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9_회사작당
- 야, 나 오늘부터 필라테스 한다.
우왁, 그거 진짜 힘들다며? 상담은 했어?
- 응, 인바디도 했는데 난리났더라.
괜찮아. 그거 정상으로 뜨는 인간이 비정상이야.
이런 류의 대화가 분기마다 이뤄진다. 저기 ‘필라테스’ 자리에 헬스, 요가, 크로스핏, 무엇을 넣든 달라질 건 없다. 더이상은 이렇게 살 수 없다는 각오를 다지고 모종의 운동을 골라 회원권을 결제하러 가면 치르는 의식이 인바디다.
인바디.
이제 많은 사람들이 인바디는 체성분 분석기기 브랜드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안다. 하지만 압도적인 시장점유율 덕에 사람들은 쌓아온 죄악을 고해성사할 때 꼭 ‘인바디’를 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얼마나 정교하게 다듬었는지를 과시할 때도 인바디 결과지를 SNS에 게시한다. 물론 인생 어떻게 될지 모르고 요요현상은 필연이다. 24시간 안에 펑하고 사라지는 스토리에만 올려 평생 박제되는 것을 피한다.
한때는 오직 키와 몸무게만이 판단의 근거였으나, 이제는 체지방은 물론, 골격근량도 평가받는 세상이 됐다. 새시대의 체성분 측정 방법론은 그럭저럭 의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서 유사과학일 뿐이라고 항변할 수도 없다. 그리고 과학 앞에서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비정상이 되고 만다. “당신은 체지방량을 줄여야겠습니다.”라든지 겉으로 멀쩡해보이는 사람도 “골격근량이 너무 적네요. 마른 비만입니다.” 따위의 한줄평을 획득하고 나서야 끝이 난다. 여기에는 꼭 협박이 곁들여져서, 당장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으름장을 듣기도 한다.
“회원님, 심각한 거 아시죠?” 인바디 결과지에 무참히 휘갈겨지는 트레이너의 어설픈 동그라미, 동그라미, 동그라미. 안 그래도 표준 이상인 거 아니까 그만 강조해달라고 빌고 싶다. 일평생 비정상으로 살아온 사람으로서 장담하건대 여간 언짢은 일이 아니다. 물론 건강하면 좋지. 근데 이 놈의 기준은 뭐 이리 박하단 말인가. 애당초 이건 누가 정해놓은 거지? 니가 뭔데? 니가 날 알아? 아냐고.
라고, 누군지도 모를 이의 멱살을 잡고 흔드는 상상만 하며 얌전히 유산소 운동을 하러 가는 축 처진 뒷모습은 남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마음은 굴뚝같은데 결과를 부정하기엔 눈앞에 놓인 현실이 너무 명백해서다. 합당한 근거에 따른 객관적 기준이 이렇게나 야속하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항거하고 싶을 때가 있다. 지금이 그렇다. 어떤 기준이 객관적이려면 어느 사례에 가져다대어도 일관된 판단을 도출해낼 수 있어야 한다. 즉 일반적으로 두루두루 적용이 가능해야 하고 예외로 쳐야 할 단서가 너무 많이 붙어서도 안 된다. 그러면 체성분 측정 기술이 주장하는 객관적 표준범위란 정말 의심의 여지 없는 지표가 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모든 인간은 타고나기를 다르다. 큰 범주에서는 일정한 경향성을 따를지 몰라도 제각기 고유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담배를 뻑뻑 피워도 굳건히 버텨내는 폐를 가지고 태어날 수도 있고, 건강하게 소식하는 습관에도 불구하고 당뇨와 고혈압에 취약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똑같은 신장에도 체형은 천차만별이기 마련이다. 후천적인 환경에 따라서도 다르게 성장할 여지는 충분하다. 그러나 인바디는 그 모든 맥락을 일시에 제거해 같은 키의 인간은 모두 같은 체중의 같은 체지방량과 같은 골격근량을 준수하기를 요구한다. 실상 그 표준에 들어맞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리고 거기서 비껴나간 사람들은 얼마나 더 많겠는가?
인바디는 과학적, 객관적 지표를 표방한 부정의 체계다. 태어난 대로 살던 사람들에게 너답지 말라고 채찍을 든다. 사실 그동안의 다이어트 업계가 늘 견지해온 태도이기도 하다. 지금 네 모습에서 벗어나라고 소리쳐야 자신의 상품을 구매할지니. 그 과정에서 당사자들이 오래 유지되지도 못할 몸매를 위해 건강을 깎아먹고 우울해하든 말든 신경쓰지 않는다. 조금 더 버티면 그토록 바라던 성취가 눈앞에 있는데 왜 그걸 못하냐고 타박하면 될 일이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자신이 80kg 정도 되는 여성이라며 유도를 하고 싶은데 남들보다 체중이 많이 나가 눈치 보인다는 글이 게시된 적이 있다. 거기에 누군가 ‘체급은 재능이다’라고 답을 달았다. 그 정도 무게를 버티는 뼈나 관절은 아무나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축복받은 재능이라는 것이다. 기대도 못했던 신선한 답변에 사람들은 이 글을 곳곳으로 퍼다날랐다. 반대로 체중이 늘지 않아 걱정인 사람들은 공기 저항을 덜 받아 사이클에 적합한 체형이라는 정보도 추가되었다. 누군가의 댓글로 모두가 구원받는 순간이었다.
이상 인바디 68점을 기록하는 하찮은 인간의 변명이었다. “어쨌든 살 빼고 건강해지면 좋잖아? 노력 안 하고 말만 얹는 거 별로야.”라고 일갈한다면 달리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일률적 기준에 맞출 것 없이 각자의 방식대로 건강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 ‘건강’이라는 말에 스스로를 비정상이라며 매도하고 혐오하는 작태가 포함된다면 그게 정말 건강한 건지 되묻고 싶기도 하다.
‘지금 당장 체지방 13kg를 감량하십시오’는 개나 줘라 이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