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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jo Jun 23. 2020

39살의 연애

그리고, 해외 취업자의 연애

어차피 재택근무이기도 하지만, 이제 좀 살만하니 아픈 곳이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어서 치료 겸 한국에 왔다. 아니, 사실은 예전부터 몸은 고장 나 있었는데 내가 무시했을 뿐인가? 건강도 연애도 서사시작은 늘 거기에 있었을지도.


귀국한 후 영국에서 새로 산 갤럭시폰을 세팅하는 순간 다른 나라로 이사 가고 아이폰으로 바꾸면서 업데이트가 멈춘 5년 전 연락처가 주르륵  핸드폰으로 들어오면서 과거에 묻어둔 관계까지 강제 업데이트가 되어버리면서 카카오톡에 들어왔다. 구남친들의 연락처까지.


공부 때문에 폐를 끼친 사람은 한둘이 아니지만 특히 괜히 바람 든 여자 친구를 만나 마음고생을 하다 헤어진 그들은 나랑 헤어져서 다행히 잘 살고 있었다. 묘하게 그를 닮았지만 예쁜 딸을 낳은 오빠도 있고, 나 때문에 때아닌 영어공부를 하던 아이자기 이름의 사무실도 냈으니 피차 갈길을 잘 찾았네.




원래 정신승리가 어려워 

내 나이에 깜짝 깜짝 놀란다. 70이 넘은 우리 아빠도 아직 자기 나이에 놀라고 계시니 앞으로는 쭉 이런 양상인보다. 이제는 애교로 뭉뚱그리려 해도 30대 초중반이니 중후반이니 하며 안타깝게 묻어가기 힘든, 깔끔한 38세, 39살, 30대 후반이 되었다. 싱글이 기본, 커플은 옵션인 게 인간사인데도 불구하고  우리 아빠조차도 나를 올해 "결혼시키는 것"이 마지막 목표라니, 나 그냥 비혼 하면 안 돼 아빠? 나 지금도 행복한데.


이제는 친구들을 만나면 정자와 난자를 얼려야 하냐, 아니다 이미 늦었단다를 하는 나이가 되었는데,  아는 언니들도 너도 막차탔으니 이번에 한국 들어가는 김에 더 늦기 전에 꼭 얼리란다. 원래 옆에 있는 여자들의 독설이 제일 무서운 . 나는 아직 팔팔하고 어릴 때 없던 사회화된 성격과 여유까지 생겼는데, 인체의 시계 따위가 나를 들었다놨다 하고 있다. 쳇. (그렇게 말하지만 그래도 앞으로 일년 사이에 임신 계획이 없으면 난자는 얼려야 되겠다고 생각한다)

그럼 당당해야지. 당당하면 좋지.

맞는 말은 들으면 왠지 기분이 나빠

세상의 잣대 아래 근본 없는 열등감을 극복하지 못한 30대 초반까지는 평범한 인생의 과업을 이루는 것에 대한 책임감이 있었다. 집안 어른들이나 기혼자 친구들의 "친한 관계"에 기반한 언어폭력도 한몫했다. 내가 혼자 어디에 여행 가고 싶다고 했더니, 어머 혼자? 하고 안타까운 눈빛을 쏟던 고등학교 동창의 시선은 상처였다. 결혼한대서 축하해줬더니 2년 전에 헤어진 남자 친구의 안부를 묻고는 아유 어쩌냐 또 기다리면 좋은 남자가 나타날 거라는 또 다른 친구의 뒤늦은 위로는 위로도 아니었다. 그냥 축하나 받아 이년아. 우리 극성맞은 외삼촌과 고모부의 훈화 말씀은 들으면 화만 날 테니 나만 알아야겠다.


이 모든 부담에 귀와 눈을 막30대에 미혼으로 한국을 떠나는 것이 고민스러웠다. 한국에서도 소개팅이나 새로운 모임이 없으면 확률 제로였던 연애가 갑자기 런던에 간다고 될 리도 없고, 그때 갓 만난 남자 친구와 장거리 연애를 이어가는 것도 가당찮았다. 남자 친구도 석사 유학을 오네마네 했지만 삼십 대의 공부가 힘든 건 걔도 마찬가지였다. 걔도 팔자에 없던 영어공부만 좀 하다가 우리는 헤어졌다.


좁은 바닥에서의 연애의 시작과 끝이 어려운 것은 이미 학부시절에 경험했다. 특히 한국인끼리는. 천리안 시절부터 유학생 일기의 조상님 격인 동팡님이 말했듯 해외에 와서 1년 내에 연애사에 가시적 성과가 없으면 외국에서는 그대로 쭉 갈 가능성이 높다는 말도 돌이켜보니 틀린 것 같지 않았다. 

http://hackersbook.co.kr/modules/contents/lang.korean/pages/ebook/data/e_book_page04/list43.html


지피지기 백전백승 아닌가

더구나 나는 한국사람을 원한다. 나는 자녀를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지 않는 쓸모 있는 한국인으로 키우고 싶고, 부모님과 사위 사이의 통역과 문화 교류식 단답형 대화로 결혼식과 가족 만남을 채우고 싶지도 않다. 난 무남독녀라 통역해줄 쓸만한 형제자매도 없다.


하지만 또 다른 적이 있다. 체력과 귀찮음. 대학 다닐 때늦은 밤 클럽에서 오는 길에 맥도널드를 먹고 아침 아홉 시 수업에 들어가기도 했는데, 로스쿨 유학에서는 장거리 연애가 파투난 이후 연애할 시간도 체력도 없었다.  좁지만 큰 도시 런던에서 연애의 고민은 나만 하는 게 아닌 것이, 지난 5년 동안  연애를 걱정해주는 분들이 참 많았고, 또 그래서,

런던의 무슨 교회의 무슨 모임은 다들 직업이 좋다더라,

어떤 소그룹에 들어가도록 추천해줄 수 있다,

어느 모임은 직장인 네트워킹인 척하는 전화번호 교환하는 데라더라,

어느 모임은 가면 여자뿐이더라,

싱가포르나 홍콩에 가려면 여자는 한국 남자 만날 생각은 접어야 하고 남자는 결혼해서 가는 게 낫다더라 등등, 

귀찮아하니 아예 떠먹여주는 이야기도 많았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해외에서 있다가 결혼한 여자들은, 남자의 커리어에 우선순위를 둘 수 있는 내조형이거나 (남편의 직장 로케이션에 따라가 사는 것에 큰 지장이 없는 등), 아니면 외국인을 만났거나, 이주하기 전부터 애인이 있었거나 그게 아니면 비혼이든 아니든 솔로더라. 돈만 벌고 살기에는 우리는 훨씬 복잡한 생명체이니 원하는 것을 고민해볼 가치가 있다.


어른의 연애

난 그래도 자연스러운 만남에 대한 로망이 있어서, 좁은 커뮤니티에서의 연애는 조심스러웠다. 법원 앞에서 잘 안된 남자와 마주치는 일은 이제 없었으면 좋겠다. 엄마를 통해 들어오는 한국의 남자들도 쉽지 않다. 무슨 사우디 파견 노동자도 아니고 증명사진이랑 프로필 보고 만나는 건 또 뭐야.


엄마 아빠의 입장이 좀 곤란해지겠으나, 난 혼자 살아도 싫지 않았. 혼자 살아도 연애는 한다. 굳이 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 있고 생각이 많은 어른의 연애는 조심스럽고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박완서의 글을 좋아한다. 하지만 이런 설렘의 감정이 거의 40대의 연애에 생길 수 있나, 하는 고민이 있었다.


첫사랑이란 말이 스칠 때마다 지루한 시간은 맥박 치며 빛났다.
그 남자를 다시 만나기까지는 일주일이나 남아 있었지만
오래간만에 맛보는 기다림의 시간은 황홀했다.
무엇을 입고 나갈까.
첫사랑이 긴 치마를 허리띠로 동여매고 시장바구니를 들고 나타난다면 그 남자가 얼마나 실망할까.
나 또한 그 남자가 첫사랑이거늘.
그건 첫사랑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나는 이것저것 좋은 나들이옷을 꺼내 입고 거울 앞에서 나를 비춰보았다.
어떤 옷은 점잖아 보이고, 어떤 옷은 촌스러워 보이고,
간혹 요염해 보이는 옷도 있었다.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남자가 나에게 해준 최초의 찬사는 구슬 같다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한번 구슬 같은 처녀이고 싶었다.

-박완서 <그 남자네 집> 중에서


그리하 서른여섯 살 봄 생일을 앞두고 안하던 짓을 해보기로 한다. 아는 사람 중에 제일 예쁜 언니의 뷰티 어드바이스를 듣고, 체면 안 구기면서 내 울타리 밖의 사람들을 만날 뭔가를 찾았고, 봄과 여름 사이 프림로즈힐 앞 펍에서 나와 똑같이 소심한 김부장을 만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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