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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어의지혜 이지혜 Oct 30. 2022

"엄마! 나한테 사과해!"

출산 후, 자는 엄마를 깨워한 말

어린 시절의 기억 한 줌


나에게는 조금 특별한 엄마가 있다.

바로 나를 키워주신 할머니이다.

아장아장 걸어 다닐 때부터 나를 키워주셨다 보니 "엄마"라는 말을 썼고, 할머니는 나를 막내딸로 품었다.



5살이 되던 어느 해, 할머니와 함께 이웃 이모 집에 놀러를 갔었다.

이모 집에 예쁜 숟가락이 보여 갖고 놀았고, 할머니께 "이거 나 하고 싶어"같은 말을 했던 거 같다.

할머니께서는 두고 가자 하셨고 나는 두고 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집에 와 옷을 갈아입는데 그 숟가락이 내 주머니에서 나왔다.

나도 당황스러웠다.



할머니는 내게 "도둑년!!!!"이라고 내가 도둑년을 키운 거냐고

동네가 떠나가도록 소리를 치며 혼을 내셨다.

내가 아무리 아니라고 말해도 듣지도 않으시고 믿지도 않으시며 화를 내는데 나는 너무 억울했다.

세상에 내 편은 없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일은 지나갔다. 

까마득하게 잊은 채 성장했는데 크면서 그 기억이 내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깨달았다.



남이 한 말, 남이 쓴 물건은 주인의 허락이 떨어지기 전까지 쓰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물론 늘 그랬던 건 아닐 수 있지만, 결정적으로 중요한 순간 나에게 장애가 되었다.

예를 들어, 어떤 주제를 연구하고 싶은데 비슷한 발표를 한 연구자에게 허락을 안 맡으면 안된다고 생각해 할 수 없었고, 늘 경직되어 있었다.

좋은 점은 주인이 있는 것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는데 나쁜 점은 나와 연관된 일에도 모두의 동의가 없으면 일 진행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선임들이 "우리가 동의 안 해도 그냥 진행 좀 해." 해도 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래서 그 원천을 살펴 보았더니 "아무리 작은 것도 남의 것은 손 데면 안돼!! 그건 도둑년이나 하는 짓이야!!"라는 말과 좀 커서 들은 "넌 일을 잘 그르쳐"라는 말이 내 몸속에 섞여 남아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 기억이 내게 왜 그렇게 아픈 기억으로 남았는지는 모르지만 참 오래 영향을 미쳤다.




아이를 낳았다

아이를 낳은 어느 날, 산후조리를 돕고자 우리 집에 와 있는 할머니를 보며 그 기억이 떠올랐다.

자고 계셨는데 너무 너무 억울했던 마음이 떠올라서 "사과해!"라고 말했다.

이건 지금 내가 생각해도 미친 짓이라 여길 수 있지만,

출산 후 엄마들은 호르몬의 급격한 변화와 정체성의 혼란으로 약 1년간 힘든 시기를 겪는다.(사실은 그 이상일 수도)

아이를 온전히 키워내기 위해 나의 상처가 치유되어야 함을 알던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할머니에게 들은 말은 드라마틱한 "미안해"였을까?



아니었다. "미친년"이라고 하더니 잠이 들었다. 

고운 소리를 못 들을 줄은 알았지만 심각한 나를 두고 자버리다니!

아무리 깨우고 사과를 하라고 해도 사과하지 않자 

"역시 엄마는 자기만 옳다고 해!"하며 방에 가서 엉엉 울다가 잠이 든 기억이 난다.

https://blog.naver.com/seasun1250/221338306474



 



3년 만에 다시 이야기한 이유

내가 이 이야기를 3년이 지난 오늘 다시 꺼낸 건,

상담사 선생님들과 스터디를 하며 나온 이야기에 이어진 것이다.

부모님께서 나이가 드셨는데 참 좋은 점이 많은 것도 알고 이해하는 부분도 있지만 

"미안해."라는 말이 너무 듣고 싶다고. 

그 말을 들으면 그간 아팠던 기억이 다 용서될 거 같다고.

그 말을 들으며 3년 전의 내가 떠올랐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래서 내 글이 조금이나마 참고가 되시기를 바라며 글을 남기기로 결심했다.

사실 너무 치졸해 보여서 안 쓰려고도 했지만 ㅎㅎㅎ 

이것 또한 나의 귀한 경험이고, 진실이니까.




그렇게 잠에 깬 우리 할머니와 나는 머쓱하게 하루를 보냈고,

한참 있다가 할머니가 말했다.

"사과했다!" 그래서 내가 "잉? 뭐라고?" 했더니 할머니가 사과했더란다.

내가 하도 억울하다고 울고불고 사과할 때까지 툴툴거려서

더 예쁜 숟가락 10개를 사주고 사과까지 했다고.

그런데 난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는다.

다만 '우리 엄마는 나를 온전히 믿어주지 못하는구나'라고 믿었던 것 외에는.

그래서 "난 기억 안 나는데?"했다가 욕을 들어먹었다 ㅎㅎ 




그래도 그 이야기를 들으니 참 잘했다 싶었다.

욕을 들어먹든 애써 괜찮아진 관계에 흙탕물을 끼얹는 짓이든 용기를 낸 내가 참 기특했다.




그 직후 드라마틱하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어떨 때는 여전히 이해가 안가고 어떨 때는 참 좋고 어떨 때는 화가 나고 어떨 때는 미안하고.




하지만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내가 나를 용서해가는 시간이 늘어가면서,

내가 뭘 원하는지 어떤 소리가 듣고 싶은지 표현해가면서

할머니와 싸우기도 하지만, 

늘 나를 걱정했는데 이제는 "난 우리 딸 믿는다. 우리 딸은 정말 잘 한다."라고 

말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내 요구를 들어주셨음에 참 감사한 순간이었다.

얼마나 놀랐는지 녹음까지 해 놓았다.





가능한한 싸움을 피하고 온화하게 평온하게만 살고 싶었는데 한 번 사는 인생 그리 살 수 없다면 찐하게 나를 표현하며 살아보려 한다.

그 결과가 내가 원한 것이든 그렇지 않든. 

두려움이 몰려와도 또 한 걸음 내딛으며 가다보면 또 몇 년 후, "그때 참 잘 했다."생각하는 날이 오겠지.




p.s 참고로 나는 우리 할머니를 닮아 애살받이였다.

내 모든 혼과 영을 갈아넣어 아이를 키울 타입이었다.

그리고 그래서 아이를 잘 키우고 싶었는데 이젠 인정한다. 

아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 노력하는 습관을 내려 놓고  (잘 못하고 싶지 않고 책임지기 싫은 습관),

정답이라는 말 듣고 싶은 마음 내려 놓고 그저 나를 표현하며 사랑하며 살아가야지. 

아이가 커서 엄마에게 사과받고 싶을 때에 사과 할 수 있는 품을 가진 엄마가 되어야지.

"내가 너에게 얼마나 잘 했는데! 엄마 상처 안물려 주려고!"가 아니라 "그게 너에게 상처였구나. 미안해. 말해줘서 고마워."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엄마가 되도록 성장해 가야지. 그리고 가벼이 오늘을 즐겨야지.

그러기 위해 더 유연하게 춤추며 즐겁게 살아야겠다. 앗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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