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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리아해의 진주

바이런을 위하여

by 집사 김과장
"아드리아해의 진주" - 조지 고든 바이런(1788~1824, 영국, 시인)



두브로브니크 Dubrovnik



생각만 해도 설렌다.

버나드 쇼가 그랬다.


"지상에서 천국을 찾으려면 두브로브니크로 가라."


여행지에 관한 과장된 수사를 보면 피식 웃게 된다.

두브로브니크는 예외다.

아드리아해의 진주, 별빛처럼 빛나는 바다, 지상 낙원 등등 아무거나 갖다 붙여도 말이 된다.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관광객으로 미어터지지만 도시에는 여유가 흘러넘친다.

주민들은 친절하고 당당하다.

굳이 관광 명소를 찾지 않더라도, 발길 닿는 대로 들어선 카페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 역시 영화 속 한 장면이다.

두브로브니크에 떠다니는 공기는 뭔가 다르다.


도시의 기원은 7세기 경 슬라브 족 침입을 피해 도망친 로마 식민지 주민들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난민과 침입자는 융화했고, 도시는 천천히 발전했다.

중세 이후 두브로브니크는 지중해 연안의 강력한 도시국가로 비상했다.

비잔틴 제국, 베네치아 왕국, 헝가리-오스트리아 제국의 통치권 아래 있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조공을 바치고 자치권을 확보한 자유 도시국가였다.

때로는 지중해 상권을 쥐락펴락한 부유한 국가였다.

그러나 1667년 대지진으로 도시 대부분이 파괴되는 재난을 겪은 후 유럽 역사의 중심에서 퇴장했다.

대지진 이후 주민들은 대대적인 복구 사업을 벌였다.

두브로브니크를 상징하는 거대한 성곽은 이때 모습을 갖췄다.


1990년대 초 유고슬라비아 내전 때는 도시 곳곳이 전화에 휩싸였다.

당시 유럽의 지식인들이 "이 아름다운 도시를 보호해 달라"며 두브로브니크로 몰려와 인간띠를 두르고 평화를 호소하려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아내는 이탈리아를 궁금해했다.

하지만 여행이 후반부로 접어들수록 시간이 밭았다.

내 통풍 때문에 날려버린 시간도 있었고, 중간에 늘어진 일정 탓도 있었다.

결국 아내는 이탈리아 일정 대부분을 포기했다.

대수롭지 않게 '어쩔 수 없지'라며 일정을 수정하는 아내가 고마웠다.

나라면 짜증을 냈을 상황에 아내는 대범했다.

문득 내 지랄맞은 성격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주는 아내가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내 치부를 비추는 거울이었다.

나는 아내를 보며 내 모자람과 부족함을 깨달아가고 있었다.


"시간에 쫓겨 다니지 말고 두브로브니크에 좀 오래 머물자. 우리가 가장 가고 싶어 했던 곳이잖아"


둘의 의견이 이렇게 일치한 적이 없었다.

베니스와 콜로디에 대한 생각을 접으면서 여행 막바지 일정이 여유로워졌다.
대신 두브로브니크에서 일주일 정도 충분히 머물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스플리트를 떠나 두브로브니크로 향했다.

터미널을 벗어난 버스가 터널을 몇 개 지나자, 버스 창 밖으로 바다에 맞닿은 스플리트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파스텔 톤 하늘 아래 물비늘이 반짝였다.

주황색 지붕으로 덮인 도시가 유난히 돋보였다.
도시는 깎아지른 듯한 돌산 아래 포근하게 안겨있다.

우리가 머물렀던 도시였다.


A1 고속도로에 올라타기 전까지 버스는 끝없는 녹색 길을 지났다.
스플리트부터 따라온 산맥은 점점 키를 키우더니 이내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도로 주변은 암석 지대다.
거칠게 부서지고 쪼개진 돌산 위로 키 작은 관목이 융단처럼 깔렸다.
온통 푸르른 풍경 사이로 회색빛 돌무더기가 간간히 얼굴을 내밀었다.

주황색 지붕이 점점이 박혀 단풍처럼 풍경을 물들였다.
황량함과 풍요로움이 공존하는 묘한 광경이었다.


두브로브니크에 가기 위해서는 보스니아 국경을 지나야 한다.
간단하게 여권만 확인하기 때문에 절차가 복잡하진 않다.

간혹 도로 보수 공사를 하거나 산사태 등이 나면 대책 없이 길이 막힌다.
길이 외길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이탈리아에서 만난 도미니꼬 신부님은 국경 넘는데 정확히 반나절이 걸렸다고 증언했다.


보스니아 국경에 들어선 버스는 '네룸'이라는 도시에서 잠시 정차했다.
사람들은 매점과 화장실을 찾았다.
두브로브니크 가는 사람들이 워낙 많다 보니 크로아티아 쿠나가 통용됐다.


네룸에서 버스 기사가 여권을 걷었다.

국경 여권 검사 때문이다.

여권은 다시 크로아티아 국경을 넘을 때 돌려줬다.
승객들 모두 '왜 내 여권 안 돌려주냐'며 쑥덕거릴 때쯤, 기사가 여권을 돌렸다.
수건돌리기다.
앞자리부터 자기 여권 찾고 나머지 뒤로 돌린다.
여권을 이렇게 취급하다니.







버스는 우리를 그루즈 부둣가 버스정류장에 내려놓았다.
세계적인 관광지답게 터미널은 배낭 메고 캐리어를 끄는 사람들로 혼잡했다.
여전히 짠내가 나지 않는 항구가 낯설었다.


8번 버스를 타고 구시가지 북쪽을 지나 숙소가 있는 플로셰 지역으로 향했다.

두브로브니크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지역이다.

도시가 질릴 때까지 머무르고 싶었던 터라 아파트 한 채를 통으로 빌렸다.

두브로브니크는 여행의 백미가 될 곳이었다.

한 번쯤 돈을 써야 한다면 여기였다.


하지만 플로셰 지역 숙소들은 단점이 하나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숙소까지 가는 길은 오르막과 계단이 끝없이 이어졌다.
바퀴 달린 캐리어는 무용지물이었다.

폭탄 같은 짐을 낑낑대며 들어 날랐다.

저절로 이가 갈렸다.
아드리아해의 진주고 나발이고 짐을 모조리 바닷속에 처넣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사람들은 바닷가 절벽에 집을 짓는 바다제비 마냥 그렇게 집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집집마다 처마 밑, 전등 위에 제비집이 있다.
집 지을 곳을 사람에게 뺏긴 제비들이 사람과 공생을 택한 듯한 모습이었다.


악전고투 끝에 숙소에 도착했다.

호스트에게 집 안내를 받고 짐을 부린 후 침실 창문을 열었다.

순간 '흡'하는 소리와 함께 숨이 막혔다.

아드리아해로 뛰어들 것 같은 두브로브니크 구 시가지 모습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따가운 햇살에 피부가 따끔거렸지만 잠시 잊고 멍하니 바라보게 될 정도로 아름다웠다.
때마침 수평선 근처까지 내려온 태양이 두브로브니크를 쓰다듬었다.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 도시 뒤편의 바다는 다이아몬드처럼 빛났다.

넋이 나간 나를 본 호스트 로베르토가 씩 웃었다.


"지금부터 네 거야. 즐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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