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프맨작가 Jun 28. 2024

중년 인문학에서 배우는 로고스 파토스 에로스  

이제 정말 멋지게 사시나요? 조화로운 행복한 인간형 


우리는 인생을 이성적으로 살고 있나요? 아니면 감성적으로 살고 있나요? 


그것도 아니라면 열정적으로만 살고 있습니까? 


칼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떨어지지 않을 만큼 냉혈한이세요? 차거운 이성으로 세상 모두를 해결할 수 있나요? 비틀거릴 정도로 연약한 감수성으로 꽃잎이 떨어져도 눈물이 흘러내리나요? 


열정이란 이름으로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감추고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을 내팽개치고 사회적 성공을 위해서 달려가는 것만 정답일까요?  




이 세상은 우리를 억압하면서 중년까지 이성적으로, 실수 없이 감정에 치우지지 않도록 강요받고 살아왔습니다.  사실 학창 시절에는 감수성이 풍부한 영혼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어른이 되어서 때때로 피눈물도 없는 냉혹한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그것을 열정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타인과 주변에 대한 공감 능력 없이 냉혈한이 되어 사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이성의 힘일까요?  




물론 올바른 이성의 힘은 제대로 생각하는 것이고 지성을 바르게 작동하는 것이기에 결코 비도덕적이거나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어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사회 지도층이나 연예인들 중에서도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이성의 힘을 어두운 쪽으로 발달시키고 페르소나(가면)을 쓰고 사는 사람들이 있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로고스, 파토스, 에로스의 세 가지를 삶의 가치로 자신을 훈련시키고 다스리는 아름다움으로 보았습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현인들이 강조한 덕목입니다. 


오늘날에도 똑같이 사람 사는 세상에서 꼭 익혀야 하는 역량이고 품성이라고 생각합니다.









1. 로고스(Logos): 이성 또는 논리적인 사고를 추구하는 욕구입니다. 이는 인간이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능력입니다. 플라톤과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는 로고스를 특히 강조하였습니다. 현대 철학과 현대의 시대는 이성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기에 20세기에 이성보다 파토스가 더 주목을 받아왔던 점들이 있습니다. 




2. 파토스(Pathos): 감정 또는 감성을 추구하는 욕구입니다. 이는 인간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타인과의 공감을 통해 소통하는 데 필요한 능력입니다.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와 20세기 프리드리히 니체의 철학, 실존주의 철학들을 통해서 개개인의 감정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시대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로고스와 파토스의 조화로운 인간형이 이상적입니다. 




3. 에로스(Eros): 사랑 또는 열정을 추구하는 욕구입니다. 이는 인간이 삶의 목적을 찾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동기부여를 제공하는 데 필요한 능력입니다.


플라톤의 <향연>에서 에로스를 제대로 정의한 연설자들이 등장합니다. 에로스는 인간이 가진 가장 큰 힘이고 인류사를 끌어온 동기부여의 가장 큰 에너지라고 생각합니다.  









람은 누구나 이성과 감정을 적절하게 배합하여 생활하게 되지 않습니까! 인간관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감정을 억누르고 이성적으로만 살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특히 사회적인 관계에서 감수성은 개인적인 것이기에 남들에게 보이면 안 되는 것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많겠습니다. 감정에 치우치면 눈물이 많아지니까 경쟁 사회에서 허약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겠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나 에로스는 다릅니다. 특히 플라톤 대화편의 책들에서 <향연>은 에로스에 대한 여러 가지 견해들을 나눕니다. 에로스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요.. 모든 생존 번영을 불러일으키는 사랑과 창조력, 영감의 열정입니다. 우리 삶에 대한 사랑이고 열정이기에 사회적 관계에서 에로스가 드러나는 사람이 매력적으로 돋보입니다. 이성적인 사람도 또 감수성이 많은 사람에게도 모두 필요한 인간의 능력이 에로스라고 생각합니다. 









일하는 것밖에 모르던 중년의 남자가 있습니다. 어려서는 너무도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로 또 청소년으로 성장하였습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또 성인으로서 걸맞은 남자로 살아야만 했습니다. 특히 가장의 어깨가 무거워서 늘 차가운 이성으로만 세상을 살아왔어야만 했습니다. 이 남자는 취미생활도 없고 좋아하는 것은 고작 술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는 것이 전부였던 사회생활을 이어왔습니다. 30년쯤 그렇게 살다 보니 인생 후반기를 맞이하여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앞으로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할지 고민하게 됩니다. 블로그 글쓰기를 만나서 사진과 글을 남기면서 온라인 세상의 이웃들과 행복을 교류하게 됩니다. 숨어있던 창작가의 본성을 찾아내어 행복감을 맛보게 됩니다. 



  


중년의 여자가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예술을 사랑하고 창작하는 것을 좋아하였습니다. 역시 엄마로서 아내로서 열심히 살아오느라고 이성적으로만 살려고 노력한지 수 십 년이 흘렀습니다. 자신을 잊고 자식들, 남편에게만 모든 열성을 쏟아부어 살았던 세월이 결혼생활을 30년쯤 흘러버렸습니다. 그제야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 나서게 됩니다. 미술 수업에 참여하여 그림을 그리면서, 첼로같은 현악기 연주를 배우면서 눌려있던 감수성을 일깨우면서 행복을 맛보게 됩니다. 


  


  


그들 중장년의 남성, 여성 모두 로고스의 인간형인 것이 세상의 척도로 보았지만, 그들은 감정, 파토스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 파토스는 늘 로고스 밑에 숨겨져서 드러나면 안 되었습니다. 어른이 되어서 사회적인 존재가 되어서 더욱 그렇게 차가운 이성으로만 세상 속에 살아남아야 했습니다. 



 


그러한 감수성이 사람다움을 잊고 산 지 40년, 50년이 지나서 대부분 겨우 60세 전후가 되어서야 인생 후반기를 준비하게 됩니다. 자신을 찾으려는 것이지요. 자신의 재능, 자신이 사랑했던 것을 되찾으려고 하게 됩니다. 그때 열정이 끓어오릅니다. 그것이 우리들의 삶의 진정한 모습, 참나를 찾아가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부드럽고 상냥한 마음의 문을 닫지 마셔요. 자신의 따뜻한 감성과 눈물 젖은 감정을 속이지 마세요. 이성으로만 논리적으로만 차갑게 세상을 바라보지 마셔요. 이성의 시대가 언제나 옳았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19세기 칸트나 헤겔이 지배하던 시대, 서양의 이성이 지배하던 시대는 20세기 인간의 감정을 높게 인식하는 시대였습니다. 이제 시대적 가치가 달라졌습니다. 저는 오늘 이 시대를 이제 열정의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에로스가 필요한 시대, 그것도 자신을 창조할 수 있는 창작력, 상상력의 시대로 우리의 삶을 채워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렇기에 올바른 이성의 잣대가 필요합니다. 제대로 된 이성의 힘은 삶에 필요한 소중한 지식과 지혜를 쌓아갈 수 있습니다. 이성의 힘이 감수성과 열정, 인간다움의 이렇게 세 요소가 조화로운 인간이 비로소 참다운 행복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러한 균형의 가르침을 위해서 인문학이 필요합니다. 인문학은 철학과 예술을 끌어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문학에서 이렇게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니코마스 윤리학>의 저자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은 에우다이모니아라고 불리는 최고의 선, 자기실현적 행복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행복은 자신의 능력과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목표를 달성함으로써 얻는 성취감과 만족감을 의미합니다. 또한, 성장을 위한 모든 노력과 과정도 행복이 될 수 있으며 이 경우 타인의 평가가 아닌 본인이 의미를 두는 것에서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자기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열정을 다해서 그 꿈을 이루어가는 행복만큼 값진 것은 없습니다. 그곳에 로고스, 파토스, 에로스의 정신이 조화를 이룰 때 커다란 동력이 만들어질 겁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적절한 밸런스와 중용을 유지하며, 자신의 능력과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타인을 설득하기 위해서 로고스 에토스 파토스 등이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타인을 설득하기 전에 자신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중용의 행복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균형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이성적(로고스), 감성적(파토스), 열정(에로스)이 있는 사람의 균형적인 삶이야말로 정말 멋지게 살아가는 방향을 제시하여 줍니다.  중장년, 이제 정말 조화롭고 멋진 모습으로 행복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문학의 향기, 사회비평, 안톤 체호프의 <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