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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프맨작가 Jun 26. 2024

깨달음! 사람이 산다는 것 복합건축물, 종합무대 만들기

건축물 공사에서 깨달음 인생이란 


30년 전 첫 직장이 건설업계였기에 매일 건물이 올라가는 것을 현장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때 젊은 눈으로 거대한 건축물이 완공되는 것에 뿌듯한 감동을 느꼈다. 내가 현장의 감독자, 작업자는 아니었지만 저 건물들의 건축자재를 공급하였기 때문에 건축물의 한 부분을 책임지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30년이 지난 오늘 지금은 일터의 건물을 바라보면서 완공되는 단계마다 감탄하게 된다. 매일 일터에서 만나는 건축물 현장의 진도를 확인한다. 그곳의 감독관도 그곳의 설계자도 아니었지만, 완공 후 그 일터에서 땀 흘리면서 돌아다닐 사람으로서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더불어 그 건축물이 들어서기 전에 나의 산책길이 몹시 그리웠다. 애증의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따뜻한 눈길로 바꾸어져가는 나를 만나게 된다. 이 공사가 곧 마무리되어 도로도 정리되면 나의 2년간 정이 들어버린 저녁 산책길이 다시 열린다. 




공사 기간 수개월 준비 기간 후 드디어 꿈의 무대가 열리려고 한다. 저 붉은색 커튼 뒤로 건축물이 드러나는 순간을 며칠째 기다리고 서성였다. 현장의 먼지를 막아내기 위해서 대형 커튼 장막을 쳐놓았는데, 꼭 무대가 열리는 기다리는 흥분감을 느끼게 하였다. 이어붙인 천들이 오히려 건설 현장의 손때가 묻은 인간적인 냄새가 풍겨왔다. 















건축물은 인류가 거주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이다. 그 공간에 아무 생각 없이 땅을 딛고 벽에 보호를 받고 살았다. 자연은 이미 인류의 보금자리를 주었지만, 인류는 스스로 인류에게 적합한 인공적인 보금자리를 건축물 안에 만들어왔다. 공동생활부터 개인생활까지 건축물의 발전이 인류사의 발전이었다.   




건축물을 만드는 설계자,  건설노동자가 아닌 건물 조각가들의 헌신을 다한 작업이 있었기에 새로운 공간이 자연에서 떼어내어 창조된 것이다. 저 현장 위에 매달린 건축물 조각가들의 정성과 땀이 배어있기에 우리는 편안히 실내에서 주거하고 일하게 되는 것이다. 대자연에 인간의 인공물이 늘어날 때마다 사람들의 세상은 그만큼 더 편안해지는 것일진대, 수개월 흙먼지를 뒤집어쓰신 분들이 정말 고마운 건설 현장이다. 








꼭대기에 매달려서 철골을 잇고 이음새들을 점검하는 작업자는 정말 달인이다. 


저분들이 있기에 우리들의 건축물이 안전하고 튼실하게 세워짐을 고맙게 생각한다. 








대자연은 정말 건축물을 분리시킨 것인가? 아니다 다만 새롭게 품을 수 있게 잉태하였을 뿐이다.


대자연이 신이라고 비유하게 된다. 바빌로니아 왕국의 바벨탑은 대자연을 거스를 것이 맞을까? 바벨탑을 세우고자 했던 인류는 파괴되어 뿔뿔이 흩어졌다는 신화의 메시지는 과연 인류의 오만을 심판한 것인가? 오늘날 수많은 마천루 건축물들은 모두 바벨탑의 후손들이 아닌가! 




그 건축물에 마지막 생명을 불어넣는 존재는 그 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다.


지붕이 생겨나 하늘을 덮고 날씨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오만은 버리자. 


자연이 잉태하는 사람의 인공물, 우리는 그 공간에서 새롭게 일터와 주거를 생산해 내어야 하는 책임을 지닌다. 인공물이지만 자연과 조화롭게 사람들과 조화롭게 살기 위한 큰 운명을 안고 태어났다.   




철골구조물이 뼈대라면


전선과 통풍 장치는 피의 순환이다


콘크리트는 피부 중에 하나이지만,


나무가 그리워지면 바람에다 호소하는 창문에 만족하게 된다.


과거에는 수만 명의 노예들, 혹은 임금을 받는 노역자들이 거대한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서 희생당하였다. 


만리장성에 수 천명이 파묻혀 죽었을 것을 생각하면 인류사의 유적들이 비인간적인 독재자들의 위세였던 것이다. 




오늘날 건축물들은 인간적이다. 웅장한 건물을 창작하기 위해 소수 인원으로 조각을 해내는 사람들


그들 모두 장인의 표창을 받아 마땅하다. 그들은 예술가처럼 새벽부터 밤까지 건물에 온몸을 다 바친다. 


미켈란젤로가 밑그림을 그리고 조각하였듯, 건축 장인들은 설계도면이 있다. 


하지만 설계도면대로 조각해 내는 것은 조각 가요, 장인들이다. 


그 안에 들어갈 기대감에 날마다 창문보다 크게 뚫린 하늘에 기도를 한다.











사람이 산다는 것 복합 건축물, 종합무대를 만드는 것이다. 어떤 이는 바벨탑을 세우고, 어떤 이는 헨리 데비드 소로우의 월든 호수, 그 겸손한 호숫가의 집이면 족하다. 문제는 그 건축물 안팎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사람은 인생이란 무대에 투척된다. 대본도 자신이 써야만 비로소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건축물을 세우는 것이다. 그 대본은 설계도면과 같다. 설계도면은 자신이 세우려는 건축물에 따라서 달라져야 한다. 더불어 자신이 만든 설계도면대로 실천에 옮기는 것은 꾸준한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장인 정신으로 인생을 조각하여야 한다. 자신의 무대이기에 무엇보다도 애정을 가지고 책임감 있게 건축물을 완성해야 한다. 그 무대의 관계자들과 타협도 하고 협업도 해야만 인생의 건축물이 설계도면대로 올라간다. 어떤 이는 전원의 땅에 소박한 단독주택을 세우는 것에 만족할 수도 있다. 또 다른 이는 마천루 같은 복합단지를 건설하는 엄청난 꿈을 실현하는 데 인생을 바칠 수도 있다. 어떠한 건축물이 대자연에 거슬리지 않고 운명을 가르는 작품이 될지는 완공될 때까지 아무도 모른다. 자신만이 공정의 과정 중에서 때로는 만족하고 때로는 다시 뜯어고치면서 인생 건축물이 세워지는 것이다. 레고처럼 그렇게 블록화되어 있지도 않다. 우리의 인생은 변화무쌍하고 행운과 불행이 찾아오는 열린 무대이다. 비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오더라도 멈출 수 없는 공연을 우리의 건축물의 종합무대에서 상연해야만 한다. 결국은 그 종합무대의 건축물에서 감독도 배우도 장치 관리자도 공연기획가도 설계 감리도 모두 나 자신의 몫이다. 그 안에 주거하고 일하고 있는 우리들이 주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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