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와 폭력으로 만들어진 훈육은 아이를 결코 올바른 성장으로 이끌 수 없으며
오히려 폭력적이고 반항적으로 만든다.
모친이 내게 한 가장 큰 잘못은 내가 나를 아끼는 방법을 의도적으로 상실하게 만들었다는 거다.
말이 거창하지, 그냥 '세상의 모든 것들은 내 잘못'이라는 생각을 습관이 되게 키웠다는 뜻이다.
그게 정말 내 잘못이든 부당하든.
그녀는 보여지는 것들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러니 소위 말하는 '자식농사'를 누구보다도 잘 해내야 했었고 결론적으로 나는 모든 감정을 숨겨야했다.
어른들은 그런 나를 참 좋아했다.
넘어져서 피가 흘러 내 눈앞에 지나갈 때도 울면 안되었고, 모친이 밥을 떠먹여줄 때 나도 한 숟가락 씩 모친을 챙겨주고. 그런 모습들이 나를 성숙하게 보이게 만들었다.
"어머 애가 어쩜 이래. 자식을 참 잘 키웠네." 하면서.
예뻐서 좋아한게 아니라 '키우기 편해서' 좋아했던 거다. 나는 그런 사랑을 먹고 자랐다.
나는 어른스러워야했고, 시끄럽지 않아야했고, 태어날 때 말곤 운 적이 없는 아이어야 했다.
그런 내가 나이를 먹으면서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자아가 점점 생기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타고 싶었지만 공부를 해야했고 장기를 두고 싶었는데 공부를 해야했다.
부친은 나와 잘 놀아주었는데, 그 둘은 주말마다 싸우는 시간을 가졌고,
나는 혼자만의 시간이 참 많았고, 없었다.
모친은 늘 부친을 따돌리길 좋아했고, 내게 부친이 얼마나 멍청한 사람인지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혹여 내가 "아빠가 불쌍해요"라는 말을 하거나 그녀의 의견을 반대하는 뜻을 굽히지 않으면 그녀는 부친과 단둘이 외식을 나갔고,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부친은 가장의 역할을 상실했고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자 나는 집 밖의 학원 선생님이 내 하루 중 오래 보는 남자가 되었다.
학교나 친척 동생과 갈등이 생기면 모친은 일단 모든 잘못은 내 잘못으로 돌렸고, 그 과정에서 많이 맞았다.
따돌림을 당해도 그럴만 했으니 그 따돌림은 타당했고
짝꿍이 놀려서 때려도 잘못이었고
반대로 내가 맞아와도 맞을 짓을 한 것이었다.
거기까진 괜찮았다. 따돌림은 집에서도 당했던 것이었고, 맞는 것도 잘하는 것이니까.
그런데 분노나 분한 감정만큼은 주체하기 너무 어렸다.
심부름을 다녀온 사이 친척 동생이 일부러 내가 아꼈던 책을 찢어놓은 것을 보고 눈물을 보이자 모친은 곧장 나를 안방으로 데려가곤 때렸다.
분명히 내가 아끼는 것이라고 알고 있음에도 동생은 그것을 찢었다고 말했는데
모친은 변명을 싫어한다고 나를 옷장에 가두었다.
나는 그 뒤로 자기 변호의 말이나 말을 조리있게 하는 방법을 잃은 것 같았다.
그러니 학교에서도 부당하게 교권을 행사하는 선생님을 만나도
친구들이 따돌려도
어쩌다가 날아온 의자에 맞아도 집에 와선 무슨 일이 있었다고 말을 할 수 없었다.
매일 모친이 물어보는 "오늘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어?"라고 하는 말엔
'오늘 학교 잘 다녀왔는지 무슨 일 있었는지 궁금해'가 아니라
'너 오늘은 또 무슨 잘못을 했는지 빨리 말해. 사과하러 돌아다녀야하니까'의 뉘앙스에 더 가까웠다.
내가 제일 잘 하는 거짓말.
'미안해'
사실 안미안해. 칼로 내 가슴을 도려내버리고 싶어.
초등학교 5학년때 죽음을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원래도 문제가 많았던 2학년 아이가 같은 건물에 살았었는데
엘레베이터에서 부딪힌 사건으로 그 아이의 엄마가 살인미수로 나를 고소했다.
모친은 애가 탔다.
내가 잘못되는게 두려워서가 아니라
그녀의 '자식농사'가 잘못되는게 두려워서.
그녀는 여기저기 나를 위한 탄원서를 쓰러다녔다.
모친은 매일 밤 나를 저주했다.
그 문제아가 왜 하필 너랑 엮이냐고.
행동거지를 어떻게 하고 다니는 거냐고.
cctv를 보면 누가봐도 부딪혀서 둘 다 넘어진건데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저 아이가 부러웠다. 좋겠다. 끔찍이 아끼는 엄마가 있어서.
외갓집은 그 일을 계기로 나를 정말 싫어하게 되었다.
"네 엄마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니? 너 때문에 내 딸이 고생하잖아"라고.
처음으로 모친의 입이 아닌 다른 사람의 입에서도 내 잘못이라는게 나오니
'전부 내 잘못은 아닐거야'라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 되었다.
자기 상태는 본인이 가장 모른다고 했었는데.
혹시 내가 그런 상태인가 싶어서 이때 정말 심각하게 죽을까 고민을 했었다.
그러면 그 누구도 주먹이 아프도록 나를 때리지 않아도 되고, 나도 그만 힘들어도 되니까.
그리고 나는 자꾸만 모든 나쁜 일들을 내탓으로 모는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
그런데 이 글을 씀으로써 나아지는 것 같기도 하다.
이 글 자체가 "내가 이렇게 자라버린건 부모님 때문이다. 사정조절도 못하는 찐따새끼랑 피임도 못해서 낙태 기간에 제때 제때 낙태도 못하고 낳아 놓고 애새끼하나 제대로 키워내지도 못한 여자랑 남자가 내 인생을 망쳐놨어"의 의미에 가깝기 때문이다.
자존감의 상실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 깨닫기는 정말 오랜 세월이 걸렸다.
이 상황이 문제가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상대방이 내게 잘못을 하거나
관계에 있어서 내가 해를 입어도 뭐가 잘못된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같은 의미에서 자해도 일반인보다 발생률이 높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