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프라우킴 Jan 28. 2021

아랫집 이웃이 우리 집 초인종을 눌렀다

하루가 멀다고 층간 소음 피해를 다룬 기사를 접하고 있다. 기사를 볼 때마다 남의 일 같지 않게 여겨져 자꾸 움츠러든다. 한참 에너지가 넘치는 초등 남매를 키우고 있는 나도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쿵쿵 걷지 말고 살살 걸으라는 소리만 오늘 몇 번 했는지 모르겠다. 온종일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 있다. 몇 달 전 아랫집 아주머니가 한번 올라오신 이후로 더 그렇다.




얼마 전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는데 누가 초인종을 눌렀다. 인터폰 카메라를 보니 아랫집 아주머니다. ‘혹시 층간 소음 때문에 오신 건가?' 심장이 콩콩 뛰기 시작했다. 현관문을 열기 전 우리가 했던 모든 행동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늘 조심한다고 하지만 혹시나 놓친 게 없는지 돌이켜 보며 조심스레 현관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아랫집이에요."


"네... 안녕하세요."


"지금 우리 집 주방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고 있는데, 한 번 와서 봐주실래요?"


"네?? 물이 떨어진다고요?"


당황스러웠다. 층간 소음이 아니어서 다행이었지만, 물이 떨어진다는 말은 더 두렵게 다가왔다. 당장 우리가 조심한다고 해서 바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 것 같았다. 부리나케 마스크를 쓰고 아랫집으로 내려가 주방 천장을 살펴보았다. 천장을 올려다봤는데 물방울이 동그랗게 맺혀 조금씩 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얼마 전부터 천장의 석고보드가 점점 불어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물방울까지 맺혀 떨어지고 있다고 하셨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건지 알 길이 없었지만, 누수탐지 업체를 불러 최대한 빨리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고 집으로 올라왔다.


불행히도 원인을 쉽게 파악하지 못했다. 세 명의 누수탐지 전문가를 불렀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누군가는 화장실 바닥에 방수처리가 안 되었을 것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욕조 배관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고 했다.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모호한 말만 남겼다. 출장비로만 몇십만 원을 지급했지만,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어 내 속은 날마다 시커멓게 타들어 갔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몇 날 며칠을 동네 맘 카페를 수소문해 족집게 같은 누수탐지 업체를 찾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연락처를 간신히 알아냈다. 이번에 오신 분은 눈빛부터 달랐다. 매의 눈과 남다른 촉으로 누수 위치를  파악해 우리에게 알려주셨고, 결국 화장실 세면대 배관에 누수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집 인테리어 공사할 때 뭐가 잘못되었던 것 같은데요?”


“네? 공사한 지 꽤 됐는데... 어디가 어떻게 잘못된 건가요?


“세면대 배수관으로 이어지는 곳에 틈이 있어요. 그 사이로 물이 새어 들어가 아래층으로 떨어진 거예요."


답답했던 속이 뻥 뚫린 기분이었다. 제발 원인만이라도 찾기를 바랐는데, 족집게처럼 찾아 주셔서 어찌나 감사하던지.  


곧 작은 공사를 시작하기로 했다. 공사 후 물이 더 떨어지지 않는지 지켜본 다음 천장 도배와 마감을 하기로 했고, 아랫집은 천장 도배지를 뜯은 채 한 달 이상을 지냈다. 만약 우리 집 천장 일부분이 벗겨진 채로 지낸다면 기분이 어땠을지 상상해 보았다. 천장을 쳐다볼 때마다 뜯어진 도배지처럼 마음이 너덜너덜하지 않았을까..



마감공사 일정을 의논하기 위하여 아랫집으로 내려갔다. 떨어지는 물을 받으며 불편함을 감수한 채 지낸 아랫집 아주머니를 볼 면목이 없었다. 죄인이 된 심정으로 마음을 졸이며 초인종을 눌렀다.


“그래도 원인을 찾아서 다행이네요. 신경 써주고 도와주어서 고마워요.”


그 순간 내 눈과 귀를 의심했다. 마스크를 쓴 아랫집 아주머니는 원인을 찾아 다행이라고, 그리고 문제를 해결해 주어 고맙다는 말을 거듭 전해주시는 게 아닌가. 우리의 입장을 어떻게든 이해하시려는 듯한 너그러운 태도와 말은 지친 내 마음에 한 줄기 따스한 빛처럼 다가왔다.


지금은 아랫집 천장 공사도 마무리되어 문제가 잘 해결되었다. 그리고 나는 아랫집에 갚을 수 없는 마음의 빚을 진 채로 지내고 있다.


아랫집 아주머니를 보며 마스크로도 가려지지 않는 것이 있음을 깨달았다.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은 꼭 대단한 일이 있어야만 하는 건 아니었다. 따뜻한 말 한마디도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슬플 때는 슬프다고 말할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