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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우킴 Feb 22. 2021

핸드드립 커피 한잔 어떠세요?

나는 커피를 좋아한다. 커피와 함께 한 세월이 내 인생의 절반을 차지하니 이제는 인생의 동반자처럼 느껴진다. 그만큼 커피 없는 삶을 상상하기 힘들 것 같다.


카페인에 의지하며 하루를 시작한 지도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요즘은 그 어느 때보다 아침이 기다려진다. 핸드드립 커피를 만나고 나서부터다.


지난해 나의 생일날, 지인으로부터 칼리타 드립 커피세트를 선물 받았다. 한 손에 쏙 잡히는 우드 핸드밀 그라인더,  드리퍼와 드립 서버를 보고 있노라면 너무 귀엽고 앙증맞아서 어린 시절에 미니 주방용품으로 소꿉장난할 때가 생각난다.


원두 갈기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전기 포트에 물을 끓인다. 물이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핸드밀에 원두를 넣고, 오른팔로 있는 힘껏 원두를 갈아준다. 요즘은 호기심 많은 둘째가 옆에서 지켜보면서 종종 도와주는 덕분에 가끔 아이의 손맛이 깃든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원두를 갈면서 흥미로웠던 점은 브랜드마다 손잡이를 돌릴 때 느낌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었다. 어떤 원두는 부드럽게 갈리고 또 어떤 원두는 거칠어서 조금 더 힘을 주어야 한다. 얼핏 보면 동글동글한 모습으로 서로 비슷해 보이지만 로스팅할 때 고유의 개성을 가지고 다시 세상에 나왔나 보다. 원두를 갈면서 한 번씩 핸드밀 뚜껑을 열어본다. 원두에서 나는 깊고 진한 향 때문에 커피를 마시기도 전에 기분이 좋아진다.


매번 신선한 커피를 마시기 위해 감내해야 하는 이 노동이 가끔 귀찮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핸드밀 손잡이를 돌리며 드르륵 소리를 듣는 일이 그리 싫지만은 않다. 오히려 맛있는 커피를 만들고 싶은 욕심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뜸 들이기


드리퍼에 장착한 종이필터에 분쇄된 원두를 넣고 물을 떨어뜨린 다음 잠시 뜸을 들인다.  이때 물을 너무 많이 부어서도 안되고 또 적게 부어서도 안된다. 뜸을 들이는 이유는 원두 안에 있던 가스와 공기를 빼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뜨거운 물이 커피 표면에 닿으면 봉곳하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는데 이때 물 붓기를 멈추고 30초가량 기다린다. 그 사이 나는 그라인더에 묻어있는 분말을 붓을 이용해 살살 털어내어 청소해 준다. 그라인더 안에 원두 찌꺼기가 남아 있으면 산화되어 매번 신선한 커피를 만들 때마다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커피 내리기


다시 드리퍼로 돌아와서 이번에는 뜨거운 물을 시계방향으로 부으며 커피를 추출한다.  자세를 잡으며 천천히 그리고 정성스럽게 물을 부어야 하지만 성격이 급한 나는 이 작업이 조금 어렵다. 그러나 커피 향과 맛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므로 심혈을 기울여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본다.


드리퍼에 물을 부으면 곧이어 드립 서버에 오늘의 커피가 쫄쫄 내려온다. 설레는 마음으로 커피잔에 커피를 따라 한 모금 마셔본다.


어? 어제 마셨던 커피맛 하고 다르잖아?


그랬다. 어제와 분명 다른 맛이었다. ‘이번에는 물을 조금 적게 부었나? 원두가 어제보다  많이 들어갔나?’ 내가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나 싶었다. 이렇듯 커피를 어떻게 추출하는지에 따라 맛이 조금씩 달라지고 다양한 맛이 난다는 점에서 핸드드립 커피에 매력을 느끼고야 말았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지금 삶과도 닮은  같기도 하다. 매일 같은 루틴을 반복한다 하더라도,  하루라도 매일 똑같은 하루를   없는 것처럼.





그동안 커피를 좋아한다고 했지만, 커피를 잘 알지 못했다. 커피를 내리며 나에게 가장 잘 맞는 맛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드립 커피세트가 주방에 자리 잡은 후부터는 왠지 내가 조금 더 부지런해진 것 같기도 하다.


원두를 갈고, 뜸을 들이고, 물을 부으며 만든 느릿하지만 정성이 담긴 커피 한 잔을 보고 있노라면 붕 떠 있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주어진 오늘 하루도 분에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 않게 보내보리라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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