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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앨리스 May 12. 2020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햄버거 사 먹기



 미국에 도착한 첫째 날은 시차에 적응하느라 비몽사몽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이 되었다. 여전히 나랑 동생은 꿈속을 헤매고 있었는데 웬 아기가 꿈에 나와 내 머리카락을 쥐어뜯는 게 아닌가. 그런데 머리카락을 뜯기는 고통은 매우 현실적이었다. 눈을 떠보니 진짜 아기가 눈앞에서 내 머리카락을 자기 입에 집어넣고 있었고 그 옆에 꼬마 한 명이 같이 있었다. 아직도 이것이 꿈인가 싶었지만 곧 아빠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인사해, 삼촌 애기들이야.”


 어제 공항으로 아빠와 같이 마중 나왔던 삼촌의 애기들이었다. 말하는 것을 들어보니 혀가 제대로 안 풀린 것이 영어가 더 편한 것 같았다. 그래도 한국말로 간단한 의사소통은 되는 것 같아서 얼마나 다행이던지. 

 

 알고 보니 아빠는 (삼촌도) 출근을 해야 했고 나랑 내 동생을 낯선 집에 달랑 두고 출근하는 게 불안했던지 우리를 돌봐줄 7살과 1살을 부른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기가 막힌 일이지만 그때는 우리가 애기들을 돌봐주는 것이라고 착각했었던 것 같다. 

 

 아빠는 출근하기 전에 창밖으로 보이는 Carl's Jr. 라는 햄버거 집을 가리키며 점심은 저곳에서 사 먹으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아싸! 햄버거!'라고 외치고 아빠에게 알겠다고 말했고 아빠는 돈을 식탁에 두고 출근하셨다. 

 

 오전 시간은 매우 느리게 흘러갔다. 집에는 내가 가지고 놀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아기들이 가지고 놀만한 것은 더더욱 없었다. 유일하게 티비가 있어서 틀었지만 영어밖에 안 들리는 티비는 정말 지루했다. 레이첼(7살짜리 꼬마)이 자기가 보는 프로그램을 틀어서 보았고 알아듣는 레이첼이 정말 신기하고 부러웠다. 나는 옆에 브라이언(애기)을 안고 우르르 까꿍 같은 것을 하며 놀았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점심시간이 되었다.

 

 레이첼은 배가 고프다고 했고 나는 동생한테 두 명 다 돌보고 있으라고 하는 것은 힘들 것 같아서 레이첼을 데리고 갔다 올 생각으로 동생에게는 애기를 잘 보고 있으라고 했다. 그리고 주머니에 돈을 넣고 레이첼을 데리고 집을 나섰다. (이것은 신의 한 수였다, 정말) 

 

 창문으로는 가까워 보이던 햄버거 집은 처음 걷는 길이라 그런지 좀 멀게 느껴졌다. 평일이라 그런지 거리에는 사람이 없었다. 레이첼 손을 잡고 한 체감상 한 15분 정도 (사실은 5분 거리) 걷다 보니 햄버거 가게에 도착했다. 10월이었지만 LA 햇볕은 뜨거워서 땀이 좀 났다. 햄버거 가게 안은 시원하게 에어컨이 틀어져 있었고 아주 기분이 좋았다.

 

 햄버거 가게에서 주문을 하려고 메뉴를 보는데 그제야 난 깨달았다. 내가 영어를 못한다는 사실과 어떻게 주문을 해야 할지 모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얼마나 생각 없이 여기까지 왔는지 두고두고 후회했다. 동생을 시켰어야 했는데 (걔도 영어를 못하지만 나만 아니면 되지)라는 생각에서부터 그냥 점심을 굶을까, 햄버거 사진을 가리켜 볼까 등등 많은 생각이 그 짧은 순간에 스치고 지나갔다. 다시 집으로 갈까 고민하던 그 순간 번뜩 스치고 간 생각에 난 다시 햄버거를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의기양양해졌다. 나에겐 레이첼이 있었던 것이다. 난 레이첼에게 이야기했다. 


“언니는 영어 못하니까 레이첼이 대신 햄버거 살까? 언니는 저 사진에 햄버거 먹고 싶어, 오빠(동생)도 먹어야 하니까, 저거 2개 시키고 레이첼 먹을 햄버거도 하나 시켜”


 지금 생각해보면 레이첼은 한국말이 서툰데 내 말을 다 알아들었는지 의문이지만 그때의 난 당연히 다 알아들었을 거라 생각했다. 레이첼은 고개를 끄덕이고 주문대 앞에 서서 나 대신 영어로 멋지게 주문을 해줬다. 난 옆에 서있었지만 정말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9년 동안 배워온 영어가 헛수고가 되는 순간이었고 엄마가 나 때문에 영어에 써버린 돈이 낭비가 순간이었다. (엄마 미안..) 


 눈치껏 쳐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종업원이 쏼라쏼라 하면서 나를 쳐다봤다. 나는 뭔가 문제가 생긴 건가 라는 생각에 레이첼을 쳐다봤다. 그러자 레이첼은 돈을 내야 한다고 했다. 아 당연한 일인데 이 상황이 당연하지가 않아서 잊어버리고 있었다.

 

 얼른 주머니에 손을 넣어 돈을 꺼냈다. 그리고 난 또 다른 문제에 다다랐다. 햄버거 가격이 얼만지도 모르겠고 (물론 기계에 숫자가 적혀 있었겠지만 그 순간 내 눈에 숫자가 들어올 리 없었다.) 아빠가 준 돈을 가지고 나오긴 했는데 이 돈을 처음 본 것이라 어떻게 화폐단위가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레이첼에게 지폐 중 하나를 들고 (아마 10달러짜리 였던 것 같다) 물었다.


“이거 내면 돼?”


 난 레이첼은 아직은 돈 계산이 서툰 7살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아니 알지 못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인 것 같다. 아무튼 레이첼도 잘 모르겠는 눈치라 난 어떻게 할까 고심을 하다가 돈을 다 꺼내서 내 손바닥을 펼치고 종업원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종업원은 알겠다는 듯이 필요한 돈을 집어서 계산을 해주었다. 거스름돈도 영수증과 함께 내 손위에 올려주었다. 


 분명 가게 안이 시원했는데 왜 이렇게 땀이 나는지 등이 흠뻑 젖은 느낌이었다. 햄버거는 곧 나왔는데 세트로 나오지 않고 달랑 햄버거만 나왔고, 햄버거는 3개가 아니고 2개가 나왔다. 레이첼이 그렇게 주문한 것인지 햄버거 개수가 잘못 나온 건지 알 수 없었고 난 더 이상 따질 여력이 없었다. (아니 따질 수 없었다..) 


 레이첼과 햄버거와 함께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오면서 아 난 미국에 와버렸구나 라는 현실감각에 약간 무서워졌다. 이곳은 내가 익숙한 것이 없는 곳이었다. 그걸 지금 깨달은 나 자신도 한심하고 암튼 그랬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빠는 이런 일이 생길 줄 알고 우리를 돌봐 줄 7살 레이첼을 집에 부른 건가 싶다. 그리고 레이첼은 그 임무를 아주 잘 수행해주었고 말이다.


 집에 와서 먹은 햄버거는 생각보다 많이 크고 맛있었다. 햄버거 2개를 셋이서 다 먹지 못했다. 아빠가 사다 놓은 콜라가 있어서 어찌나 다행이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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