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참여하고 싶은 북 토크가 있어서 참가 신청서를 작성했다. 코로나19로 최소 인원만 오프라인에서 모여 저자와 직접 만나기로 하고, 나머지 신청자들은 온라인에서 실시간으로 참여하는 형식으로 진행하기로 되어 있었다. 온라인 참가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지만, 저자와 직접 만나 질의응답을 하는 절호의 기회는 매번 오는 것이 아니라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신청했는데 운 좋게 당첨되었다.
곧이어 자세한 일정과 몇 가지 공지 사항을 전달하는 단톡방에 초대되었다. 그러나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서로 신뢰도를 높이고 친밀감을 형성하자는 의도에서 프로필 사진을 자신의 얼굴이 나와있는 사진으로 바꿔 올려야 하는 것이었다.
“프로필 사진을 본인 얼굴이 나온 사진으로 바꿔주세요. 소통의 기반은 신뢰입니다.”
얼굴이 나와야 한다니. 단톡방 규칙이니 따를 수밖에. 커피 사진만 덩그러니 보이는 내 프로필 사진을 셀카로 올리려니 갑자기 멋쩍어지고 수줍었다. 나는 다른 분들이 찍은 프로필 사진을 염탐하듯 하나하나 클릭해보았다. 밝은 미소로 자신 있게 찍힌 분들의 셀카 사진을 보며 나는 이렇게 찍어본 적이 언제였나 싶었다.
어떻게든 내 사진을 찾아야만 했다. 스마트폰 앨범을 한참 동안 스크롤하며 내려보아도 아이들 사진과 아침에 미라클 모닝 인증하며 찍은 칫솔 사진, 산책하면서 찍은 풍경 사진만 보일 뿐, 내 사진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나 많은 사진 중에 내 사진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오랜만에 셀카를 한번 찍어보기로 했다. 두 팔을 쭉 뻗고 카메라를 내 쪽으로 향하게 한 다음 어색하기 짝이 없는 미소를 지어보았지만, 사진 속 내 얼굴은 왜 이렇게 낯설어 보이는 건지. 스마트폰 기술이 발전할수록 카메라 해상도는 점점 높아져서 그런지 얼굴에 잡티와 모공은 적나라하게 보였다. 희끗희끗 올라온 새치 그리고 탄력 잃은 눈가와 턱선은 더 이상 노화를 피해 갈 수 없음을 단호히 알려주고 있었다. 보정 앱을 사용하지 않고 셀카를 찍는다는 건 이제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 되어버린 듯하다.
실망감을 가득 안은 채 나는 서재 방으로 들어갔다. 컴퓨터 전원 버튼을 누르고 하드디스크에 저장되어 있을 앨범을 찾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보기로 했다. 폴더 여러 개를 빠른 속도로 클릭하며 예전 사진들을 기웃기웃했다. 그러다 몇 년 전 가족여행을 떠났을 때 찍은 사진들을 보며 클릭 속도를 늦추었다. 바닷가에서 아이들 노는 모습, 그 옆에 서있는 남편 모습, 맛있어 보이는 음식 사진, 황홀한 석양 등이 보였다. 그러다 거울에 비춘 내 모습을 찍은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나 혼자인걸 보니 아마 숙소에 남편과 아이들을 두고 근처 마트에서 필요한 물품을 사 온 뒤였던 것 같다. 다른 손에는 투명한 봉지 하나가 들려있었느니 말이다.
이렇게나 많은 사진을 폴더에 저장하고도 다시 꺼내 본 기억이 없어서 순간 씁쓸해졌다. 세월에 묻혀 존재감조차 발휘하지 못한 컴퓨터 속 사진을 보며 내가 뭐 때문에 이렇게나 많은 사진을 찍었을까 회의가 느껴졌다. 이 많은 사진들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몰라 머릿속이 복잡해지면서 사진 무더기 속에서 길을 잃고야 말았다.
간소하고 소박하게 살고 싶다고 마음속으로 외치면서도 주위를 둘러보면 마구잡이식으로 흐트러진 물건들이 정말 많이 보인다. 비단 물건들뿐만 아니라 내 기억에 미처 정리되지 않은 채로 그냥 묻힌 것들도 많을 텐데. 무의식 깊숙한 곳에 묻혀 언젠가 기억으로 다시 태어나 마음을 요동치게 하는 것들도 많은데, 하물며 눈에 보이는 것들은 어떠한지. 추억을 남기기 위하여 사진을 찍고 기록하고 저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만 남기고 미련 없이 비우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록 연식이 조금 지난 사진이지만 거울에 비친 여유로운 내 모습을 프로필에 올렸다. 그리고 정말 소중히 남기고 싶은 몇몇 사진만 제외하고는 방치된 사진들을 하나씩 삭제해 나갔다. 스마트폰에도 컴퓨터에도 여유로운 공간을 만들어주어야 할 것 같아서. 먼 훗날 내 욕심으로 가득 찬 공간이 다른 이의 소중한 시간으로 채워지는 일은 없어야 할 테니까.
나에게만 중요했던 것은, 나의 소멸과 동시에 남은 가족들에게 처치 곤란한 짐만 될 것이다. 될 수 있으면 단순 소박하게 사느라 애썼지만 내가 남길 내 인생의 남루한 여행 가방을 생각하면 내 자식들의 입장이 되어 골머리가 아파진다.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p.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