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의 끝, 30초의 통보
퇴원하고 일주일 뒤, 회사로 출근했다.
아직 수술 부위가 욱신거렸지만, 인사팀 면담이라는 말에 쉬고 있을 수가 없었다. '파견 관련 면담'. 그 다섯 글자가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나는 파견직이 아니다. 20년 정규직이다. 다만 3년 전에 본사 구조조정 바람이 불면서 지사로 발령이 났고, 형식상 '파견' 형태로 근무하게 됐을 뿐이다. 본사 소속인 건 변함없었다.
그런데 왜 파견 관련 면담이지?
* * *
인사팀은 본사 8층에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니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3년 만에 온 코러스미디어 본사는 많이 바뀌어 있었다. 리모델링을 했는지 벽 색깔이 달랐고, 칸막이 위치도 바뀌었다. 예전에 내가 앉던 자리가 어디였는지도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인사팀 앞 대기 의자에 앉았다. 딱딱한 의자였다. 병원 대기실 의자보다 더 불편했다.
10분쯤 기다렸을까. 인사팀 김 차장이 나왔다.
"오금이 과장님, 들어오세요."
김 차장. 나보다 다섯 살 어리다. 입사할 때 신입이었는데, 어느새 차장이 됐다. 나는 아직 과장인데. 20년 다녔는데 고작 과장이라니. 승진할 때마다 누군가에게 밀렸다. 누군지는 말 안 해도 알겠지.
* * *
면담실은 생각보다 작았다.
테이블 하나, 의자 네 개. 한쪽 벽에는 회사 비전이 적힌 액자가 걸려 있었다. '함께 성장하는 코러스미디어'. 그 문구가 오늘따라 눈에 거슬렸다.
김 차장이 서류를 꺼냈다. A4 용지 몇 장. 내 이름이 적혀 있는 게 보였다.
"오금이 과장님, 건강은 좀 어떠세요?"
"네, 수술 잘 받았어요. 이제 거의 회복됐습니다."
"다행이네요."
그 말 끝에 침묵이 흘렀다. 김 차장이 서류를 한 번 훑어보더니 입을 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릴게요."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단도직입적'이라는 말 뒤에 좋은 소식이 온 적이 없다.
"지사와의 파견 계약이 올해 말로 종료됩니다. 지사 측에서 계약 연장 의사가 없다고 통보해 왔어요."
"... 네?"
"본사 복귀도 검토해 봤는데, 현재 오 과장님의 직무에 맞는 포지션이 없습니다. 영상팀은 이미 인원이 다 차 있고, 다른 부서로 배치하기엔..."
"잠깐요."
말을 끊었다. 손이 떨렸다.
"저 20년 근무했어요. 정규직이고요. 파견 나간 것도 회사 사정 때문이었잖아요. 그런데 갑자기 자리가 없다고요?"
김 차장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이 더 화가 났다. 본인도 불편한 거 안다. 근데 그걸 내가 왜 봐줘야 하는데.
"과장님 상황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희도 여러 방안을 검토했어요. 그런데 현실적으로..."
"현실적으로요?"
목소리가 높아졌다. 나도 모르게.
"현실적으로 20년 일한 사람을 이렇게 내보내도 되는 거예요? 저 작년에 대상 받았어요. 영상 공모전. 코러스미디어 이름으로 나가서 상 탔잖아요. 그때는 '금이 과장님 덕분'이라고 했잖아요."
김 차장이 고개를 숙였다. 뭐라고 대답을 못 한다. 대답할 말이 없으니까. 아니면 대답해 봤자 소용없으니까.
"... 퇴직 조건은 협의 가능합니다. 위로금도 법적 기준보다 더 드릴 수 있고요."
위로금. 그 단어가 귀에 꽂혔다. 퇴직이라는 말은 안 했는데, 위로금이라니.
"퇴직하라는 말씀이신 거죠?"
"권고사직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진 않지만..."
"그게 권고사직 아니면 뭔데요."
김 차장이 대답을 못 했다. 그게 답이었다.
* * *
면담실을 나왔다.
다리가 풀려서 복도 벤치에 앉았다. 손에 서류가 들려 있었다. 퇴직 관련 안내문. 언제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20년이 30분 만에 끝났다.
아니, 끝난 건지도 모르겠다. 아직 사인을 안 했으니까. 근데 사인을 안 하면 뭐가 달라지나. 자리가 없다는데. 억지로 버텨봤자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핸드폰이 울렸다. 박팀장이다.
"금이 과장, 나 팀장인데. 인사팀 갔다 왔어?"
"... 네."
"아, 그래. 나도 들었어. 안타깝다, 진짜."
안타깝다. 그 말이 입에서 나오는 게 신기했다. 3년 동안 내 성과를 가로채 간 사람이 안타깝다고.
"근데 금이 과장, 마지막으로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 이번 프로젝트 인수인계 좀 확실하게 해 줘. 금이 과장 아니면 이 프로젝트 흐름 아는 사람이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또. 병원 복도에서 웃은 것처럼. 미친 사람처럼.
"네, 알겠습니다."
또 그 대답이다. 20년째 같은 대답. 주어 없는 대답. 나를 지운 대답.
* * *
지사로 돌아와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책상 서랍을 열었다. 볼펜, 포스트잇, 간식으로 먹던 초콜릿 봉지. 그리고 맨 안쪽에 USB 하나.
이게 뭐였지?
노트북에 꽂아봤다. 폴더가 몇 개 있었다. 2018년 프로젝트, 2020년 프로젝트, 2022년 프로젝트... 내가 백업해 둔 원본 파일들이었다.
파일 속성을 열어봤다. '만든 이: 오금이'. 수정한 날짜, 저장 위치까지 다 기록돼 있었다.
이 파일들. 보고서에는 전부 '담당: 박현수'로 올라갔던 것들이다.
갑자기 심장이 빨리 뛰었다. 왜 이걸 지금 발견했을까. 아니, 왜 이걸 그동안 잊고 있었을까.
USB를 빼서 가방에 넣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이건 가져가야 할 것 같았다.
* * *
집에 왔다.
남편은 아직 퇴근 전이고, 아이들은 학원에 갔다. 텅 빈 거실에 혼자 앉아 있으니 눈물이 났다.
암 진단받았을 때도 안 울었다. 수술받을 때도, 회복실에서도 안 울었다. 근데 왜 지금 우는 거지.
현관문 소리가 났다. 남편이다.
"어, 벌써 왔어? 오늘 일찍..."
말을 멈췄다. 내 얼굴을 보더니 급히 다가왔다.
"왜? 무슨 일이야? 어디 아파?"
고개를 저었다. 아픈 게 아니야. 아픈 거보다 더 아픈 거야.
"나... 잘린 것 같아."
말하고 나니까 진짜가 됐다. 그동안 꿈인 것 같았는데, 입 밖으로 내뱉으니까 현실이 됐다.
남편이 내 옆에 앉았다. 아무 말 없이 등을 토닥였다. 그게 더 서러웠다. 위로의 말이 없다는 게. 해줄 말이 없다는 게.
"20년이야. 20년을 다녔는데."
"... 알아."
"암 수술하고 돌아왔더니 자리가 없대. 내가 뭘 잘못한 거야?"
남편이 대답을 못 했다. 나도 답을 모르니까. 내가 뭘 잘못한 건지, 아니면 그냥 세상이 이런 건지.
한참을 울었다. 초등학교 때 이후로 이렇게 운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때는 뭐 때문에 울었더라. 기억도 안 난다.
울다가 지쳐서 멍하니 앉아 있는데, 현관문이 또 열렸다. 아이들이다.
"엄마 왔어?"
둘째 시우가 거실로 들어오다가 멈췄다. 내 얼굴을 보고.
"엄마 왜 울어?"
큰아들 시준이도 따라 들어왔다. 친구랑 통화하다가 끊고 나를 봤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엄마 회사 잘렸어'라고 하기엔 아이들이 걱정할 것 같고, 아무 말 안 하기엔 눈물 자국이 너무 선명하다.
"... 엄마 오늘 좀 힘든 일이 있었어."
시준이가 뭔가 말하려다가 멈췄다. 그리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원래 그 애가 그렇지 뭐. 사춘기니까.
근데 10분쯤 지나서 시준이가 방에서 나왔다. 손에 뭔가 들고 있다. 머그컵. 김이 모락모락 난다.
"... 마셔."
핫초코다. 내가 좋아하는 거. 그걸 어떻게 알았지? 아, 맞다. 예전에 힘들 때 마신다고 했었나.
그 한마디 하고 시준이는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핫초코를 받아 들었다. 따뜻했다. 이상하게 또 눈물이 났다.
그래. 암도 이겼잖아. 이것도 이겨내면 되는 거잖아.
근데 왜 이렇게 막막할까.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