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LVE, Coffee by Women
안젤리끄(Angelique Tuyisenge)는 르완다 뷔샤자(Bwishaza) 커피 협동조합의 젊은 여성 농부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아 가정을 꾸리면서 조금이라도 가정에 보탬이 되고자 조합비를 내고 커피협동조합에 열심히 참여했다. 동아프리카 여느 나라들처럼 르완다에서도 오랫동안 커피는 농부들에게 큰 소득원이었고, 가정을 지키는 수단이었다. 농부들은 오래전부터 커피를 키워 아이들을 밥을 먹이고 학교를 보냈다. 1년에 한 번 수확하여 판매하는 커피 덕에 농부들은 소를 살 수 있었고, 바나나 등 다른 작물들을 키울 밭을 더 살 수도 있었다. 25년 전 제노사이드가 있기 전부터 커피는 이 곳 르완다 국가 경제에 중요한 버팀목이었고, 안젤리끄의 부모도 커피를 키우며 그녀를 키웠다. 안젤리끄가 가정을 위해 커피를 키우는 일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어머니와 다른 세대의 여성이고 젊은 여성 농부이다. 안젤리끄는 어머니, 할머니와는 달리 커피협동조합에 조합비를 내고 직접 조합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조합 안에서 새로 생긴 여성 그룹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어떻게 커피로 더 돈벌이를 할 수 있을지 배우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커피 열매 값은 갈수록 계속 떨어지고 이전과 다르게 커피가 좋은 소득원이 되지 않는다. 실제로 르완다 커피 열매 값은 작년 대비 30%가 떨어졌다. 아이 엄마인 안젤리끄는 그녀의 어머니와 할머니보다 더 많이 배웠지만 더 힘든 세대를 살고 있다.
여성은 글로벌 커피 산업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전 세계 커피 농장의 20~30%는 여성이 운영하는 농장이며, 어떤 지역에서는 커피 생산에서 70%의 노동력을 여성이 제공한다. 그러나 개발도상국 농촌지역에서 커피를 재배하는 여성 농부들은 남성 농부들보다 토지, 자본, 정보와 같은 중요한 자원에서 훨씬 소외되어 있다. 대부분의 여성 농부들은 농장, 밭의 주인으로 법적으로 등기할 수 없고, 은행에 자신의 명의로 통장을 개설할 수도 없다. 커피 재배와 시장에 대한 교육과 농업보조금은 남성들을 대상으로 주어지며, 수확한 커피를 시장에 거래하는 일도 모두가 남성 농부들이 담당해서 실제 수입은 남성 농부에게 돌아간다. 여성 농부가 커피 재배에서 70%에 달하는 노동을 제공하지만, 적극적인 거래와 참여에서 소외되고 이는 정보의 격차와 소득의 격차를 가져온다. 이런 현실은 남성 없이 혼자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여성 농부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커피산업에서 이러한 여성 농부의 소외는 커피 산업의 발전과 커피 농부들의 만성적인 빈곤 퇴치에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여성의 재배기술의 부족과 남성 농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는 커피 농부들의 빈곤의 복합적인 원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실제 FAO(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 연구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여성 농부가 남성보다 20~30%가량 생산성이 낮은 것으로 조사되었는데, 이는 정보, 자본, 기술 등 주요한 자원에 여성이 접근할 수 없는 환경과, 사회 문화적으로 낮은 여성들의 지위로 인해 주요 의사결정에서 여성들이 지속적으로 소외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농부들의 전반적인 역량 저하는 소득감소를 초래하고, 아이들의 영양공급에 영향을 주며, 궁극적으로 농가의 빈곤을 심화시키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들로 최근의 글로벌 커피산업에서는 가치사슬에서 소외되어 있는 여성에 대해 주목하기 시작했다. 커피 농가의 빈곤 퇴치를 위한 지원들이 그간 남성 중심의 지원에서 여성을 주목하고 이들에 대한 집중적인 지원과 프로그램이 국제기구와 비영리단체, 글로벌 커피회사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IWCA (International Women’s Coffee Alliance), Cafe Femenino와 같은 글로벌 여성 커피농부 지원단체의 역할이 중요하게 대두되고 있고, 여성들이 생산하고 가공한 커피가 세계적으로 점차 거래량이 증가되고 있다. CQI에서도 여성 커피농부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으며, SCA(Specialty Coffee Association)에서도 주요 어젠다로 논의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단순히 커피산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것뿐 아니라 글로벌 지속가능발전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SDGs)의 성평등 개발목표에도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여성 커피농부에 대한 지원은 단순히 커피 농부의 빈곤에 대한 접근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실제 소비자가 먹고 마시는 커피의 품질은 커피 생두의 품질과 직접 연관되며, 생두 품질의 많은 부분은 실제로 생산지에서 결정된다. 여성이 70%의 노동을 제공하는 커피 산지에서 여성의 역량이 강화되면 품질에서도 많은 긍정적인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대다수의 여성 농부들은 커피나무의 재배와 관리에 많은 일을 담당하는데, 이는 커피 가공 못지않게 품질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기도 하다. 또한 지금까지 남성 중심으로 운영되어 온 워싱스테이션(washing station)과 드라이밀(Dry mill) 등 주요 생두 가공시설에서 여성들의 역할을 확대하므로 더욱 기술 수준을 높일 수 있다. 커피 생산에 주요한 노동력을 제공하는 여성 농부의 전반적인 역량강화는 커피 가치사슬 전반의 품질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여성의 역량강화는 커피 품질뿐만 아니라 이미 커피 생산에 심각한 문제인 기후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한 사례로 영국의 Marks and Spencer와 Harrogate & Mattew Algie의 로스터 Taylors는 비영리단체 TWIN과 함께 페루의 지속가능한 농업과 성평등을 중심으로 하는 기후변화 대응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이 프로젝트는 두 협동조합 1,250명의 커피농부를 대상으로 유기농 비료의 활용 등 다양한 지속가능한 농업 기술에 대해 여성의 참여를 높여 훈련하는 것으로 구성되었다. 이는 재배에 주요한 역할을 하는 여성 농부의 지식과 기술에의 접근을 높이는 것이 기후변화 대응의 중요한 요소가 되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이 여성 농부에 대한 지원은 생산성 향상과 품질 제고로 이어지며, 이는 궁극적으로 커피 농가의 소득 증가와 부가가치 창출의 경제적 효과로 귀결된다. 단순히 여성에 대한 지원을 넘어 글로벌 커피 가치사슬의 통합적인 발전에 기여하게 되는 것이다.
안젤리끄가 속한 르완다 뷔샤자 커피협동조합은 2018년 아름다운커피와 만나 처음으로 해외 시장에 직접 생두를 수출하게 되었다. 뷔샤자 커피협동조합은 이전에는 르완다 내수 커피회사에 커피 파치먼트만 판매하였고, 그 마저도 생두 가격으로 환산하면 국제시장 가격의 80%만 받는 수준이었다. 2018년 한국 아름다운커피와 첫 해외 거래를 통해 중간 수수료 없이 협동조합은 100%의 가격을 받게 되었고, 이에 프리미엄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60% 선급금을 계약금으로 먼저 받아서 체리를 수확해 가져온 조합원들에게 바로바로 체리 값을 지불할 수도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여성 그룹의 커피를 수출하게 된 것이 가장 큰 성과이다. 안젤리끄가 활동하는 여성 그룹의 이름은 ‘쿵가하라(Kungahara)’, 영어로 번역하면 ‘Be rich’이다. 커피를 통해 부자가 되고 싶은 여성 농부들의 소망이 고스란히 담긴 이름이 분명하다. 쿵가하라 그룹은 아름다운커피에게 그룹의 여성 조합원들이 직접 관리하고 생산한 커피를 판매하고 우먼스 프리미엄(Women’s Premium)을 받게 되었다. 한국에 판매한 쿵가하라 그룹의 커피가 한국 시장에서 ‘여성 농부가 생산한 커피’로 소개될 것이라는 이야기에 안젤리끄는 기대가 컸다. 그리고 쿵가하라 그룹원들은 이 우먼스 프리미엄을 따로 어떻게 사용할지 논의한 끝에 여성 농부의 건강보험비용을 지원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이후로도 우먼스 프리미엄을 받게 되면 여성 그룹원들과 우수농산물관리(GAP, Good Agricultural Practice)에 관한 훈련을 받아 더욱 커피를 잘 관리하고 싶은 꿈도 생겼다.
우리는 누가 생산하는지 모를 커피를 구매하고 마시기도 하지만, 때로 커피는 이렇게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고 꿈이 되기도 한다. 르완다에서 안젤리끄와 여성 농부들이 정성껏 재배한 커피는 한국의 소비자들에게 새롭게 선보이는 꿈이 되어 지금 먼 바다를 건너고 있다. 그녀가 아름다운커피와 한국 고객에 보낸 인사말로 그 꿈을 대신 전하고 싶다.
Thank you so much for making me who I am today and who I’ll become tomorrow.
이 글은 월간 커피앤티(Coffee & Tea) 2019년 10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