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제주도에서 이중섭 화가의 주거지를 만났습니다.
그가 그의 생애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공간이었다고 고백하였던..
하지만 너무도 작은 집, 셋방살이 공간이 들어있는 집터를 다녀왔습니다.
이 집의 작은 방에 두 아이와 이중섭 화가의 부부가 함께 잠을 청했습니다.
한 사람이 눕기에도 머리와 다리가 꽉들어차는 이 작은 방(4.6 m2)에서
그 시절 인생의 한 때였던 이중섭 화백은 고백합니다.
한국전쟁 피난시절 한때를 가족들이 완전체로 모여서 살았던 그 때가 행복하였다고 합니다.
이중섭 화가의 감격스런 감동의 미술작품들보다
이중섭 거주지, 이 방에서 더 큰 감동을 받게 된답니다.
왜일까요? 가족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끌어안고 살아간 화가의 삶이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이중섭 화가는 아내와 아이들을 일본으로 떠나보내고
제주도 생활 이후로 가족과 함께 살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가족들이 함께 사는 것이 너무나도 평범한 일상인데,
그마저도 누리지 못한 화가의 삶이 얼마나 처절하게 그림을 그리게 하였을까요!
이중섭 화가는 그림을 팔아서 일본에 있는 가족을 만나려고 애를 썼습니다.
처절하게 예술 창작을 하는 이유가 가족을 만나기 위한 것이었겠지요.
그의 작품은 그렇게 가족을 위한 애끓는 그리움, 사랑을 담은 작품들이었습니다.
그가 그린 가장 유명한 작품이 한국의 소인데요,
그는 한국소에서 강인한 정신을 보았다고 합니다.
과연 한국소가 강인하였을지 결혼 전에 성인이 되기 전에는 몰랐습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 결혼 후에 뼈저리게 느낍니다. 어려웠던 시절 가족을 위해서 온갖 희생을 모두 감내하였던 한국 들판의 소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뼈만 앙상하게 남을 때까지 일만 죽도록 해야했던 우리 부모들의
모습이 아니었을까요? 그는 그의 정신을 이 한국소에 투영하였던 겁니다.
자신의 가족들을 위해서 가장노릇을 하기 위해서 예술 창작을 위해 일해야 했던
불운한 시대의 화가 이중섭이 한국소와 일맥하였겠지요.
그가 그린 가장 낭만적이고 행복하던 시절의 작품들이 이 아이들에 대한 그림들입니다.
두 아이가 천진하게 놀면서 아빠, 엄마와 함께 자라던 그 시절을 그린 작품들입니다.
저희들도 우리들의 아이가 천진난만에게 아빠, 엄마 앞에서 놀아주었던 그 시절이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겠지요. 그 때, 아이의 심정을 담아낸 이중섭 화가의 붓터치가 이렇게 동심보다 더 웃음을 꿈틀거리게 하던 그림을 바라보게 합니다.
이중섭 화가는 예술가이기 이전에 한 가정의 가장이었고, 남편이었으면 아빠였던 것입니다.
그의 일본인 아내와 바다 사이를 두고 만나지 못한 바다를 건너 국경을 초월한 러브스토리가 너무도 가슴 아픕니다. 그의 삶이 이토록 가슴이 미어지게 합니다.
그가 살았던 제주도 마을의 풍경을 그렸습니다. 지금은 그런 옛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변했버렸네요.
변하지 않은 것은 섶섬과 바다의 풍경이고요, 지금은 바다마저 방파제의 울타리가 쳐있는 모습으로
도시를 감싸고 있는 서귀포 시내의 동네풍경이 아늑하게 보입니다.
그 당시 이중섭 화백이 남긴 그림 속의 마을은 제주도 전통 가옥들의 지붕들이 더 빼곡히 담겨있습니다.
지금보다 도로는 보이지 않고 사람사는 풍경과 섶섬, 바다만 보이는 걸작입니다.
이중섭 화백은 이 그림으로 자연과 사람사는 마을로 이분 구도하였고 그가 살고 있던 셋방살이 집을
한 켠에 담아넣었을 겁니다.
사람사는 마을이 주인공인지 섶섬이 주인공인지 꼭 분간할 필요도 없습니다.
섶섬을 바라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모두 이 그림에 그려넣은 것입니다.
그가 그의 가족과 함께 살았던 마지막 시절, 아름답고 처연하던 그 가족 사랑의 시절을 이 그림이
그려넣었습니다. 어찌 우리들이 이 그림에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있을까요!
이렇게 영원히 그의 가족이 함께 이 풍경 속에서 살아가기를 바라게 되었던 이중섭 화백은
소의 말이라는 글을 후대에 남겼습니다.
<소의 말>
높고 뚜렷하고
참된 숨결
나려 나려 이제 여기에
고웁게 나려
두북 두북 쌓여
철철 넘치소서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아름답도다 여기에
맑게 두 눈을 열고
가슴 환희
헤치다
<이중섭 화백의 소의 말>
제주도 서귀포시의 이중섭 미술관을 다녀왔습니다
자꾸만 밟히는 그의 집터와 <소의말>의 글이 마음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의 심정을 한 가족의 가장으로서 조금은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가장으로서 무엇이든 뭣하겠습니까!
심지어 그의 작품을 아끼던 예술가라도 그의 그림 몇 점 더 팔고 가족을 다시 만날 수 있었기를...
제주도에 다녀온 며칠동안 혼자만의 시간, 가족과의 시간들이 올레길에서 빛나는 추억이 되었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이중섭 화백이 가족과 머물렀던 서귀포의 한 평짜리 방을 보고 온 것이
뜨겁게 가슴을 달구었습니다. 그분의 인생의 화두는 가족, 예술 - 한국적인 것이었는데..
지금까지 우리들의 감동을 자아내는 이중섭 화백을 이해하는데 더없이 좋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예술가의 작품은 예술가를 이해하여야 합니다.
그의 위대한 삶을 이해하는 것만큼 더 가치를 갖게 되는 것이 정당합니다.
예술가, 이중섭 화백은 사랑의 화신이었고 그의 그림들은 그렇게 절절하게 호소합니다.
내게 이중섭 화백이 더 위대한 예술가로 존경하게 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번째는 그는 가족을 너무 사랑하였다는 것이고,
가장 역할을 제대로 못한 것이 그의 애잔한 작품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두번째는 한국인이라는 점을 잊지 않고 한국적인 예술 세계를 창조하였다는 점입니다.
예술가로서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고 그의 작품 세계에 녹여내었던 것은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숭고하고 진실한 작업이라고 믿습니다.
예술가 정신, 작가 정신은 뿌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굳게 믿습니다.
2023년 9월9일 제주도에서 돌아온 후에 적은 글에서..
작년 겨울에 현대미술관에서 이중섭 컬렉션이 열려서 다녀온 블로그를 함께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예술의 향기, 현대미술관 이중섭 컬렉션 보세요! 가족 사랑의 삶, 사랑의 화신 대화가 이중섭의 감동 스토리
항일운동 시기, 한국전쟁 시기, 어려웠던 시절, 우리들 곁에서 불꽃처럼 살아가신 분들이 계십니다. 그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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