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없다. 똑같은 사람이 없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생각이 미세하게나마 차이가 있다는 의미이다. 같은 취향의 사람들이 모인 모임에서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분명 차이가 있다. 친구와 나는 막스 리히터의 ‘Sleep’이라는 곡을 좋아하지만, 그 친구가 그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와 내가 그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는 다르다. 친구는 그 음악을 수면용을 활용하고 있고, 나는 그 음악을 들으며 들뜬 마음을 안정시킨다. 아버지와 나는 둘 다 명상을 즐기지만, 접근하는 방식도 이유도 다르다. 아빠는 복잡한 머리 속을 비우고 쉬고 싶어서 명상을 하시고, 나는 감정을 평정하게 다스리고 싶어서 명상을 한다. 아버지는 숫자를 세면서 명상을 하지만, 나는 호흡에 집중하며 떠오른 생각들을 살피고 버리는 방식으로 명상을 한다.
우리가 다른 것은 당연하다. 우리는 인간 문화의 상징 체계 내에서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으로 묶여 분류되고 있지만, DNA의 미세한 부분과 뇌세포의 신경 연결망의 구조, 몸의 상태, 살아하는 디테일한 환경과 욕망의 세부적 내용 등 수많은 부분이 다르다.
사람 사이에서만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고양이도 개체마다 성격이나 기질이 다르다. 살고 있는 집에서 두 마리의 고양이를 기르고, 어머니 댁에서 한 마리의 고양이를 기르는데 세 마리가 각자 너무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어머니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는 우직하기 이를데 없다. 시골 주택 앞 마당에 사는 고양이는 집 안으로 들이려 했으나 극구 거부하고 현관 문 앞을 개처럼 지키고 있다. 당연히 고양이를 묶어두지 않았지만 대부분 집 마당이나 발코니에서 시간을 보내는 노랑이는 사람이 다가가면 벌러덩 누우며 온갖 애교를 부린다. 하지만 절대 안기지는 않고, 만지는 것 조차 싫어한다. 사료나 생선을 좋아하고,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낯선 사람이 오면 경비병처럼 문 앞에서 들어오지 못하게 가로막는 독특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우리 집 첫째, 꾸꾸는 새침하기 이를 데 없다. 살짝 쓰다듬기만 해도 내 손에 묻은 떼가 자기 털에 묻었을까봐 한참 동안 혀로 내가 만진 부위를 핥아 닦는다. 너무 사랑스러워 꼭 껴안으면, 딱 5초 정도 참아주고는 몸부림을 치며 빠져나간다. 반대로 막내 고양이 사랑이는 내가 꾸꾸를 안으면 질투심에 응애응애 운다. 꾸꾸를 놓고 안아주면 사랑이는 몇 분이 지나도록 내게 안겨 있는다. 내가 지쳐 빠져나가려 하면 더 찰싹 달라붙는 사랑이는 강아지보다 더 강아지 같은 개냥이다.
사람이나 동물 사이에만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장미도 자세히 살펴보면 모양새와 빛깔이 조금씩 다 다르고, 한 그루의 나무 안에도 잎 사귀마다 생김이 다 다르지 않은가.
세계는 92개의 기본 원자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원자들이 만나 분자로 결합하면서 전에 없던 성질을 띄며 변화한다. 예를 들면 수소 두 개와 산소 한 개가 만나 전에 없던 성질을 지닌 물이 되고, 나트륨 한 개와 염소 한 개가 만나 전에 없던 성질을 지닌 소금으로 변화하는 식으로 원자들이 만나 결합하면서 전과 다른 무엇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는 어떤가. 분자들이 결합하여 생긴 생명체는 진화하고 번식하면서 계속 차이를 만들어낸다. 자연 자체가 이렇게 계속 다양성을 생성해 내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세상은 나와 다른 것들로 들끓고 있다. 차이 밖에 없는 세계. 사실, 자세히 살펴보면 나 조차도 매일 매 순간 변하고 있지 않은가… 모든 것이 다양성 속에서 변하는데 변하지 않고 모든 것이 똑같이 고정되어 있으며 공장에서 찍어낸 상품처럼 서로 간에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차이와 다름, 그리고 변화를 망각하는 순간 꼰대가 되는 것 같다. 세상에는 n개의 생각, n개의 삶이 있고 각자 고유한 모습을 띄고 있는데, 그 차이와 다름을 보지 못하고 자기 기준으로 세계를 분별한다면 오해와 착각 속에서 병들어 갈지 모른다. 나도 모르는 사이 너무 쉽게 타인과 세상을 이렇다, 저렇다 판단할 때가 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런 시시비비의 행위가 부끄럽고 민망한 이유는 다양한 세계의 실상을 깜빡한 채, 딱딱한 기준으로 나와 다른 세계를 분별하는 것이 정서적 폭력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심한 사이 다름과 차이를 보지 못하고 자기 동일성에 갇히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꼰대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다름과 차이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습관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이 작은 노력으로부터 언젠가 에고를 벗어던지고 무수한 다름 속에서 ‘하하하’ 웃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