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4주 차, 사랑이를 만나다
두 줄을 보자마자 다시 기도했다.
'하나님, 저희 부부가 많이 부족해요. 특히 저는 좋은 엄마가 될 자질이 부족합니다. 그렇지만 최선을 다하는 엄마가 될 수 있도록, 이 아이를 사랑과 믿음으로 키울 수 있도록 인도해 주세요.'
여전히 믿기지가 않아서 테스트기를 한참 들여다봤다. 이 두 줄이 내 안에 생명이 생겼다는 의미라는 게 실감이 안 났다. 약 2주간 매일 궁금해하고 기다리던 결과를 막상 받아 드니 심장이 뛰고 얼떨떨했다.
새벽에 일을 나가는 남편에게는 아무 말하지 않고 배웅한 뒤 남아 있는 테스트기를 다시 한번 해봤다. 혹여나 테스트기가 잘못된 건 아닐까 싶어서. 이번에는 결과가 나오는 동안 들여다보기로 했다. 아직 생리 예정일이 4일이나 남았는데도 20초도 안 되는 시간에 선명한 두 줄이 나타났다. 정말, 우리에게 아이가 온 것이었다.
남편에게 서프라이즈를 해줄 생각으로 테스트기에 예쁘게 테이프를 감고 편지를 썼다. 쓰다 보니 할 말이 많아져 두 장이나 썼다. 새벽일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에게 스타벅스 파우치에 넣은 테스트기들과 편지를 건네주며 핸드폰으로 녹화를 했다. 이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었다. 남편은 "돈도 없는데 무슨 선물을 샀어~" 하며 파우치를 열어 보았다.(나중에 물어보니 에어팟이 아닌가 은근히 기대했다고ㅎㅎ) 그리고는 순간 몸이 정지되었다. "어? 어?? 으어어어?!?!" 테스트기를 들여다보고 편지를 읽는 내내 입꼬리가 내려올 줄을 몰랐다. 남편을 봐온지 햇수로 7년째인데 이렇게 설레 하며 오랫동안 웃는 모습은 처음 본 것 같았다. 영상 없이도 이 순간은 영원히 기억할 것 같다.
그 날 저녁, 감격스러운 날을 기념하기 위해 외식을 했다. 밥을 먹으며 태명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신기하게도 둘 다 아침에 '사랑이'라는 이름을 떠올렸음을 알게 됐다. 수많은 이름 중에 둘이 같은 이름을 생각한 것이, 이건 하나님이 주신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어 고민할 여지도 없이 태명은 사랑이로 확정했다.
그리고 다음 날,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캐나다에 산 1년 동안 한 번도 걸리지 않았는데, 하필이면 지금! 약도 먹지 못하고 먹고 싶은 음식도 자제해야 하는 서러움이 시작되었다. 열이 나면 태아에게 좋지 않다는 글을 보고 혹여나 열이 날까 전전긍긍했다. 아직 제대로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역시 엄마가 되는 건 쉽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내가 앞으로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다행히 감기는 정말 가볍게, 며칠 만에 지나갔다.
이때는 임신 극초반이라 눈에 띄는 증상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면 이미 이 때 입덧이 시작된 게 아닌가 싶다. 살면서 처음 겪는 입맛 없음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아기였을 때 분유를 토할 때까지 먹을 정도로 먹성이 좋았고 늘 통통~비만으로 살아온 내게 이런 느낌은 정말 생소했다. 배가 불러도 늘 맛있게 먹던 나인데, 배고파도 먹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고 무얼 먹어도 맛이 없었다. 내 삶의 큰 낙이 사라진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당시에는 변수가 많아 조심해야 한다는 임신 초기 + 캐나다의 병원 시스템 + 외국인이라는 신분 때문에 그저 이 시기를 무사히 지내야 한다는 생각이 더 컸다. 한국처럼 원하는 때마다 병원에 가서 초음파로 아이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이 아니기에 입덧이 오히려 감사하기도 했다. 아이가 잘 있다는 걸 내 몸으로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매일 노심초사하는 마음이었지만 예민하게 증상 하나하나에 집착하거나 아이에게만 집중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평소처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건강하게 컨디션 조절을 하는 게 아이에게도 가장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