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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우킴 Nov 19. 2020

슬플 때는 슬프다고 말할게요

2년 전 남편의 일 때문에 해외에서 생활하고 있을 때였다. 부모님은 외할머니가 계신 요양병원에 종종 들려 나에게 영상통화로 할머니 얼굴을 보여주시곤 했었다. 할머니 머리카락은 새하얗고 얼굴에는 잔주름이 많았지만,  웃을 때 초승달 모양이 되는 눈과 살짝 올라간 입은 세상 아름다워 보였다.


“할머니~저예요! 잘 지내시는 거죠? 보고 싶어요!”

“그래~ 오냐오냐. 잘 지내고 말고.”


조금씩 기력을 잃어가는 할머니의 목소리는 작게 들렸다. 얼른 달려가 할머니의 두 손도 만져주고 싶고 할머니를 꼭 껴안아 주고 싶은 마음이 불끈불끈 솟아오르곤 했다.

내가 어렸을 적부터 유난히 좋아했던 외할머니였다. 외할머니와 친할머니 두 분 모두 춘천에 살고 계셨는데, 명절 때 춘천에 가면 나는 외할머니 집에 더 오래 머물고 싶었다. 할머니가 나에게 특별히 잘해 주신 건 없었다. 엄마는 둘째 딸이었고, 나 말고도 손자 손녀들은 이미 많았지만 그냥 존재만으로도 따뜻하고 푸근한 할머니가 정말 좋았다. 가끔 할머니가 우리 집에 머무른다고 하시면, 며칠 전부터 흥분이 되어 잠도 설치곤 했었다. 학교 끝나고 집에 와서 책가방을 집어던지고, 소파에 앉아서 티브이를 보고 계시는 할머니한테 달려와 와락 안겼다. 그러면 학교 잘 다녀왔냐고 엉덩이를 두들겨 주시며 환한 얼굴로 맞이해 주셨다. 할머니가 우리 집에 계시면 집 안 가득 온기가 더해져 참 따뜻했다.

건강하게 잘 지내실 줄만 알았던 할머니는 나와 영상통화를 한 며칠 후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 소식을 듣고 아무렇지 않게 평범한 일상을 꾸려 나갈 자신이 없어서 고민 끝에 남편에게 양해를 구했다. 남편은 외할머니에 대한 나의 애정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았기에 흔쾌히 다녀오라고 했고, 장례식에 늦지 않게 하기 위해서 제일 빠른 일정의 한국행 비행기 표를 끊어 주었다.

비행기 안에서 할머니의 모습을 계속 떠올렸다. 할아버지와 오손도손 함께했을 때 할머니, 엄마를 낳은 할머니, 할아버지를 일찍 떠나보낸 할머니는 그동안 혼자 얼마나 외로웠을까 생각하니 눈물이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나왔다.

공항에서 바로 할머니 장례식으로 향했다. 부모님과 외삼촌 그리고 이모들이 함께 빈소를 지키고 계셨는데, 조문객을 맞이하느라 모두 분주하면서도 담담한 모습에 나도 애써 슬픔을 참으려 노력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할머니의 영정사진은 현실로 다가오지 못했다. 장례식에서는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만나지 못한 사촌들을 만날 수 있었고,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의 소식을 물어가며 인사를 나누었다. 한편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야 모두가 다 같이 한자리에 모이게 된 것이 참 아이러니하기도 했다.


유난히 아름다웠던 여름의 끝자락이었다. 매미의 울음소리가 가득 울려 퍼지는데 그 소리가 꼭 내 마음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았다. 모두가 담담하게 애써 참았던 슬픔이 할머니가 화장터에 들어갔을 때 터져버렸다. 할머니의 유일한 며느리였던 외숙모는 여러 가지 감정에 복받쳐 우시다 실신하셔서 응급실에 실려가게 되었고, 엄마를 비롯하여 외삼촌과 이모들은 할머니가 한 줌의 재가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다 슬픔을 견디지 못하셨다. 죽음이라는 것이 이런 거였을까. 너무나도 허망했고 아팠다. 이제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다는 희망이 사라져 눈물을 흘렸지만, 눈물로 슬픈 마음을 대변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상실감은 실로 너무 커서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때 그 시간을 다시 떠오르면 그래도 우리가 빠른 시간 안에 슬픔을 극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혼자가 아닌 함께라서 가능했던 것이었다. 엄마는 나와 내 동생이 있어서 얼마나 든든하지 모른다고 말씀하셨다. 엄마에게 형제가 많다는 사실이 또 다른 위로로 다가왔다.



할머니를 보내드리고 다시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언젠가 내 곁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또 이별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슬픔이 또 다른 슬픔을 낳아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러다 지금 이 순간, 내 곁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아끼고 사랑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떠나는 자는 말이 없지만 남겨진 사람들은 슬픔을 이겨내야 한다. 슬픔을 이겨내는 시간은 저마다 다 다르다. 누군가는 금세 털고 일어나지만 누군가는 평생 슬픔의 짐을 안고 살아가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살기로 했다면 언젠가는 극복해야만 한다.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라면, 슬픔의 터널에서 조금 더 빨리 빠져나올 수 있을 거라 믿고 싶다.

몇 달 전 동생과 함께 춘천에 다녀왔다. 할머니가 사셨던 곳이 아직 재개발이 안되어 어쩌면 그대로 보존되어 있을 수도 있다고 들었지만, 가지 않았다. 아직 내가 할머니를 완전히 보내드리지 않은 것 같아 그 집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하지만 언젠가 그 집 현관문 앞에 서서 추억을 되새기고 싶다. 할머니가 사무치게 그리운 날에는 다시 찾아가 할머니 집 마당에서 뛰어놀던 그 시간을 떠오르며 할머니에게 안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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