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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프맨작가 Jun 27. 2024

문학의 향기, 사회비평, 안톤 체호프의 <내기>

안톤체호프의 감동적인 단편소설 <내기>와 사회비평


은행가와 젊은 변호사가 다른 지성인들과 토론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 토론의 주제는 '사형집행'이냐? '종신형이 더 나은가?'에 대한 찬반이었습니다. 


사형집행이 죽임을 빨리 끝내기에 훨씬 더 인간적이라는 의견에, 


젊은 변호사는 반대 의견을 내어놓고 은행가와 강렬한 토론 끝에 내기를 합니다. 


은행가는 독방에서 5년 견디는 것에 200만 루블을 주겠다고 걸자, 


젊은 변호사는 오히려 15년을 견디면 200만 루불을 줄 것을 약속받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독방에서 몇 년 아니 몇 달만 버티다가 이내 정신병에 걸리고 말 겁니다. 


더군다나 약속의 조건은 독방에 있는 동안 말을 하지 않는 겁니다. 금언 수행이었던 겁니다. 


이 충격적인 15년 세월을 엄청난 돈을 받기 위해서 시작하였을까요?




15년 동안 독방의 변호사는 독서를 탐독하면서 인생관 세계관이 완전히 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5년간 독방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습니까? 그가 살아남은 것은 독서를 통한 인간사 탐구 - 수많은 책들 때문이었습니다. 


아니, 그 독방은 그에게 인류사의 모든 것을 탐구하는 연구실이었고, 수행자의 기도실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피아노를 연주하기도 하였지만, 수년 안에 음악은 멈추었습니다. 


그 젊은 변호사는 40세가 될 때까지 독방에서 책을 통해 수양을 하면서 견디게 됩니다. 




그가 15년 되는 그날 적은 글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모든 것들이 헛되고 덧없다. 지상의 축복 모두를 경멸한다."


"도시를 불태우고 세계를 정복했다."


"나는 당신들의 삶의 방식을 혐오한다."


"나는 약정시간 5분 전에 나갈 것이다. 이 계약을 위반하고 200만 루블을 받지 않을 것이다."









200만 루블을 주면 파산할 것을 두려워하여 그 독방의 변호사를 살해하기 위해 은행가가 감옥에 잠입합니다. 그곳에 초췌한 모습으로 뼈만 앙상하게 남은 수행자 그 변호사가 잠들어 있는 것을 보고 은행가는 가엽게 여깁니다. 탐욕스러운 은행가가 발견한 것은 변호사가 남긴 깨달음의 글이었습니다. 은행가는 그 편지글에 감동을 받고 그 독방의 수행자의 머리에 키스를 하고 돌아와서도 깨달음에서 수치심에 떨었습니다


은행가는 죄수가 탈출한 것을 무마하면서 그의 편지를 금고에 넣으면서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은행가는 그 내기에서 이겼을지 몰라도 15년 독방에서 수행생활을 견뎌낸 한 인간을 파멸하지 못하였습니다. 그 은행가는 오히려 15년 동안 자본주의 세계에 짓눌려서 빚을 많이 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15년을 이 세상의 모든 책으로 수행한 변호사는 오히려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이 현실 세계를 떠납니다. 


마지막 몇 년간 탐독한 성경조차도 그의 깨달음을 말릴 수 없었고, 이 세상의 모든 지식들도 그의 세계관을 파괴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오히려 수많은 책들을 통해서 자본주의에 타협하지 않는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안톤 체호프의 <내기>라는 이 단편소설은 여러 가지를 시사합니다. 겉으로는 독서 책읽기의 수행자를 보여줍니다. 책읽기를 통해서 인류사, 종교, 철학.. 그들 모두를 만나고 여행하던 독방의 수행자를 공감하게 됩니다. 그 감동을 더 이상 서평에서 추정하기 보다 감동적인 수행자의 편지글로 갈음합니다.  마지막 문장들 그 기인 - 15년 동안 독방에서 독서로만 수감하면서 보내고 깨달음을 가진 자의 소설 속 마지막 대목의 편지글을 공유합니다.  



"내일 밤 자정이면 나는 자유를 얻고 사람들과 지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 방을 떠나 해를 다시 보기 전에 여러분에게 몇 마디 해줄 필요성을 느낀다. 나의 떳떳한 양심을 걸고, 또한 나를 지켜보시는 하느님 앞에서 나는 자유와 생명, 건강을 비롯해 당신들이 쓴 책에서 지상의 축복이라고 일컫고 있는 모든 것을 경멸한다고 선언한다.



    15년에 걸쳐 나는 열심히 지상에서의 삶에 대해 연구했다. 사실, 나는 그동안 땅을 밟지 못했고 사람들도 만나지 못했다. 대신 당신들이 쓴 책에서 향기로운 포도주를 마셨고 노래를 불렀으며 숲에서 사슴과 멧돼지를 사냥했고 여성들을 사랑했다. 천재 시인들의 마술에 의해 창조된 아름다운 여인들이 마치 영묘(靈妙)한 구름처럼 밤이면 내게 찾아와 멋진 이야기를 속삭였으며 나는 그 이야기에 취했다. 



    당신들의 책 속에서 나는 엘브루즈산과 몽블랑산에 올라 아침 해돋이를 감상했고 저녁에 하늘과 대양과 산 정상이 자줏빛 황금색으로 물드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것들 위로 번개가 구름을 가르며 번쩍이는 것을 보았다. 나는 푸르른 숲들, 들판들, 강들, 호수들, 도시들을 보았다. 나는 사이렌의 노랫소리와 목동들의 피리 소리를 들었다. 나는 내게 날아와 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아름다운 악마들의 날개를 만지기도 했다. 당신들의 책 속에서 나는 바닥 모를 심연에 몸을 던지기도 했고 기적을 행했으며 살인을 하고 도시를 불태워 잿더미로 만들었으며 새로운 종교를 설파하고 전 세계를 정복하기도 했다.



    당신들의 책은 내게 지혜를 주었다. 수 세기에 걸쳐 인간이 이룩해 낸 모든 사상들이 내 두개골 안에 응축되어 쌓였다. 나는 내가 그대들 모두보다 현명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나는 그대들의 책들을 경멸하고 이 세상 모든 축복과 지혜를 경멸한다. 모든 것들이 헛되고 덧없으며 마치 신기루처럼 환영(幻影)에 불과하고 우리를 기만에 빠지게 만들 뿐이다. 그대들이 아무리 자부심이 강하고 현명하며 아름답다 할지라도 죽음이 그대들을 ... (중략)


   당신들은 미쳤고 길을 잘못 들었다. 당신들은 그릇된 것을 참으로 받아들이고 추한 것을 아름답다고 하고 있다. ... (중략)




나는 내가 당신들의 삶의 방식을 얼마나 경멸하는지 행동으로 보여주겠다. 나는 내가 한때 천국처럼 꿈꾸었던 200만 루블, 하지만, 지금은 혐오하는 그 돈을 포기하겠다. 나는 그 돈에 대한 나의 권리를 스스로 포기한다." 



 - <안톤 체호프 단편집>, 안톤 체호프 / 진형준 



우리는 과연 큰돈을 받기 위해서 감옥의 독방에 갇혀서 15년을 살 수 있을까요? 


신문기사들에서 쉽게 찾게 되는 사람들 중에서 정치인, 경제사범, 연예인 등등 유사한 사례들이 보이기는 합니다. 한탕 해먹기 위해서 기꺼이 감옥행을 감수하는 사람들이 이 부조리한 사회에 있어 보입니다.  악행을 저질러놓고 형량을 감하려고 법망을 피해서 권세를 등에 업고 사는 뻔뻔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안톤 체호프가 이런 사람들을 꼬집어서 이 소설을 창작하였을 겁니다.



 


문제는 감옥에서 개과천선도 하지 않고, 또 좋은 사람으로 인생 공부를 제대로 하지도 않고, 다시 한탕을 위해서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이 소설을 읽히게 하고 싶습니다. 문학의 향기로 그들의 악취와 악행을 씻기고 싶습니다. 적어도 온갖 탐욕에서 돈을 잃지 않으려고 안절부절못하던 은행가가 겪는 수치심에 떨게 하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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