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tamping ink Mar 13. 2022

12. 주차공간

친구 무리에서 제일 잘 나가는 친구가 있다.

젊은 나이에 사회적으로 성공도 했고 동기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시간을 모두 투자하여 오르고 싶은 자리까지 올라간 친구이다.

00 엄마라고 불리는 친구들 사이에 그녀는 언제나 돋보였다.

결혼을 하고 살림을 쪼개며 사회생활을 잃어가던 친구들에게는 그녀는 동경이자 들키면 안 될 것 같은 질투의 대상이었다.

행복이자 걸림돌이기도 한 가족이란 단어에 힘겨워할 때 돌부리마저 없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그녀를 우리는 따라갈 수도 없었다.


몇 달 만에 만났지만 우리 사이에서 그녀는 여전히 화려했고 그녀의 모습과 우리의 소소한 일상이 수평을 잡아가며 대화가 오갔다.

모임은 지속되지만 유일한 공통주제는 어린 시절 철없던 소녀시절의 모습뿐이었다.

그녀의 명품백 안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김 팀장. 이런 일도 하나 처리하지 못하고 전화를 하면 어떡해. 응응. 바이어에게 연락은 해봤고?"

미안하다는 손 제스처를 하고 그녀의 카리스마가 통화가 마쳐지고 곧이어 전화가 연속으로 울렸다.

모두 그녀의 성공한 삶을 동경 어린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작은 울타리 안에 있는 우리에겐 하늘을 유영하듯 날아다니는 그녀는 다른 존재처럼 보였다.


몇 번의 업무상 전화를 마무리하던 그녀는 낯선 번호라며 마지막 통화를 하고 전화기를 꺼놓을 거라 으름장을 놓았다.

"아. 네. 차 바로 빼드릴게요."

마지막 통화는 그녀의 차를 빼 달라고 부탁하는 전화였다.

시선에 그녀가 우리에게 이야기를 했다.


"하루라도 정해진 주차구역에서 쉬어봤으면 좋겠어. 난 쉬지 않고 달리다 보니 엔진이 고장 난 것 같아. 사실 이달까지만 회사를 다니고 재충전을 해볼까 해. 견뎌보려 했지만 한계에 닿은 것 같아. 인수인계가 길어지니 쉬는 날도 없지만 곧 엔진을 꺼도 된다는 생각에 기분은 좋아. 같이 있어 줄 친구들이 있어서 나 행복한 거지? 너희는 내 주차공간이야. 맘 편히 쉬어도 되는 허락된 공간."

그녀처럼 멋진 삶을 살아보지 못한 사람들의 부러움이 한순간 부끄러움이 되었다.

"나이가 들어서 노안이 오니 불편한 게 많더라. 하물며 가까이 있는 친구 맘을 못 읽었다. 겉에 보이는 것만 보느라 네가 힘든지 몰랐네. 같이 천천히 우리랑 걷자."


빠르게 달려야 했던 친구를 위해 모두 그녀가 쉴 주차공간을 만들었다.

그녀의 이야기가 그날의 모든 주제였고 모두 그녀의 주차칸에 그녀가 마음 편히 시동을 끌 수 있도록 응원했다.

엔진이 따스한 온도로 식어갔다.



매거진의 이전글 끼어들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