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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이게 맞아요?

27세, 원원

by 집사 김과장


2023년 여름, 호도협 티나 게스트하우스에서 그녀를 만났다.

나는 트레킹을 끝내고 리장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녀는 호도석을 보러 내려갔던 사람들 무리에 끼어있었다.

트레킹 복장을 착용한 다른 사람과 달리, 그녀는 헐렁한 티셔츠에 펑퍼짐한 청바지, 운동화 차림이었다.

비에 쫄딱 젖어 물에 빠진 생쥐 꼴이었지만 그녀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원원은 거침이 없었다.

처음 보는 나와 아내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걸었다.

그녀는 중도객잔까지 택시를 타고 들어가 티나 게스트하우스까지 이어지는 6km 남짓한 짧은 거리만 걸은 참이었다.


"휴가 기간이 짧아서 하루만 호도협 구경하고 가려고 왔어요. 아쉽지만 어떡해요. 나한텐 시간이 없는 걸."


그녀 역시 리장으로 돌아가야 했기에 같은 버스를 탔다.

버스에서 내리자 그녀가 말했다.


"같이 저녁 먹으러 갈래요? 이 동네 버섯 훠궈가 유명해요. 사람이 많을수록 유리하거든요."


길에서 우연히 만나 앞서거니 뒤서거니 호도협을 걸었던 택남이와 그녀의 동행 자웨이, 우리 내외까지 다섯 명이 리장 밤거리를 헤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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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에 살아요. 회사는 우한에 있고요."


그녀는 게임 회사의 온라인 마케터였다.


"출퇴근이 가능해?"


"재택근무해요. 코로나 때 시작했는데, 제 업무가 꼭 회사에 붙어있어야 하는 게 아니다 보니 그대로 굳어졌어요. 출퇴근 시간만 온라인으로 체크하면 나머지 업무는 집에서 해도 되거든요. 회사도 비용 절감되고 편하니까 재택근무를 권해요. 그러니까 난 꼭 집에서 일을 할 필요는 없는 거죠. 일정이 한가할 때는 다른 도시에 가서 노트북 켜놓고 일하기도 하고, 이렇게 짧은 휴가를 내서 여행을 다니곤 해요. 디지털 노마드(数字游民 shùzì yóumín), 맞아요."


호도협에서 동행했던 택남이는 원원의 삶이 굉장히 부러운 듯했다.

택남은 고려대학교에서 유학하다가 코로나19 때 학업을 포기하고 귀국, 9월 학기에 중국 대학 입학을 앞둔, 푸릇푸릇한 새내기였다.


"나도 졸업하면 노마드로 살고 싶어요. 중국은 아직 노마드로 살기엔 불편해요. 태국 같은 나라는 공유 오피스 같은 게 잘 되어 있어서 편하다고 하니, 졸업 후에는 외국으로 나가볼까 생각 중이에요. 한국은 어때요?"


트레킹을 마친 당일이었지만 청춘은 지칠 줄 몰랐다.

라이브 바에서 2차까지 마친 원원은 자웨이와 택남을 끌고 3차로 향했다.

헤어질 때, 원원이 말했다.


"잠은 죽은 다음에 실컷 잘 수 있어요. 시안에 오면 연락 주세요."






같은 해 11월, 중국을 다시 찾았다.

화산(华山)에 갈 생각이었기에 시안으로 입국했다.

메시지를 받은 원원은 만날 장소와 시간을 알려줬다.

다시 만난 날, 원원은 후줄근한 티셔츠 차림이 아니라 클럽에 가야 할 것 같은 차림새였다.


"집에 옷장 있어요. 티셔츠에 청바지만 입고 다니는 거 아니에요."


원원은 시안의 핫플레이스를 보여주겠다며 종루 뒷골목으로 나를 이끌었다.

서울로 치면 피맛골 같은 곳이었다.

청춘들이 길게 늘어선 줄 끝에 우리도 섰다.

메뉴는 시안 특산, '뺭뺭미엔'이었다.


"샨시(陕西) 사람들에게 다이어트는 사치죠. 맨날 국수, 고기, 국수, 고기. 살을 뺄 수가 없어요. 볼록한 올챙이 배는 샨시 남자의 상징이라죠?"


원원은 국수를 두어 젓가락 덜더니 나머지를 모두 나에게 밀었다.


"그래서 저는 이만큼만 먹어요. 나머진 오빠 드세요. 샨시에 왔으면 샨시 남자가 돼야죠."


... 이 새끼가???

하지만 난 배가 고팠기에 속으로 웃었다.


"휴가철은 끝났고, 이제 바쁘겠네? 힘들지 않아?"


"바쁜 건 괜찮은데, '이렇게 살아도 괜찮나?' 하는 고민 때문에 힘들어요."


"왜?"


"게임회사 마케터 일은 꽤 괜찮아요. 제 또래 평균보다 급여도 훨씬 높고, 디지털 노마드라서 일상도 여유로운 편이죠. 근데 매번 똑같은 일을 반복하니까, '과연 이걸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생겨요. 지금이야 20대니까 괜찮은데, 30대, 40대가 돼서도 이렇게 살 수 있을까요?"


"회사에 속하지 않고 너 혼자만 할 수 있는 일, 전문적인 지식, 기술이 있다면 가능하겠지. 디지털 노마드라는 거, 결국은 프리랜서잖아? 나도 40대 중반까지는 직장인이었지만, 지금은 프리랜서로 지내고 있어. 물론 경제적인 스트레스는 감수해야지."


원원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부터 뭘 준비해야 할까요?"


난 답을 줄 수 없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고, 산업 구조도 급변하고 있다.

평생직장 개념은 IMF 이후 진작에 사라졌고, 이제는 회사와 개인의 계약 관계가 보다 선명해지고 있다.

자신이 속한 사회의 경제 구조 내에서 자신의 필요성, 유용성을 증명하지 못하면 암담한 미래를 마주하는 시대다.

그래서일까?

회사에 구속되지 않고 자기 일을 하면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디지털 노마드는 선망의 대상이다.

평균적인 생활 수준 상승, 워라밸에 대한 인식, 여가 시간과 여행 수요 증가,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 업무 환경.

누구나 조금만 노력하면 실제로 가능한 삶인 듯하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원원은 하루가 멀다고 중국 전역을 여행하며 찍은 사진을 올렸다.

위챗 개인 페이지에 올라온 원원의 표정은 늘 화사했다.

하지만 시안 종루 뒷골목에서 본 그녀의 미간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디지털 노마드로 살고 있는 원원은 불안해 보였다.

아직 그 삶을 경험하지 못한 택남은 원원을 선망한다.


하지만 디지털 노마드는 삶의 방식일 뿐, 목표가 아니다.

핵심은 그 삶의 방식을 유지할 수 있는 자신의 직업과 전문성이다.

내가 세계 어디에 있어도 나를 찾는 수요가 있도록 삶을 설계하는 것.

선후 관계가 바뀌면 디지털 노마드는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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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일하면 뭐가 좋아요?" / "기부니가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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