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김밥

[한식조리사] 제11장 오이소박이

by stamping ink

시장에 나가면 즐비하게 맞이하는 제철 여름 반찬 오이를 실습재료로 만났다.

실습생들은 익숙하게 수업이 시작하기 전에 여름 오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려서 간식 하나 제대로 없었을 땐 개울가에 담가 둔 오이만큼 맛있는 간식거리가 없었지."

"저는 여름철이 되면 트러블이 잔뜩 올라오는데 그럴 땐 엄마가 얇게 썰어 둔 차가운 오이를 팩으로 붙이면 잠잠해지더라고요."

"여름 오이소박이는 밥도둑이기도 하지요."

오이에 대한 찬사가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저는 오이가 쓴 맛이 나서 손이 안 가요."

모두 오이를 즐겨한다는 이야기 사이에 오이 반대파가 나타났다.

"오이가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싫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긴 한데 왜 싫을까요?"

알레르기가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던 터라 오이가 싫은 실습생의 이야기에 모여있는 이들이 귀를 열었다.


나는 한부모 가정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시절 소풍을 가게 되면 엄마손으로 만든 도시락 대신 유명 브랜드의 햄버거가 단골 메뉴였다.

각자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선망인지 김밥을 싸온 친구와 햄버거를 바꿔먹었던 날,

간단한 재료로 볼품없는 내용물이지만 그 김밥이 그리 맛있었다.

그 후 아빠를 보면 김밥을 만들어 달라 졸라대었고 식탁 위엔 김밥 대신 지폐만 올려두고 직장을 나갔다.

생일이 돌아오자 선물로 받고 싶은 것을 아빠가 만들어준 김밥이라 말했다.

간단히 외식으로 지나갈 생일을 피곤한 아빠는 생각 않고 손 많이 가는 김밥 요청에 크게 화를 내셨다.

그렇게 열 살 생일을 보냈다.

그 후로 김밥에 대한 이야기는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남들과 똑같이 성장하며 어느덧 인생의 첫 갈림길인 고등학교 3학년 입시날이 다가왔다.

새벽부터 분주한 주방 소음에 일찍 잠에서 깨어났다.

아빠는 김밥을 말고 계셨다.

익숙하지 않은 손놀림으로 재료를 손질하고 오이를 집어 들어 고민하더니 뜨거운 물에 시금치와 함께 살짝 데쳐내셨다.

식탁 위에 햄버거 대신 도시락이 처음으로 올라온 날이었다.

시험장에서 꺼낸 익은 오이 김밥의 쓴맛이 입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데쳐버린 오이가 쓴 것인지.

그동안 전하지 못한 아빠의 쓰린 마음이 전해져 쓴 것인지...

입시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가 돌아가셨고 이제는 쓴 오이 김밥이 그립다.


그녀의 이야기가 끝나자 모두 숙연해졌다.

우리의 무거워진 공기를 먼저 알아차린 그녀는 오늘 배우는 오이소박이를 맛있게 담가 아버지 기일에 올려보겠다고 했다.

오이에 칼집을 내어 소금으로 절여 소를 넣어 완성했다.

몇몇 손재주 좋은 이들이 실습 책에 없는 자신만의 비법을 그녀에게 전했다.


그녀의 오이맛이 달큼해지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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