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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mping ink Mar 27. 2022

양심과의 한판 승부

14. 신호위반

새해 목표는 이른 아침에 일어나 독서도 하고 할 일을 정리하며 느긋하게 출근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알람 시간을 저장된 시간보다 두 시간이나 당겼다.

마음만 먹지 말고 실천하기를 보신각 종소리에 맞추어 다짐을 하였다.

처음은 열정으로 밀고 나갔다. 나태했던 자신을 반성하며 달렸다.

급히 먹는 밥이 체하듯이 일주일이 되니 알람을 끄고 30분 후 알람으로 설정을 바꾸었다.

그래도 예전보다 한 시간 삼십 분이나 일찍 일어나는 것이라 생각하니 양심의 따끔거림은 금세 사라졌다.


이른 아침의 일상이 익숙해졌다고 생각하고 잠자리에 들었던 날,

평소처럼 알람은 울렸겠지만 듣지 못했다.

출근 후 도착해야 할 시간이 다가올 때 눈이 떠졌다.

'망했다. 어제 늦게까지 친구를 만나 마신 술이 문제였어.'

책망하긴 늦었다. 부랴부랴 씻고 주차장으로 달려갔다.

이른 아침 출근길의 차 들이 빠져나가고 주차장은 한산했다.


시동을 급히 걸었다.

출근길 사이사이 학생들을 태워주기 위해 멈춰서는 학부모들의 차들이 많았다.

'비켜주세요. 비켜 비켜.'

그들이 듣지는 못하지만 홀로 중얼거리며 핸들을 돌렸다.

그나마 출근길 막히는 시간대를 넘어섰는지 줄 서 있는 차들이 많지는 않았다.


좌회전 신호...

여기를 한 번에 통과해서 속도를 내도 다음 신호에는 넘어갈 수 없다.

주 5회 같은 길을 가니 신호체계까지 다 알고 있다.

신호를 아는 익숙한 차들은 차량통행이 많지 않기도 하니 잦은 불법 신호위반 구간이기도 했다.

역시나 옆 차선의 차가 나를 질러 좌회전을 하고 차선을 넘었다.

곧이어 옆 차선으로 달려오던 차도 좌회전을 했다.

바쁜 건 난데 저들이 더 급히 달려갔다.


조심히 좌회전을 할까? 우물쭈물 앞으로 천천히 나갔다.

뒤에 차가 경적을 울렸다. 나보다 더 급한가 보다. 떠밀려 건너가야 할 판이었다.

신호위반을 해야 할지 조금 더 신호를 기다려야 할지 고민에 빠져 있는 나를 알아차렸는지 뒤차가 옆 차선으로 차선을 바꿔 창문을 내리고 비웃음을 보냈다.

유유히 신호위반으로 넘어가는 뒤차를 보며 이렇게까지 된 거 그냥 끝까지 신호를 기다렸다가 안전하게 가기라 마음을 먹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좌회전 신호가 켜졌다.

분명 지금 신호를 받아가면 다음 신호에는 또 멈추겠지만 이미 늦은 거 창문을 내리고 봄 내음이나 흠뻑 맞고 가리라...

봄바람은 차가웠지만 햇살은 따스했다. 이미 늦은 거 마음껏 늦게 가보자고 생각하니 운전도 즐거웠다.


역시 좌회전 다음 신호에 차가 적색신호로 바뀌고 멈추었다.

봄바람 따라 햇살을 따라가니 불고 푸른 불빛이 번쩍였다.


아.. 정의로운 경찰관님이 내 앞차와 내 옆으로 지나간 무수히 많은 차들에게 편지를 써주고 게시는구나.

행운의 편지처럼 기분이 좋지는 않겠지...

벌금이라는 따끔한 맛을 보게 된 차들을 보며 당연함이 인정받는 것 같았다.


물론 출근 후 나 역시 상사에게 따끔하게 혼났지만 봄바람과 양심은 남은 아침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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