까.




할머니의 사랑이 가득 담김 동전을 들고 셋이서 은행에 방문했다.

직원은 친정엄마를 보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어르신 오셨어요? 손녀 주려고 모으신 동전 이제 들고 오셨네요. 어르신이 말씀하신 손녀군요. 안녕?"

겨울은 낯선 어른의 관심이 부담스럽지만 환한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손녀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예쁘고 사랑스럽다는 할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며 온전한 사랑을 받으며 자라는 겨울이는 바른 아이로 자랄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단 한 사람만이라도 온전한 사랑을 주면 그 아이는 올곧게 자랄 수 있다. 시인 나태주도 6남매로 사랑을 나누어 받았지만 외할머니의 온전한 사랑으로 잘 자랄 수 있었다고 했다. 사랑은 어떤 것도 치유할 수 있는 힘이 있다. 아이에게 할머니, 할아버지가 살아계신다는 것은 축복이다.


아이가 팔십이 넘은 할머니의 손을 잡고, 부축하며 걷는다. 어릴 적에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의지하던 꼬맹이가 이제는 중학생이 되어 할머니를 부축하는 모습에 아이는 생각보다 빨리 자람을 느낀다.


사랑을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사랑은 할머니처럼 하라고. 무조건적인 사랑이 바로 할머니의 사랑이다. 존재 자체만으로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아이는 오늘을 평생 잊지 못할 거다. 어른들이 주시는 용돈을 단 한번도 내가 쓴 적이 없다. 아이 통장에 고스란히 입금해 주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 #삼촌


훗날 아이가 자라서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는지 느낄 수 있도록 매달 '사랑해 겨울아'로 자동이체를 걸어두었다.


힘들 때 통장에 찍힌 사랑을 보며 이겨낼거다.


사랑은 어떤 것보다 강력하다.

오늘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나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다. 가슴이 몽글몽글해지는 날이다.



할머니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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