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에서 공부한다고요?
“하와이 가면 공부 안 하는데.”
미국 대사관 비자 면접의 마지막 순간, 미국인 백인 영사가 건넨 한 마디였다. 마이크를 통해 울려 퍼진 한국말에 주변에서 쿡쿡 웃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얼굴이 붉어졌다. 눈발이 날리던 이른 아침, 혼자서 초조하게 면접을 봤는데, 결과는 합격이었다. 밖에서 기다리던 남편과 마주하자 날씨도 마음도 한층 푸근해졌다.
유학지를 결정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가까운 필리핀부터 멀리 영국까지. 영어권 국가는 정말 많았다. 좀 더 단순하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 가능하면 선진국이었으면 좋겠고 익숙한 북미 발음을 고려하자니 미국과 캐나다가 떠올랐다. 하지만 캐나다는 너무 추웠다.
세계 1위 경제대국이라는 미국이 궁금했다. 직접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었다. 물론 뉴스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총기 사건, 인종차별, 마약 문제 등이 걱정되었지만, 최대한 안전한 지역을 찾기로 했다.
미국은 넓었다. 서부 LA는 지진이 걱정되었고, 동부는 한국과 너무 멀었다. 여러 유학원을 찾아가고 지인들에게 조언도 구했지만 대부분 본인 경험에서 나온 단편적인 이야기일 뿐이었다. 결국, 스스로 선택해야 했다.
왜 하와이였을까?
미국에서 유일하게 가본 곳이 하와이였다. 그곳은 안전하고 맑은 공기, 온화한 기후, 친절한 사람들이 있는 곳이었다. 유학 휴직 승인을 받으려면 교육기관이 사설이 아닌 공식 기관이어야 했는데 마침 하와이 주립대학교 부설 어학원이 있었다. 하지만 유학원에서는 하와이를 거의 추천하지 않았다. 심지어 어떤 유학원에서는 치안이 좋지 않다고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며 학원 상품만 권했다.
하와이 전문 유학원도 있었지만 '엄마가 대학 부설 어학원, 아이들은 공립학교'라는 조건을 맞춰주는 곳은 찾기 어려웠다. 학원 이득이 없으니 정보조차 주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여러 유학원을 방문한 끝에, 마침내 내 조건을 들어주는 친절한 유학원을 찾았다.
하와이는 관광지 매력만 있는 괌과 사이판과는 달리, 미국의 50번째 주(최상위 지방 행정 구역)로서 다른 주와 대등한 입법, 사법 ,행정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하와이 유학의 장점을 소개한다.
하와이는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관광지이다. 관광객이 많아 경찰 순찰도 철저해 야간에도 비교적 안전하다. 차 안에 물건을 두고 다니면 도난 위험이 있지만 미국 내에서는 안전한 곳으로 꼽힌다. 섬이라는 특성 때문에 강력 범죄가 적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와이 공립학교에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아이들을 위한ELL(English Language Learner) 수업이 있다. 하루에 한 시간씩 수준별로 반을 나눠 체계적으로 가르친다. 사립학교나 학원을 가지 않아도 공립학교에서 충분히 영어 교육을 받을 수 있다. 다양한 인종이 모여 있는 하와이에서는 많은 학생들이 ELL 수업을 들었다. 영어가 서툴다고 위축될 필요가 없다.
인종 차별 문제는 유학을 결정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하와이는 아시아계 인구가 50% 이상으로 동양인 차별이 거의 없다. 관광객도 많아 영어 발음이 서툴러도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각국의 독특한 억양이 섞인 발음도 현지인들이 자연스럽게 이해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하와이는 번화한 와이키키를 중심으로 마트나 관공서 등 편의시설이 차로 10분 내외 거리에 있다. 한인마트도 3곳이나 한국 음식도 쉽게 구할 수 있다. 김지어 한국 라면이 세일할 때는 한국보다 저렴하기도 했다. 큰 쇼핑센터와 다양한 마트도 있어 생활에 불편함이 없었다.
하와이는 1년 내내 따뜻해 언제든지 바다에서 놀 수 있다. 우리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던 알라모아나 비치는 가족 모두에게 평화의 장소였다. 아이들은 바다에서 신나게 놀며 하루를 보내곤 했다. 미세먼지 없는 깨끗한 공기와 시원한 바람이 주는 행복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다.
하와이에는 공립 도서관이 많다. 와이키키가 있는 오아후 섬에만 25개의 도서관이 있으며, 대출 권수 제한이 없다. 다만 대출증을 잃어버리거나 연체하면 벌금이 부과된다. 아이들 학교에도 수천 권 소장한 도서관이 있어 원하는 만큼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이었다. 우리가 자주 가던 맥컬리-모일릴리 도서관에는 한국인 사서 선생님이 있어 한국 책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교보문고와 연계해서 온라인으로 한국책을 전자책으로 볼 수 있었다.
한국과 하와이는 19시간 차이가 나지만, 쉽게 계산하면 한국이 하루 빠르고 5시간 앞선다고 보면 된다. 예를 들어 한국의 월요일 오전 9시는 하와이의 일요일 오후 2시다. 하와이 오후 시간과 한국의 오전 시간을 공유할 수 있어 한국에 있는 가족과 연락이 편리했다.
파란 하늘과 더 파란 바다 그리고 천천히 흘러가는 하얀 구름. 세계적인 휴양지이자 연예인들이 앞 다투어 찾는 그곳에서 나는 단순한 여행자가 아니라,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배우 하정우가 '걷기에 가장 좋은 곳'이라 꼽았던 하와이에서, 나는 아이들과 함께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며 성장할 것이다. 하와이에서도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곳에서 보낸 시간이 내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만들어 줄지를 스스로 증명해 보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