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이 넘어 남편을 만났다.
이즈음 나는 연애를 하기보다 결혼이 하고 싶었다. 남편의 생각이 어떤지 몰라도 나는 첫 만남부터
결혼하고 싶은 사람인가가 나의 기준이었다.
일단 여러 소개팅 중에 간만 보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우리는 소개팅 다음날부터 사귀어 보기로
했으므로…
둘 다 사회생활을 하고 있었고 둘의 회사 거리가
멀지 않아서 우리는 더욱 자주 만났다.
만나다 보니 지출이 점점 많아졌다.
식사를 한 사람이 계산하면 다른 사람이 카페에서 계산을 했는데 밥값이 더 비싸다 보니 괜스레 먹지 않아도 되는 조각 케이크라도 하나 더 주문하게
되는 식이었다.
이 사람과 만나지 3개월쯤 되었으려나?
내가 먼저 그에게 제안을 했다.
“자주 만나니 지출이 커지게 되는 것 같다.
우리 한 달에 정한 금액을 한통장에 넣어 사용하자.”였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내 돈이 우리 돈이고, 당신 돈도 우리 돈이다.라는 이론.
즉, 우리는 언젠가 한 가계를 운영하게 될 테니 돈을 좀 아껴 쓰자는 나만의 생각에서 나온 결론이다.
이 뜻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 남자 알겠단다.
그럼 누가 이 돈을 관리하느냐를 또 정해야 하는데…
난 숫자가 싫다. 딱! 싫다.
돈, 당신이 맡아라~
3개월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이 사람 꽤나
꼼꼼하다. 뭘 믿고 맡기나 싶을 수도 있었지만
한 달 우리가 모은 돈은 그리 크지 않았다.
결혼 자금을 모으자고 한 것도 아니니..
어찌어찌하여 우리는 통장을 하나 만들고 데이트
비용을 함께 쓰기 시작했다.
어느 날 내게 우리 데이트 비용의 사용목록을
보여주다가 자신이 대학 때부터 정리해 오던
용돈 기입장 (대학 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하며
학비를 스스로 해결했던 사람이라 가계부라고 할 수도 있겠다. ) 아무튼 기 기록을 보여주는데 입이
떡 벌어진다. 엑셀로 정리된 그의 기록은 중간중간 그래프도 보인다. 난 뭐가 뭔지도 잘 안 보이는데
자신이 이때는 어떤 상황이었고, 저때는 어떤 상황이었는지를 이야기하는데 나로서는 꿈도 못 꿔본
정리였다.
그래서 난 다짐했다.
결혼하면 이 사람에게 경제권을 주리라!
그래서 우리 집은 남편이 가계부를 쓴다.
가끔 친구는 그래도 너도 종종 너의 살림에 신경을 쓰라고 충고한다. 사람 일이라는 게 어떻게 될 줄
알고 온전히 남편에게만 맡기느냐고…
하지만 난 이대로가 좋다. 한 달 생활비가 얼마나
드는지, 우리의 남은 대출금은 얼마인지…
알고 싶지가 않다. 숫자를 보고 있으면
아무것도 못하겠다.
월말이 되어 남편이 가계부를 정리하는 남편을 보면 참 기특하다. 저 머리 아픈 걸 매달하고 있다니..
남편아, 고맙소. 앞으로도 잘 부탁하오~
사진 출처: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