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생각 풀어보기
영원회귀를 깨닫는 존재는 이제 삶의 방식이 바뀐다. 그는 먼 미래의 불확실한 목표를 향해 지금 이 순간을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지금 이 순간을 가장 가치 있고 의미 있게 살아야 한다.
왜냐면 지금 이 순간은 내 평생의 삶보다 훨씬 긴, 무한히 반복될 영원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삶의 비밀을 깨닫게 된 존재는 지금까지의 삶을 초월한 초인의 모습에 한 걸음 다가간다.
후회하지 않을 삶을 살자.
삶은 고양되어야 한다.
매 순간 행복한 선택을 하자. 지금 이 순간이 인생 전체를 통튼 것보다 중요하다.
이 글을 읽고 나서 생각했다.
아, 그럼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야 겠다
근데 내가 원하는 삶이란 뭔가?
잠올때 자고 먹고싶을때 먹고 화가나면 화를 내고, 순간순간의 즉흥성을 따르는것? 이건 마치 여행과 같다
순간적인 감정의 위안이나 몸의 안락을 아예 포기해버리면, 사람은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불안과 고통은 생존을 위협하는 감정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근데 그런 인간의 즉흥성만 따라서는 절대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나의 삶에 도달할 수 없다. 타이밍이란게.있고 그 타이밍 안에서 적절한 일을 마땅히 해야만 궁극적으로 얻어지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행복하려면, 두가지 조건을 갖춰야 하는것 같다.
내가 바라는 어떤 특징들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
내 감정이 편안하고 즐겁고 충만한 것
후자는 전자 안에 포함되는것 같다. 감정 상태또한 어떤 특징이라고 규정지을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행복이란
- 내가 바라는 어떤 특징들을 가진 사람이 되는것
- 그 특징들이 내가 바라는 것이라는 확신을 얻는 것
- 내가 지금 하고있는 일이, 그 목표로 데려가주는 과정임을 아는 것
그러면, 바라는것이 다 충족되면 그땐 어떤가?
이미 다 이뤘으니 과거의 기억들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까?
아닌것 같다. 삶은 끊임없이 '내가 바라는 어떤 특징'들을 보게 만들고, 그것을 욕망하게 하는것 같다.
인간은 무언가를 끊임없이 욕망하는 존재고,
욕망하는 과정 안에서 행복도 느끼고 불행도 느낀다.
욕망이 없으면 행복도 없다. 오히려 무료함 지루함 불안 허무함 등등 불행이라고 설명되는 감정이 가까울 것 같다.
욕망이란 단지 세속적인것 뿐만을 아니라, 무언가에 대해서 원하는 마음 그 자체인듯 하다
불교에서 중이나 스님이 세상을 등지고 소유욕에서 벗어나는 것은, 세속적 욕망에서 벗어난 것이지
불교라는 정신적 가치 안에서 또 무엇인가를 욕망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세속적 욕망을 통칭하는 욕망과 여기서 말하는 욕망은 그 범위가 다르다)
쨌든 중요한건, 삶에서 목표를 이루었을때 그 순간 행복의 질이 과거의 것들보다 급격하게 높게 느낄수는 있으나, 시간을 중심으로 설명하자면 삶을 통틀어 목표로 가는 과정 안에서 행복을 느끼는 시간이 더 많을것이란 점이다.
즉 과정도 소중히, 결과도 소중히.
그리고 그 결과는 또다른 목표를 위한 것인데,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살고 또 사냐면,
결국 행복하기 위해 산다.
순간 순간의 행복이 중요하다.
행복과 안온은 다른 말이다.
안온이 행복의 충분조건은 될 수 있으나, 행복 그 자체는 아니다.
즉흥적 안온을 주는 것들과
장기적 안온을 주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
내가 니체의 영원회귀를 접하고서도
아.. 근데 치킨이 먹고 싶다. 내일 치킨 먹을까?
라고 생각을 했다.
치킨은 내가 알기로 몸에 안좋고, 안좋은 성분들이 몸에 축적되서 건강을 나쁘게하고 노화의 원인이 된다.
치킨을 먹는 그순간, 앞으로의 내 건강에 부정적인 결과가 축적될걸 알면 치킨을 안먹는게 장기적 안온인걸 안다. 게다가 치킨을 먹어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게 영원히 반복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즉흥적 안온인, 치킨을 결국 시키는 결과는 왜 나오는걸까? 비단 치킨뿐만이 아니라, 성공을 가로막는 아주 사소하고도 다양한 즉흥성에 따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 사소한것들이 시간의 흐름을 타서, 어느 시점이 되면 실패의 기운을 자각하고, 이 실패들이 모여 시도에 대한 두려움을 만든다. 목표를 위해 애초에 시작을 하지 않거나, 두려움으로 인해 전력질주하지 못하거나 해서 점점 성공의 가능성이 줄어든다. 이걸보고 악순환. 실패의 노세트. 비셔스 사이클이라고 하는듯 하다.
다시 돌아가서,
니체의 영원회귀는 지금 이 순간의 가치를 전체 삶을 멀리 보는것보다 더 높게 평가한다. 타성에 젖거나 내가 원하지 않는 삶의 방향을 거부하고,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에 가까워지도록 만드는 이 시간 이 순간에 대한 책임감을 강력히 부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장기적 행복과 좀더 높은 질적인 성공을 위한 선택이 아닌, 즉흥적 안온을 위한 행동을 선택하는 이유 ?
영원회귀가 실용적으로 주는 의미, 즉 이 순간에 대한 책임감에 대한 '인지 정도'가 순간의 즉흥성보다 낮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이거다.
순간적으로 치킨을 먹고싶다는 당장의 만족감 < 현재 느껴지는 식욕, 치킨 맛에 대한 미각적 욕망, 혹은 치킨먹는 시간을 즐기면서 시험공부에서 잠시나마 벗어날수 있다는 기대감 등, A > 이
치킨을 안먹음으로써 얻을수있는 당장의 만족감 < 치킨을 안먹으면 건강이 좋아질거라는 기대감, 내가 원하는만큼 예뻐지는데 정확하지는 않지만 영점 몇퍼센트의 영향력을 발휘할것이라는 기대감, 이짓을 계속해서 원하는 결과를 얻고 보상으로 맘편히 치킨을 먹는날이 올것이라는 기대감, 더 큰것을 위해 순간의 즉흥성을 절제했다는 뿌듯함 등 B > 보다 더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치킨을 먹어서 얻게되는 결과는 즉각적으로 인지되는 반면(욕망의 즉시적 충족)
치킨을 안먹어서 돌아오는 결과는, 한번의 추론과정을 더 거쳐야한다.(욕망의 암시적 충족) 미래에 내가 원하는것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추론과정. 원하는 것을 가져다준다는 확신이 없으면 B는 A보다 느릴수밖에 없다.
즉 내가 지금 선택할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미래를 더 많이 확신할수록 in control하기 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