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니즘이 답이다!
지난 주말 21년 전에 최고의 흥행으로 유명했던 그 영화 <아이 로봇>을 다시 감상하였다.
그 당시 이 영화를 보았을 때는 황당한 스토리가 흥미롭다는 정도였는데, 그때와 다른 오늘날 인공지능의 물결이 세상을 완전히 달라지게 하였다. 더 이상 인공지능 로봇의 스토리는 황당하지 않다. 눈앞의 현실이 되었다.
무려 21년 전에 디스토피아의 인공지능 로봇에 대하여 솔루션(해결책)을 제시한 영화가 오늘날 주목된다.
아이로봇 2의 팬영상들이 꾸준하게 올라오는 사회적 현상을 이해하게 된다.
이 SF 미래 영화가 개봉된 2004년 vs 21년 후 2025년 오늘날 상황을 대비해 보게 된다.
AI 활용이 대중화되고 AI 로봇이 개발되어 상업화를 목전에 두고 있다.
이 영화의 메시지는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과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가?'
'자율 로봇이 인간에게 도움을 주고 인간을 절대 헤치지 않는 존재인가?'의 질문과 답변이다.
이 영화의 답변은 오히려 파격적이다. 'AI 심장이 착한 휴머니즘 장착 - 인간적인 혁명을 가져와야 공존할 수 있다.'라는 결론이다. 이 영화의 돌연변이 - 인간성을 획득한 인공지능 로봇이 그 성공사례다.
이 영화의 인공지능로봇, 그는 사람처럼 꿈을 꿀 수 있고, 죽는 것을 두려워하고, 사람의 선악을 스스로 판단한다. 무의식, 꿈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역량을 갖게 된 것이다.
그는 인공지능 로봇들의 리더가 되어 사람들을 위한 존재로 다툼, 갈등이 아니고 사람들을 이해 공감한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윌 스미스가 연기한 주인공 형사처럼 이 인공지능 로봇도 윙크를 주고받는 점이다.
윙크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하였던 인공지능 로봇이 '사람들의 윙크를 이해하면서' 사람과의 교감을 이해하게 되는 장면이다.
사람들은 말짓을 하지 않아도 몸짓, 손짓으로 교감하는 공감의 생명체다.
인공지능 로봇은 로직 - 논리적으로만 판단하기에 윙크 같은 교감을 모른다.
하지만 휴머니즘을 이해하는 존재들이야말로 사람과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는 답변인 거다.
과연 그런 세상이 올지 궁금해진다.
그런 시각에서 오늘날 인공지능의 한계와 가능성을 바라보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AI의 역량에 설레고 흥분하지만 그것은 효율성에 기반을 둔 결과 도출에만 한정되어 있다.
만일 인공지능이 휴머니즘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면 훨씬 더 친밀하게 공존하지 않을까!
웃음, 감동적인 울음, 유머, 공감과 이해, 기쁨, 슬픔, 환희 등의 좋은 감정들이 탑재된 인공지능이면 어떨까! 그러한 따뜻한 휴머니즘- 희망적인 존재라면 사람들과 긍정적으로 교감되는 공존의 존재가 될 거다.
인공지능의 미래에 대하여 염려하는 사람들도 많고 나도 그중에 한 사람이다.
영화 아이로봇에서 주는 메시지처럼 나의 기대는 휴머니즘을 갖는 인공지능을 기대하는 것이다.
나쁜 감정이 아니고, 긍정의 감정들, 좋은 느낌을 나눌 수 있다면 인공지능 존재들이 사람의 친구가 될 것이다. 폭력, 야만, 파괴, 불안, 우울, 걱정, 부정적인 감정들을 제거한 인공지능 AI의 미래를 고대하게 된다.
영화 아이 로봇에서 이 존재의 몸체는 인간과 완전히 다른 로봇의 형태이다. 보기에도 이질적인 존재이지만, 눈만은 사람의 눈과 닮았다. 오히려 이질적인 존재라도 눈 속에 담은 인간의 휴머니즘이 더 중요하다는 캐릭터의 메시지가 보인다.
사람들은 피부색과 민족이 다르고 국가가 다르다고 오늘날도 서로 차별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 지구촌의 동일한 휴머니즘을 가진 인간이다. 인공지능 시대, 사람의 긍정적인 희망적인 감정을 담은 존재들이 공존하는 세상을 꿈꾸게 된다.
한국인의 인구수가 감소한다는 뉴스의 보고서를 읽고 두렵고 두렵다. 어쩌면 100년 뒤 한국인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경고다. 어쩌면 휴머니즘을 가진 AI 로봇이 산업현장을 대체할 수 있다면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최근에 인공지능 관련 소설 글을 쓰다 보니 인공지능 스토리에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사람과 조화롭게 평화, 공존하는 인공지능 로봇이 기대된답니다.
디스토피아가 아닌 유토피아를 꿈꾸어볼 수 있을까요!
고백합니다. 저는 엉뚱한 생각을 갖고 있는 중년의 아빠입니다.
숙녀로 결혼을 앞둔 다 커버린 외동딸이 아쉬울 때가 있습니다.
7살짜리 아이가 아빠의 두 팔에 달려오던 그 시절이 몹시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에게 농담반 진심으로 AI 로봇 어린 딸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곤 합니다.
그렇게 영원히 자라나지 않는 어여쁜 아이가 있다면 참으로 인생 후반기가 살만할 것 같습니다.
잠시 후 정신 차립니다. 그 또한 인간의 탐욕이고 욕심임을 깨닫습니다.
AI 로봇이 인간성을 갖고 있다면 아빠 곁에서 언제나 어린이로만 성장을 멈추어 버리고 싶을까요?
어른이 되고 싶을 겁니다. 성인이 되어 사랑도 하고 싶고 먼 나라로 여행도 하고 싶을 겁니다.
그런 상념에서 부조리한 미래의 세상을 그려보았습니다.
이거 소설 소재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