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입니다, 다행히

죽음 앞에서 처음으로 '나'를 생각하다

by 캔디작가

암.


그 한 글자가 머릿속에서 맴돈다.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샤워하는 내내, 침대에 눕고 나서도. 천장을 보는데 '암'이라는 글자가 천장에 써 있는 것 같다.


남편은 옆에서 잠들어 있다. 오늘따라 코를 더 많이 곤다. 평소엔 이렇게 크게 고는지 몰랐는데. 아니, 평소에도 골았을 거다. 내가 못 들은 거지. 피곤해서 머리만 대면 기절하듯 잠들었으니까.


근데 오늘은 잠이 안 온다. 당연하지. 암인데.


* * *


다음 날, 다시 병원.


정밀검사 결과는 일주일 정도 걸린다고 했는데, 금요일에 결과가 나왔다. 주말이 되기 전에 결과 통보를 해 주고 싶었는지, 목요일 오후 늦게 병원에 오라는 통보를 받았다.


"오금이 님, 다행히 상피내암입니다."


다행히? 암인데 다행이라고?


내가 눈을 어디 둘 곳이 없이 멍하니 있으니 의사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상피내암은 0기 암이에요. 암세포가 상피 안에만 있고, 다른 곳으로 퍼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수술로 제거하면 완치율이 거의 100%예요."


남편은 나보다 더 충격을 먹었는지, 아무 말도 없이 않아 있다가 내가 살짝 터치를 했더니 그때서야 정신을 차리고 의사선생님의 말을 귀담아 들으며 나의 손을 꼭 잡는다. 어제보다 손이 따뜻하다.


내가 물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면 되나요?”


"빠를수록 좋습니다. 연계되어 있는 대학병원에 스케줄을 잡아서 알려드릴 테니 잠시만 앉아 계세요. "


한참을 대기실에서 대기하니 스케줄 담당 간호사가 드디어 내 이름을 호명했다.


“오금이 님 들어오세요.”


대학병원도 지금 파업 중이라 수술 날짜가 빨리 잡히지는 않는다고 하면서 몇 번의 통화를 더 하더니 한 달 뒤 외래를 잡아 주었다.


일단 외래를 잡고 다시 대학병원 의사 선생님께 진료를 받고 수술 날짜를 정하는 방법으로 시스템은 돌아가고 있었다.


“한 달 뒤면 너무 늦은 것 아니야?”


남편은 최대한 빨리 수술을 했으면 하는 마음에 나를 재촉했다.

남편의 성화에 다른 대학병원 두 군데 전화를 해서 외래 날짜를 잡으려 했으나 한 곳에서는 아예 접수를 받지 않는다고 하고, 다른 한 곳은 너무 멀리 있어서 그 병원에서 진료를 하게 되어도 거리가 멀어서 치료받으러 다니기 힘들지 싶어서 내가 포기를 했다.


일단, 외래 날짜는 프로젝트 날짜와 겹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한 달이라는 기간이 있으니 그 전에 최대한 작업을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이런 와중에도 회사 걱정만 하고 있으니, 남편이 핀잔을 주었다. 지금까지 오랫동안 일 했으니 이번 기회에 그냥 일을 그만두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글쎄? 난 아직 나의 커리어를 놓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 * *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한 달이 지나고 대학병원에 외래를 왔다. 검사도 검사지만 일단 수술 날짜부터 잡았다.


마음속으로 “제발 프로젝트랑 겹치지만 말아라”라고 생각하며 의사선생님의 스케줄에 맞춰서 수술 날짜를 잡았다.

남편은 옆에서 최대한 날짜를 빠르게 잡아주라는 주문을 했고, 그 결과 경력이 많은 의사 선생님은 두 달을 기다려야 했고, 다소 경력이 적은 젊으신 의사선생님은 보름 뒤 수술이 가능했다.


남편과 나는 살짝 의견을 주고받고는 빠르게 수술할 수 있는 날짜로 스케줄을 잡았다. 두 달 뒤에 또다른 프로젝트가 예정되어 있었기에 나 또한 그 전에 수술을 하고 복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 회사에는 뭐라고 하지? 또 회사 생각이다. 다음 주에 프로젝트 마감인데. 그 프로젝트. 내가 기획하고 내가 촬영하고 내가 편집한 그 프로젝트. 보고서엔 '담당: 박현수'라고 올라가는 그 프로젝트.


괜히 웃음이 나왔다. 병원 복도에서. 미친 사람처럼.


* * *


회사 출근해 팀장에게 면담 신청을 했다.


"박팀장님, 저 2주 뒤에 수술 받게 돼서 병가 내려고요."


잠깐의 침묵.


"수술? 무슨 수술?"


"유방암이요. 초기라서 수술 후 입원 기간을 그러게 길지 않대요."


또 침묵. 이번엔 좀 길다.


"아... 그래? 근데 금이씨, 다다음 주 프로젝트 마감인 거 알지?"


알지. 내가 만든 프로젝트니까.


"네, 아는데요. 그래서 수술 들어가기 전에 최대한 정리해놓고..."


"아, 그래. 그래. 일단 알겠어. 몸 관리 잘하고. 근데 마감 끝나고 수술하면 안 돼?"


순간 얼굴이 활활 타오르듯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화가 나서가 아니라, 허탈해서.


"...의사 선생님이 빨리 하래요."


"알았어, 알았어. 어쩔 수 없지, 뭐. 빨리 낫고 와."


'빨리 낫고 와'. 그 말이 위로인지 재촉인지 모르겠다. 20년을 같이 일했는데, 나는 아직도 저 사람을 모르겠다. 아니, 알면서 모른 척했던 건지도.


* * *


수술 전날 밤.


아이들에게 말했다. "엄마 내일 병원 가서 수술 잘 받고 올게."


둘째 시우가 물었다. "응 엄마, 수술 잘 받고 와야 해. 오래 입원해야 되는거야?"


"아니야,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거야. 0기 니까 금방 나을 거야."


큰아들 시준이는 게임을 하다 말고 나를 봤다. 그러고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잘 다녀와."


사춘기 아들이 그렇지 뭐. 아들을 보고 있자니 눈시울이 붉어져 빨리 얼굴을 돌렸다.

가슴이 아팠다. 수술할 곳보다 더.


* * *


수술 당일.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 남편이 내 손을 잡았다.


"금방 끝나. 나올 때 내가 여기 있을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라고 말하려는데 목이 안 떨어졌다.


수술실 앞 대기실의 천장은 다른 병실과 다르게 뭉게구름으로 꾸며져 있었다. 여기서 대기하면서 희망을 가지라는 것일까? 잠깐의 수술실 앞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취과 선생님이 뭐라고 하는데 잘 안 들린다. 산소마스크를 씌우는 것 같다. 숫자를 세라고 한다. 열부터 거꾸로.


"열, 아홉, 여덟, 일곱..."


여섯은 기억이 안 난다.


* * *


눈을 떴다.


천장이 보인다. 아까랑 다른 천장. 조명이 눈부시지 않다. 회복실인 가 보다.

간호사가 깊게 심호흡을 해서 몸 속에 있는 마취독소를 빨리 빼내라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두통으로 많이 고생할거는 충고에 아직 마취에서 완전히 깨지 않은 비몽사몽한 상태로 계속해서 입과 코로 깊숙한 곳에 들어가 있는 마취 성분을 빼 내려고 노력한다.


"여보, 일어났어?"


남편 목소리. 고개를 돌리니까 남편이 의자에 앉아 있다.


"수술 잘 끝났어. 의사 선생님이 깨끗하게 다 제거했대."


"...아이들은?"


"학교 갔어. 끝나면 데리고 올께."


고개를 다시 천장으로 돌렸다. 하얀 천장. 형광등. 천장에 얼룩 같은 게 있다. 저거 물 샌 자국인가?


멍하니 천장을 보다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


'내가 죽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수술이 잘못됐으면. 마취에서 안 깨어났으면. 그냥 그렇게 끝났으면.


장례식장에 누가 왔을까. 회사 사람들? 올까? 박팀장도 왔을까? 와서 뭐라고 했을까? "금이씨 일 잘했는데, 아쉽네~" 이랬을까?


남편은? 아이들은? 시준이는 울었을까? 그 애 맨날 무뚝뚝한 척하는데, 울긴 했을까?


그리고 나는? 나는 뭘 남겼을까?


20년 동안 야근하고, 주말에 출근하고, 아이들한테 미안해 면서 일하고. 그래서 남은 게 뭐지? 보고서에 '담당: 박현수'라고 적힌 서류들? 그게 내 인생이었어?


눈물이 났다. 천장을 보는데 눈물이 흘러서 귀로 들어갔다. 간지럽다.


"여보, 왜 울어? 어디 아파?"


남편이 놀라서 물었다. 고개를 저었다. 아픈 게 아니야. 아픈 게 아니라...


"나... 뭐 하고 살았지?"


남편이 대답을 못 했다. 나도 답을 모르니까. 47년을 살았는데, 내가 뭘 하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 * *


퇴원 날.


짐을 챙기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회사 메일 알림.


[인사팀] 파견 관련 면담 요청의 건


파견? 나 파견직 아닌데? 20년 정규직인데?


메일을 열었다.


'오금이 님께서 파견 근무 중인 ○○지사의 계약이 금년 말로 종료될 예정입니다. 이에 따른 향후 업무 배치에 대해 면담을 요청드립니다...'


손이 떨렸다. 암 진단받았을 때와는 다른 떨림이었다.


이게... 설마... 잘리는 건가?



(다음화에 계속)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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