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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DA Oct 26. 2021

호흡

1025_회사작당

  정형외과 의사는 분명히 뛰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발 통증이 조금만 가시면 동네 하천변으로 달리기를 하러 나간다. 괜찮다 싶으면 스멀스멀 나가는 모습에 뒤늦게 깨닫는다. 나는 달리기를 좋아한다. 여태껏 웨이트, 필라테스, 요가, 발레 등등 하고 많은 운동이 스쳐 지나갔다. 그중에는 도무지 견딜 수 없어서 오래 버티지 못하고 뛰쳐나온 것도 있고, 하고는 싶지만 터무니없이 돈이 많이 들어서 포기한 것도 있고, 재미는 없지만 건강을 위해 의무감으로 이어오는 것도 있다.

  어째서 달리기를 골라버린 걸까? 몇 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다. 적은 비용으로 시작할 수 있는 거라서, 정해진 시간에 맞춰서 강습을 들어야 하는 게 아니라서, 다른 사람과 부대낄 일이 없어서 등등. 그렇다고는 해도 정작 재미가 없으면 안 하게 되는 게 사람 마음이니, 분명히 이것들이 결정적인 이유는 아닐 것이다. 질문을 바꿔야 답이 나온다. 달리기에는 다른 운동과는 다른 특별한 의미가 있는가?

  곧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답이 있다. 달리기는 나를 한계까지 몰아붙인다. 달리고 있는 중에는 단 한순간도 괴롭지 않은 때가 없는데, 그러다 조금 더 빠르게 달릴 여력이 있다면 시험해 본다. 그렇게 기록을 조금씩 줄여나간다. 무산소 운동에 가까운 심박수를 유지하며 극기의 순간을 견디면 그것으로 이미 작은 성취가 된다. 스스로를 괴롭혀 쓸 수 있는 자원을 다 썼으니 이 결과물을 두고 아무도 나를 멋대로 평가할 수 없다.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는 근원적 죄책감에서 벗어난다. 하룻밤 지나면 불타 사라질 면죄부지만 어쨌든 몇 시간 동안은 유효하다.

  자신의 몸을 불사질러 죄책감을 더는 게 내가 달리기를 하는 이유라면, 그 달리기는 적당히 할 만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늘 한계선 근처 아슬아슬한 지점에서 종료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도중에 멈춰서는 안 되고 가끔씩 치밀어 오르는 메스꺼움과 욕지거리도 잘 억눌러줘야 한다. 그동안 달려본 경험을 되짚어보면 계속 달리지 못하게 되는 원인에는 두 가지가 있다. 갑작스러운 근수축으로 다리가 쥐어짜듯 아파오는 게 첫 번째다. 충분히 휴식하지 못한 채 달렸다는 증거고 이럴 경우에는 별 수 없이 멈춰야 한다. 계속 달리려 해도 이미 절뚝거리는 마당에 달리는 자세만 엉망이 될 뿐이어서다. 한 번 어그러진 자세는 부상을 야기한다. 근육의 경련은 쉬면 금방 회복되지만 빠그러진 인대와 관절은 돌아오지 않으니 포기하는 게 현명하다.

  두 번째는 앞선 이유보다 훨씬 흔하고, 어느 정도 극복 가능하다. 산소가 부족해서다. 단순히 ‘숨이 차서’라고 말하는 것은 충분치 못해서 산소가 부족하다는 표현을 썼다. 인체를 움직이는 에너지를 꾸준히 공급하려면 몸 곳곳의 근육에 산소가 공급되어야 한다. 하지만 만약 잘못된 호흡으로 외부에서 폐로 충분한 양의 공기가 유입되지 못할 때나, 심장이 약해 한 번에 많은 양의 혈액을 방출하지 못할 때에는 산소 전달이 용이하지 못해 금방 퍼져버린다. 후자의 경우는 꾸준한 심폐지구력 운동으로 신체능력을 키우면 어느 정도 극복 가능하다. 심장과 폐를 열심히 괴롭혀 단련시키면 이전보다 적은 펌프질만으로도 충분한 산소를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박수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를 낮게 유지하는 게 보다 오래, 그리고 빨리 달릴 수 있는 방법이다.

  곁 이야기가 길어졌다. 앞서 말한 모든 요인들을 제치고, 그냥 지금 당장 나가 달렸을 때 숨이 차오르면 해야 할 일은 하나뿐이다. 될 수 있는 한 힘차게 숨을 내뱉는다. 숨이 막히니 들이마셔야 한다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다. 이미 폐에는 본능적으로 들이마신 공기로 가득하다. 온몸이 고통으로 가득하다 보니 제대로 내뱉을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는 추가로 더 공기를 집어넣으려 해봤자 얼마 못 넣는다. 그래서 우리의 정신은 내뱉는 행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러면 육체가 쪼그라든 폐를 새로운 공기로 가득 채울 것이다. 알아서, 우리가 신경 쓸 필요도 없이 자동으로 행할 것이다.

  숨이 차 괴로울 때는 직관을 거스르고 숨을 뱉어야 한다. 몇 년 전 다른 달리기 전문가에게 그렇게 배웠다. 그는 내게 이 외에도 여러 가지 기술들을 알려줬지만, 이 가르침만이 기억에 남아있다. 그만큼 유용했다는 뜻이다. 달리기는 자신의 육체를 의도적으로 의식 밖으로 던져버리는 행위다. 최대 심박수의 80%를 넘는 고강도 운동에 근육에는 빠르게 유산이 쌓이고 관절과 인대는 삐걱거리며 당장이라도 심장을 토해낼 수 있을 것처럼 입안에 피맛이 감돈다. 육체가 내지르는 비명에 의지니 정신력이니 하는 알량한 것들이 개입할 여지가 있을까? 쉽지 않다. 당장이라도 땅을 구르며 무너지고 싶을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영역을 조금씩 확보해나갈 수 있고 그 시작은 호흡이라 생각한다. 호흡을 조절함으로써 이전까지는 가보지 못했던 더 먼 거리를 더욱 빠르게 도달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달리기는 도저히 안 될 것 같은 상황 속에서 스스로를 통제하여 기어코 해내는 행위라는 의미를 지닌다. 무의식과 함께 날뛰는 운명과 육신에 달리기를 통해 굴레를 씌우고 숨을 내쉬며 고삐를 쥐어본다. 대부분의 시간을 패배하는 정신이 잠깐이나마 정복의 영광을 누리는 순간, 이 간악한 고깃덩어리가 본디 내 것이었음을 체감하는 순간이기에 달리기를 멈출 수 없다.

  하지만 승리의 순간에도 정신은 그 이면에서 육체와 평화 협상을 일구어나가야 한다. 호흡을 의지로 완전히 통제할 수 있을 거란 오만은 거두는 게 좋다. 인류의 역사에 오로지 의지로 숨을 참아 자살에 성공한 사람은 없다는 점을 기억하자. 들이키는 숨은 육체의 소관임을 인정하고 정신은 내쉬는 숨에만 집중해야 한다. 어찌할 수 있는 것과 어찌할 수 없는 것 사이, 겸허히 거기서부터 시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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