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들여진다는 것
두브로브니크는 중세 도시 모습을 가장 잘 보존한 곳이다.
1979년에 구시가지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성곽과 시가지는 10세기에 조성하기 시작해 14세기에 지금과 같은 형태를 갖췄다.
라구사(두브로브니크의 옛 지명) 사람들은 작정하고 도시 경관의 통일성을 유지하려 들었다.
도시의 미관을 해치지 않으면서 방어 요새로서의 기능도 완벽해야 했다.
두브로브니크는 패권국에 조공을 바치긴 했어도 꾸준히 자치권을 유지한 상업도시였다.
힘이 없는 정의는 공허한 법.
무식하게 두터운 두브로브니크 성곽은 그 결과물이었다.
드라마 <왕좌의 게임> 주요 무대 중 하나인 '킹스랜딩'은 두브로브니크를 기초로 CG처리한 결과물이다.
드라마를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난공불락'이란 말이 절로 떠오른다.
이후 16세기 대지진, 유고슬라비아 내전 같은 끔찍한 천재지변과 전란을 겪으면서 도시의 상당 부분이 파괴됐다.
하지만 견고하게 쌓아 올린 기반은 무너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도시가 망가질 때마다 재건에 심혈을 기울였다.
구도심을 돌아다니다 보면 곳곳에 아직도 전쟁의 흔적이 남아있다.
사람들은 해변에 진을 치고 해수욕을 즐겼다.
에메랄드빛 바다는 들어오라고 손짓하듯 넘실거렸다.
'쫄보'인 아내는 들어가고 싶어 했지만 옷을 갈아입기는 귀찮았나 보다.
바닷가에 발만 담그더니 '앗, 차가워!'소리와 함께 뛰쳐나왔다.
카메라를 든 나는 밖에서 바라만 봤다.
이럴 때면 사진을 괜히 시작했다는 후회를 하곤 한다.
아드리아해의 햇살은 상상을 초월한다.
5월 중순이라고 방심한 게 화근이었다.
그늘에 들어가면 서늘한데, 햇볕 아래로 나오면 8월 초 한여름 같다.
거리를 돌아다닌 지 반나절 만에 일광화상을 입었다.
목덜미가 시뻘겋게 익고 햇빛 알레르기가 올라왔다.
남들은 화장품 사러 가는 프란치스코 수도원 약국에서 나는 알레르기 약을 사서 나와야 했다.
약사가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항구 근처에는 보트 투어 호객 중인 여행사 직원이 넘쳐났다.
두브로브니크 인근 작은 섬을 차례로 돌며 해수욕과 선상파티를 즐기는 프로그램이었다.
세계 어디를 가도 호객꾼은 기피대상 1호다.
끈질기게 달라붙어 시야를 가리고 정신을 산만하게 하는 이들이 곱게 보일 리가 없다.
하지만 두브로브니크의 호객꾼은 달랐다.
간이 탁자에 기대 빙글거리며 웃는 얼굴은 여유로웠다.
그들은 옆을 지나가는 사람에게 팸플릿을 건네고, 간단하게 투어 내용과 시간, 비용을 설명했다.
사양하고 자리를 뜨는 사람은 다시 붙잡지 않았다.
눈이 마주친 다음 사람에게 시원한 미소와 팸플릿을 내밀었다.
한참 '손님, 맞을래요?'라는 밈이 유행하던 시기였다.
그래서 그들의 태도는 꽤 인상적이었다.
두브로브니크 어디를 가도 비슷했다.
상인들은 판촉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손님의 시간을 최대한 보장했고, 의사 결정에 관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선은 계속 손님을 따라다니며 호출을 기다렸다.
그들은 꼭 필요한 순간에만 등장했다.
그러다 보니 두브로브니크에서는 관광지 특유의 악다구니가 없었다.
언제, 어디를 가도 여유로웠다.
마음이 느긋해졌다.
시간을 쪼개 도시를 찾는 사람에게는 미안한 소리지만, 성 안 후미진 골목 카페 의자에 앉아 바라보는 시가지 모습이야 말로 이 도시의 진짜 매력이다.
태양은 그 골목까지 친절하게 찾아들어 사람들 머리를 금빛으로 물들였다.
회칠 한 건물벽은 햇빛을 받아 다채로운 모습으로 변했다.
정오 햇살을 받은 대리석 보도블록은 비단결 같았다.
태양 각도와 햇빛 세기에 따라 도시 색깔이 매 순간 달라진다.
노을에 물든 두브로브니크는 취할 듯한 따뜻함으로 뒤덮인다.
묵직하고 컴컴했던 체코, 헝가리와는 다른 바닷가 도시의 싱그러움이 살아있다.
햇살을 받은 아드리아해는 부서진 보석처럼 잘게 반짝였다.
두브로브니크 일정을 늘렸다.
도시를 떠날 수가 없었다.
묵고 있던 숙소를 연장할 수 없어 구시가지 외곽 그루즈 지구로 옮겼다.
구시가지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대중교통을 타야 했다.
당시 숙소에서 구시가지로 향하는 버스 배차 간격은 시간에 한 대 꼴이었다.
버스 기다리다 지쳐 우버를 불렀다.
숨을 좀 돌리고 나니 기사가 씩 웃으며 말을 붙인다.
진수성찬도 하루이틀이라 했던가?
하지만 이 아름다운 도시가 일상에 매몰될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구시가지에 들어서자 난데없이 소나기가 쏟아졌다.
광장에 인접한 카페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실내 장식은 뭔가 난잡했다.
창밖으로 루자 광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길을 가던 사람들은 황급히 건물 처마 밑으로 찾아들었다.
처마 밑에 모인 사람들은 다들 팔짱을 끼고 서서 비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금방 그칠 것 같던 비는 한 시간 동안 오락가락했다.
그동안 도시 전체가 멈춰 섰다.
갈 길 바쁜 크루즈 여행객들은 연신 우산을 들었다 내렸다.
오디오 가이드를 귀에 꽂고 도시를 힐끔거리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여행객들은 여전히 처마 밑에 모여 원망스럽게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비가 그치자 결혼식 행렬이 광장으로 들어섰다.
광장에서 한바탕 춤을 춘 신랑 신부가 플로셰게이트 쪽으로 행진을 시작하자 들러리와 하객들이 그들을 따랐다.
카페에선 '호텔 캘리포니아'가 흘러나왔다.
하얗게 빛나던 스트라둔은 비에 젖어 누렇게 변했다.
메말랐던 돌길에 빗방울이 떨어질 때마다 매캐한 먼지 냄새가 피어올랐다.
바싹 말라있던 돌벽과 대리석 길은 신나게 물기를 빨아들였다.
타들어가던 도시는 소나기에 잠시 갈증을 풀었다.
촉촉하게 젖은 돌벽은 명암이 짙어져 도시에 고풍스러운 느낌을 더했다.
골목 사이를 누비고 다닐 때는 보이지 않았던 광경이 보인다.
그래서 가끔은 쉬어가야 한다.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도시를 품은 스르지산이 주황색으로 물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도시의 주황색 지붕과 일몰의 색이 같아졌다.
눈이 뜨거울 정도로 도시가 타올랐다.
아내와 대화를 하며 항구를 거닐었다.
무계획을 넘어, 이미 세운 계획도 아무렇지 않게 바꾸는 아내의 스타일은 여전히 적응하기 어려웠다.
나는 이미 방향을 잡고 나아가고 있는데, 아내가 태클을 거는 것처럼 느껴졌다.
결혼식 혼배성사를 집전해 주신 요셉 신부님이 주례사 때 말했다.
그게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
어쩌겠는가. 내가 선택했으니 내가 감당해야지.
30대 중반이 넘어 결혼했다.
아내는 30대 초반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불같은 사랑은 아니었다.
아내는 대화가 통하는 상대였다.
함께 하면 편했다.
이 사람이라면 앞으로 나의 삶의 동반자가 될 수 있겠다는, 일종의 전우애가 생겼다.
하지만 하루 종일 붙어있으니 전우애도 소용이 없었다.
머리로는 받아들이겠다고 생각하지만, 감정은 거부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 관계가 지속가능한 것인지 자문했다.
두 달 동안 몇 번이나 서로 감정이 상하고, 그렇게 상처 난 곳이 곪아 터지길 반복했다.
딱지가 앉았다가 떨어진 상처는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여우가 어린왕자에게 말하는 길들여진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싶었다.
동화에서 본 관계는 낭만적이었는데, 실상은 잔혹동화였다.
노을이 짙게 깔렸다.
술에 취했는지 한 남자가 부두 끝에서 알 수 없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바다를 향해 오줌을 누기 시작했다.
손에 와인잔을 든 채 부둥켜안고 산책하던 커플은 이를 보고 자지러지게 웃었다.
마침 부둣가를 지나던 여객선에 탄 승객들이 남자를 보고선 휘파람을 불며 박수를 쳤다.
남자는 화답이라도 하듯 오줌 줄기로 허공에 그림을 그려댔다.
커플 여자는 허리가 꺾이도록 웃어댔다.
망측한 분위기가 싫었는지 해가 모습을 감췄다.
스트라둔 위로 붉게 물든 노을이 스며들었다.
갑자기 아련해졌다.
그간 많은 곳을 다녀봤지만 이런 곳은 처음이었다.
도시 자체가 가진 매력, 내뿜는 에너지가 사람을 취하게 만든다.
매 순간이 사랑스럽고 소중했다.
아쉬움을 가득 안고 이탈리아로 떠나는 야간 페리에 몸을 실었다.
두브로브니크를 떠나야 할 시간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