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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숙 Nov 04. 2024

나와 당신의 하루가 특별해졌다

남편의 생일기념

11월 달력을 넘겼다. 빨간색의 동그라미가 눈에 들어온다. 남편의 생일과 친구들과의 모임이다.

"올해는 당신 생일이 평일이네. 어떻게 보내고 싶어요?"

"......"


나이가 들어갈수록 생일의 특별함보다는 일상의 특별함이 좋다. 이번에는 가까운 산을 올라가기로 했다. 사춘기가 시작된 아이의 의견을 존중해 둘이서만 가기로 했다.


주말 아침 부지런을 떨어 오른 산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던 우리는 서로에 관한 이야기와 연애시절 이야기로 지금이라는 시간을 온전히 즐기고 있었다. 처음 서봉산을 올랐을 때가 생각이 난다. 체력에 자신 있다던 나는 온데간데없고 저질 체력을 가진 나와 마주하면서 운동이 필요함을 아니 근육이 필요함을 절실하게 느꼈었다.


그때에는 힘들었기에 말을 하기보다는 빨리 정상에 도착하기만을 바라며 오르고 또 올랐다. 체력이 좋아지자, 쉼 없이 대화를 나누어도 힘들지 않다. 왕복 1시간 코스를 우리는 40분 만에 찍었다. 근육이 붙자, 기초대사량이 올라가면서 삶의 질이 높아졌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모든 것을 포근히 안아주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위로받는 것 같은 느낌은 뭘까. 최근 새로운 도전을 위해 시도했던 일이 생각처럼 되지 않아 속상했었다. 뻥 뚫린 광경을 보며 마음속으로 외쳐본다.


"Never give up"


아이의 점심을 챙겨주고 남편의 생일 선물을 사러 시흥프리미엄아웃렛으로 이동했다. 11월 행사로 10일까지 10~30% 세일을 하고 있었다. 남편의 골프화를 사기 위해 풋조이와 아디다스 매장으로 이동했다. 분명히 있었는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오랜만에 들렀더니 매장이 없어졌다.


"당신 나이키골프화는 어때요?"

"나이키는 디자인이 이쁘죠. 다만 발볼이 작게 나와서 나한테는 딱이에요. 당신은 어떨지 모르겠네요."

고민하던 남편은 나이키매장에 가보자고 했다. 나이키골프화도 발볼이 큰 사람들이 신을 수 있는 디자인들이 제법 나오고 있었다. 남편은 파란색의 골프화를 신어보더니 착감이 좋다며 놀란다. 결정장애가 있는 남편이지만 이번만큼은 빠 결정을 하고 녀석을 데리고 왔다.


남편의 빠른 결정으로 기분 좋게 걷는데 내 눈에 들어온 옷이 있었다. 깔끔하면서도 질리지 않을 패딩점퍼다. 두껍지 않아서 한겨울이 시작되기 전까지 유용하게 입을 수 있다. 남편은 심플해서 싫은 눈치였지만 막상 입어본 후 본인이 더 마음에 들어 했다. 가격이 사악해서 고민하는 남편을 위해 시원하게 결제를 해줬다.


내 소중한 단짝인 그가 웃는다.

그가 행복해한다.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내는 당신은 충분히 받아 마땅합니다.


마지막으로 새로 생긴 제줏간 고깃집에 방문하기로 했다. 제주도에 놀러 온듯한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어 꼭 한번 가자고 했었는데 바로 그날이 오늘이다. 고기도 계란찜도 볶음밥도 나쁘지 않음에 단골집이 하나 더 생길 듯하다.


남편은 소주, 나는 하이볼, 아이는 오렌지 주스로 우리 집 가훈으로 건배를 외쳐본다.

"다 잘될 거야."

이것이 진짜 행복이다.


photo by misookjung22



우리가 서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통장 잔고가 아닌
좋아하는 것의 잔고다.

최인철의 <아주 보통의 행복> 중에서


생일날 남편이 사라졌다

가족등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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