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빛소리 Jan 03. 2022

03. 아이가 태어난 날

후불제의 후유증

출산을 앞두면 자연분만과 제왕절개 사이에서 고민이 깊어질 수 있다. 이를 우스갯소리로 선불제와 후불제 비교라고 칭하기도 한다. 나는 후불제를 택했다.




출처-pixabay


늦은 나이라는 것을 감안했을 때, 자연분만을 시도한다는 건, '오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자칫 잘못했다간 선불제의 고통과 후불제의 후유증을 모두 떠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자연분만의 좋은 점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이 없었다. 나이 탓만은 아니었다. 언제 시작될지,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인생 최대 고통의 시간을 오롯이 견디는 상상만으로 이미 현기증이 날 정도였기 때문에, 난 망설임 없이  후불제를 택했다.


생각보다 날짜와 시간이 일찍 잡히긴 했지만, 그래도 '때'가 정해진다는 것에서 나도 모르게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건 아마도 나중에 어떤 고통을 느낄지 전혀 알지 못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수술 전날 밤에는 병원에서 알려준 대로  아무것도 먹지 않았지만 배고픔을 느끼지 못했다. 소풍 가는 것도 아닌데, 목적지가 멀지 않은 근처 야산이라고 해도 보물 찾기에 대한 기대로 이미 온통 마음을 빼앗겨 설레는 아이처럼, 혹여나 비가 와서 소풍을 못 갈 수도 있다는 걱정 한 가득 안은 아이처럼, 나는 밤새 뒤척였다. 내일이면 뱃속 작은 꼬마가 세상으로 나온다.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에, 한 간호사 선생님께서 나에게 어떤 마취를 원하냐고 물었다. 나는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을 지켜봐 주고 싶었고, 아이를 잠시나마 안아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무섭지만 반신 마취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피검사 수치 결과에서 빈혈이 심한 편이라, 만약에 일어날 위험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나는 선택의 여지없이 전신마취로 분류되었다. 호기롭게 반신 마취라고 말했던 것이 무색해지긴 했지만, 쫄보 엄마가 그런 마음을 먹었다는 걸 아이가 알아주길 바랬다.


막상 수술실로 들어가니 곳곳에 배치된 차가운 스테인리스 기구들과 하얀 불빛이 눈에 들어왔고, 영하는 되는 듯한 찬 공기가 나를 엄습했다. 수술대로 옮겨지고 나서는 어찌나 몸을 덜덜 떨었던지, 아래턱마저 덜덜 떨려서 아랫니가 윗니를 탁탁 치는 소리가 날 정도였다. 내가 이렇게 떨고 있으면 아이도 무서워할 것 같아서, 속으로 말했다. '엄마랑 너랑 다 살기 위한 선택이야. 곧 만나자. 우리 아기 잘할 수 있지?' 그리고 나는 잠이 들었다.


그 이후 언제 어디였는지는 모르지만,  끊어진 필름처럼, 파편의 기억들이 생각난다. 아이가 괜찮냐는 질문을 했고, 아이가 건강하다는 말을 들었다. 일어나 보니 입원실에 와 있었다. 배에 두른 큰 붕대가 수술의 흔적을 말해주었다.


일단 괜찮았다. '어, 생각보다 안 아프잖아?' 해볼 만한 후불제라 생각하며, 지인들에게 메시지를 돌리는 여유마저 부렸다. 사실 통증 감별사인 내가 고통을 별로 느끼지 못했던  건, 몸에 남아돌고 있던 전신 마취제와 배에 꽂혀 있는 페인부스터 덕분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저녁이 되니 슬슬 고통이 한가득 밀려왔다. 이게 그건가?

후불제의 후유증은 그 이후로도 일주일은 더 갔다. 특히 앉거나 일어설 때가 가장 힘들었는데, 배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찾아왔다. 봉합 수술을 다시  해야 하는 거 아닐지 혼자 걱정도 했다.


그렇지만, 이 모든 일들이 정말 다 괜찮았다. 배에 수술 자국 따라 삐져나온 검은 실을 본 때도, 혼자서 처음 소독했던 때도, 실밥 제거 후에도 살 밖으로 툭 튀어나온 빨간색 큰 흉터도 정말 다 괜찮았다. 후불제의 후유증 따위는 문제 되지 않았다.


아이가 내게로 왔으니까.


- 3편 끝

매거진의 이전글 02. 아이를 가진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