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언어의지혜 이지혜 Dec 04. 2023

착한 딸을 그만두겠습니다.

착한아이증후군과 작별하기

나는 착한아이로 자랐다.

그도 그럴 것이 2살에 엄마와 헤어지고

고아원에 갈 뻔한 내가 할머니 손에 자랐다.

'할머니가 아니었으면 나는 고아원에 갔을 지도 몰라. 말을 잘 들어야 해.'라고 생각했다.


할머니 이름에 먹칠하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착하게 자라라."기에 착하게 자라기로 마음 먹었다.

그런데 착한 아이라서, 자라면서 많은 문제에 봉착했다.

타인에게 상처를 준 것은 아닌지 밤낮 고민했고,

타인에게 상처주지 않으려 나에게 생채기를 냈다.

그걸 그만 두어야겠다고 다짐한 것이 아이를 낳으면서였다.


상담공부를 하며 안 건 나처럼 특수한 상황에 자란 사람만이 착한 아이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아이들은 누구나 부모님, 특히 엄마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하고, 엄마가 행복하지 않다면 아이는 착한 아이로 자라게 될 것이었다.



아이도 나처럼 착한 아이로 자라게 둘 순 없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다시금 아이를 착한 아이로 자라게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착한 딸인지도 잊고 살다가 아버지가 아플 때 흔들리는 나를 보고 알았다.

'여전히 착한 딸이었구나.'


<내 것이 아니면 모두 버려라>라는 책에서

"소중한 상처를 포기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오는 데 나는 이 의미를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이제야 알겠다.

내가 나로 살려면, 상처받은 내가 내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는 것.

더이상 착한 아이가 아닌 나로 살기로 마음을 먹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어른인 내가 내 곁에 있어야 한다는 것.


나는 결단했다.

더 이상 착한 아이로, 착한 딸로, 착한 엄마로도 살지 않겠다.

진실로 나를 사랑해서 사랑이 흐르는 삶을 살겠다.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방향이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착한 아이인 동지가 있다면

우리 착한 아이 그만두고 "나"로 살자고 말하기 위해서다.

이 우주는 온전하고 안전하니 내 가슴의 소리를 믿자고 말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관계를 위해 나를 잃을 것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