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慶尙南道 昌寧郡 釜谷面 巨文里 400番地. 내 본적(本籍)이다. 이렇듯 나는 본디 시골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시골은 500년 넘게 이어온 안동김씨 동족촌(同族村)이었고, 70여 가구가 농사를 지으며 옹기종기 모여 사는 조그만 동네였다.
자연에 기대어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달라짐을 몸소 느꼈고, 자연에 깃들어 살고자 하는 어른들의 깜냥을 배우며 컸다. 시골의 공기로 호흡하고 시골의 땅이 키워낸 농작물을 먹으며 시골의 아이로 자랐다. 스무 살 때 서울로 올라와 허여무레 청춘을 보냈다. 회사에 들어간 후로는 일과 술과 사람에 치이며 팔랑팔랑 살았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중년(中年)의 초입에 불쑥 들어섰다.
거품과 구멍이 많은 삶이었다. 헛바람만 잔뜩 들었고, 고개는 늘 꼿꼿했다. 보이지도 않는 ‘사회적기대’에 휩쓸려 삶을 가파르게 후렸다. 시골의 꼬마는 도시의 장년(長年)으로 양질전화(良質轉化)했다. 도시는 마음에 내켰고 몸에 편리했다. 사회구조의 관성에 휘둘려 퍽이나 빠르게 살았다.
아이들도 도시의 꼬마로 자라갔다. 사방으로 닫힌 아파트에서 놀고 공부하고 친구를 만났다. 놀 데가 마땅찮아 아파트 복도를 내달렸다. 문득 시골의 꼬마가 살아났다. 자연속에서 자연스럽게 놀던 그 꼬마처럼 아이들도 놀았으면 했다. 자연과 벗하며 시골 같은 마을에서 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옛 갈매동으로 옮겨 살면서 삶의 방식이 바뀌었다. 갈매동에 살면서 느림은 개인적인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방식에 대한 선택의 문제라는 생각을 했다. 정해진 시간을 앞당기지 말고 시간에 쫓겨 허둥대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다시 말하자면, 느리게 산다는 것은 주변의 필요와 요구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만의 리듬에 맞춰 삶의 내적 충만(充滿)을 지향하는 것이리라.
피에르 쌍소(Pierre Sansot)를 찾았다. 그는 자기 자신에 충실한 가운데 사회생활의 감성적이고 시적인 형태를 포착하기 위하여 느림의 편에 서기로 결정했다고 하였다. 그는 느림을 위한 9가지 삶의 방법을 정리해 놓은 에세이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에서, “느림이란 시간을 급하게 다루지 않고 시간의 재촉에 떠밀려가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심에서 나오는 것이며, 또한 삶의 길을 가는 동안 자신을 잊어버리지 않을 수 있는 능력과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능력을 키우겠다는 확고한 의지에서 비롯하는 것”이라고 했다.
마음 밑동을 울리던 그 말로부터 느리게 살고자 했다. 아이들과 주말 밤이면 ‘촛불잔치’를 하면서 연극도 하고 역할놀이도 하고 책도 읽었다. 어느 여름밤에는 옆집 아이들까지 한데 불러서 옥상에서 노랗고 빨간 종이비행기를 날렸다. 그 밤 검푸른 사위 속으로 비행하던 종이비행기들에 간절한 마음을 일껏 태우던 아이들의 모습이 어제인 듯 또렷하다. 그렇게 옛 갈매동에서의 삶은 조금씩 내게 느림을 익히게 했다.
요즘도 느리게 살 거리들을 찾고 있다. 내 나중 삶을 위한 숨터다. 어릴 적 시골에서의 삶과 결이비슷한 곳에 깃들어 내 남은 시간을 나를 위해 쓰고 싶은 바람이다. 강과 바다가 스스로 낮은 데를 택하니 사방 골짜기의 물이 저절로 굴러 들어와 큰물을 이루듯 낮은 데서 낮은 사람들과 낮게 살아가며 삶의 큰물을 만들고 싶은 바람이다.
우선은 주말마다 인근을 뒤져 다붓한 농가주택을 하나 찾아볼 요량이다. 집뿐만이 아니라 동네의 들어앉음과 산과의 어울림도 살펴볼 것이다. 무릇 자연의 상징적 거점은 산인 바, 산을 더불어 데리고 사는 동네라면 좋겠다. 동네 앞으로 너른 들이나 산이 펼쳐져 있으면 ‘금붙이 위에 꽃을 더한’ 격이리라. 먼 훗날 내가 깃들일 때는 돌담 바깥으로 커다란 미루나무 하나 데리고, 마당 우물가에는 떨감나무도 하나 두리라. 집 앞에 잣바듬한 비탈이어도 텃밭을 내어 상추며아욱이며 심어내고, 토마토며 고구마며 옥수수 등속으로 입가심도 하리라. 바깥 행랑채는 앙증맞은 책방으로 해서 마을 사람들과 더불어 ‘책마실’을 하며 내 남은 시간을 소진(消盡)할 것이다.
농가주택을 제대로 찾기 위한 방편으로 재미난 생각을 했다. 공영버스를 타고 두루두루 다녀볼 셈이다. 자동차의 편리에 밀려 쓰임새가 다하고는 있지만, 아직도 간이역과 마을을 잇는 실핏줄 역할을 맡은 공영버스가 분명 있을 터. 그 버스를 타고 어느 동네 종점에 내린다면 모르긴 해도 내가 찾는 동네를 찾는 데 더 좋은 실마리가 될 수 있으리라. 공영버스를 타는 동안 사람들의 인심도 느끼고 예전 ‘털털버스’ 타던 기억도 되살리며 나름의 느린 시간을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
1년 넘게 계속하고 있는 글쓰기는 내 ‘마음의 아이’를 알아가는 방편으로는 으뜸이라 어찌어찌 이어나갈 생각이다. 글쓰기를 하면서 나도 몰랐던 나를 많이 알았고, 내 머리 속 어디에 그런 생각을 들었나 싶은 생경한 글머리와도 마주했었다. 글쓰기는 다른 사람의 간섭과 강요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롯이 나를 만드는 삶의 그루터기일 수 있을 터. 논둑길과 밭고랑을 다니며 청신(淸新)한 흙의 기운도 들이키고, 길가 들풀에는 툭툭 발길질도 하면서 그 삶의 결을 고스란히글로 남기고 싶다. 더운 여름 싱그런 녹음 아래 돗자리 하나 펴고 누워 시집을 읽다 스르르 잠드는 그 찰나의 행복감을 고스란히 글 위에다 풀어놓겠다.
<걷기예찬>을 쓴 다비드 르 브르통(David Le Breton))은 “걷기는 세계를 느끼는 관능(官能)에의 초대”라고 했다. 걷기라는 자연스럽고 단순한 움직임을 하다 보면 스스로 안으로 들게 된다. 안으로 들면 참 아늑해진다. 그 아늑함에서 세계의 거친 속살을 선연히 만나게 된다. 그 기쁜 만남을 위해서라도 걷기는 또 하나의 삶이어야 하리라. 간소하게 먹고 온종일 동네 주변 풀꽃과 나무와 숲에 마음을 쏟으리라. 논 가득 피어오르는 벼와 텃밭 채마들에 눈길을주며 동네를 어우렁더우렁 걸음하리라. 밤하늘에 가득한 별빛 따라 오솔길 딛고서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외며 밤을 도우리라. 그 걷기의 끝에서 마침내 또 하루를 얻을 게다. 내가 스스로 만드는 하루의 탄생!
느리게 사는 것은 게으르게 산다는 게 아니다. 느리다는 것은 스스로 안으로 들기 위해 더 깊이 자신을 들여다보려고 하는 삶의 전환(轉換)일 것이다. 눈은 아래를 향하고 가슴은 늘 열려 있고 손으로는 세계를 만지는 삶, 그 울퉁불퉁한 시골길을 사부작사부작 걸어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