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번째 주,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에 대하여
보이는 공간에 글을 쓴 지는 만으로 4년이 훌쩍 넘었지만 본격적으로 내 이야기를 써보기로 한 건 고작 1년밖에 되지 않았다. 블로그에는 짧은 일기를, 이곳에는 한 주를 정리하며 조금 깊은 이야기를 블로그보다 긴 호흡으로 7개월째 쓰고 있다. 글쓰기의 가장 좋은 스승은 자주 쓰기와 독서라는 것을 알고 난 후, 꾸준한 글쓰기를 위한 글감을 찾는 것에 소홀하지 않았다. 아주 열심이었다고 말하기엔 부족하지만 최소한 나태하진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을 보냈다.
최근에는 기존 글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기 위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전자책을 쓰기로 결심한 것인데, 사실 종이책을 내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전자책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었다. 생각해 보니 책이면 그냥 책이지 종이책이라는 말이 재밌다. 아무래도 전자책 출간이 많아지며 일반적인 책과 혼용해서 쓰지 않기 위해 요즘엔 이렇게 부르는 편이 나은 것 같기도 하다.
전자책을 쓰기로 한 계기는 대단히 특별하지 않았다. 블로그에서 친해진 이웃의 추진력 덕분에 나는 뒤꽁무니만 쫓아가기로 한 것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전자책의 주제와 구성을 마무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평소 호기심이 많고 실행력이 높은 편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나조차도 막상 책을 써보기로 결심하는 데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처음으로 오픈된 공간에(그땐 티스토리에 썼었다) 업무와 관련된 이야기를 썼던 2020년 1월에도 그랬고, 지극히 개인적인 일상 이야기를 블로그에 적기로 했던 작년 이맘때도 그랬다.
'글을 읽고 지인들이 날 알아보면 어떡하지?'
'내 글이 너무 별로라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뭐 대충 이런 종류의 고민과 걱정이 머릿속을 해 집어 놓고 다닐 때쯤, 이런 말이 떠올랐다.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보다 당신에게 관심이 없다'
그랬다. 여태까지 지나온 시간을 보면 세상도, 사람들도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에게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다. 아니,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의 나노 단위 수준만큼도 관심이 없었다.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두려움부터 생겼던 건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였을 거다. 누구로부터, 어떤 것으로부터 상처를 받을지 알 수 없는데도 그냥 상처라는 자체가 두려워 가까이 오지 않게 하고 싶었던 거였다. 상처를 멀리하려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되니까. 뇌는 아무것도 하지 않도록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두려울 땐, 한 걸음만 내디디면 돼'
두려움이 앞설 때, 주문처럼 외우는 말이다. 예전부터 먼 미래나 큰 성취를 생각하면 두려움을 이겨내기 힘들어 시작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먼 곳이 아닌, 눈앞에 보이는 바닥에 한 걸음만 디뎌 보자 했었고, 그랬던 게 두 걸음이 되더니 어느새 관성이 붙어 달리는 나를 만날 수 있었다. 목적지까지 달릴 수 있는 동력은 단 한 번의 걸음이면 충분했었다. 이런 방식으로 몇 차례에 걸쳐 두려움을 이겨내자 '두려움 = 한 걸음으로 극복'이란 공식이 만들어졌다.
살다 보면 많은 계획을 세우곤 한다. 계획을 세워야 언제 닥칠지 모를 위험에 대비할 수 있고, 더 안전하고 빠르게 목적지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획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다는 것도 금방 배우게 된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두려움을 극복하는 계획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두려움이란 감정은 언제나 곁에 있는 것이고, 용기 내서 무언가를 하며 잠시 저 아래로 밀어두는 것뿐이다. 가까이 오지 않게 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감정이란 거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전자책을 써도 될까란 고민과 두려움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하자 주문을 외웠다. '전자책 출간 커뮤니티에 신청 글부터 남기자' 공식대로 단 한 걸음만 내디뎠다. 먼 곳보다 눈앞에 있는 것부터 보았다. 그렇게 두려움이란 감정을 잠시 밀어두었다. 그러자 책의 구성까지 마친 지금의 나를 만날 수 있게 됐다.
두려움을 극복한다는 것, 용기를 낸다는 것.
비로소 단 한 걸음을 내디딜 때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