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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우킴 Nov 05. 2020

육아는 마라톤이다

어린 아가를 아기 띠에 매고 동네 마실 다닐 때, 어르신들이 누누이 말씀하셨던 “ 아이고, 이쁘다. 지금이 제일 이쁠 때야.”의 뜻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되니 기저귀 시절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확실히 내 몸이 많이 자유로워 진걸 느낀다. 하지만 육아는 늘 그래 왔듯이, 커다란 관문을 하나 통과하면 또 다른 관문이 언제나 턱 버티고 있다. 몸이 편해지니 이제 마음이 불편할 때가 온 걸까. 내가 만난 새로운 관문은 아이의 감정과 나의 감정이 서로 충돌할 때 슬기롭게 대처하는 미션 같은 것이다. 이 미션을 지혜롭게 통과하면 마른 잔디에서 편하게 뒹구르르 할 수 있을 것이고, 통과하지 못하면 결승선이 어딘지도 모른 채 진흙탕에서 계속 뛰어야 할 수도 있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감정 형태가 다양해진다. 특히 아이들의 부정적인 감정들과 맞서야 할 때 난 극도로 예민해지는 걸 느꼈다. 조금은 덜 예민한 성향의 엄마를 만나면 좋았을 것을. 아이가 짜증 낼 때, 울 때, 고집 피우는 상황에서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 전에 이미 짜증 섞인 말투가 툭 튀어나온다. 또 어떤 날은 하루 종일 기분이 바닥을 쳐 다시 올라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 날이 있다. 호르몬 때문에 그럴 거라는 진부한 핑계는 대고 싶지 않지만, 이미 내 안에 복잡하고 불편한 감정이 켜켜이 쌓여있을 때가 있다. 그런 날은 아이는 영문도 모른 채 그냥 그런 엄마를 마주해야 한다. 엄마가 기분이 안 좋은 걸 눈치챈 아이는 불안감을 느끼는지, 엄마에게 웃어보라고도 하고 갖은 애교와 재롱을 부린다. 이럴 때 포커페이스라도 되어야 하는데 알량한 자존심이 그마저도 허락하지 않을 때가 있다.


아이와 부모는 몇 년 짧게 만나고 끝나는 사이가 아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은 방대하다. 유년기,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이 되면 언젠가 새 가정을 꾸릴 테고, 또 아이를 낳아 기를 것이다. 그러면 아이는 어렸을 적부터 부모에게 보고 느낀 양육법을 무의식 속에 기억하고 있다가 실제로 아이를 키우면서 자신이 어렸을 적 경험했던 시간을 자꾸 떠오르게 된다. 부모님을 생각하면 1년 365일 언제나 상냥한 말투와 애정이 가득 담긴 눈으로 나를 어르고 달래지는 않으셨다. 부모님도 상황에 따라 환경에 따라 어린 자식들에게 말과 행동으로 상처를 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부모님의 진실된 마음과 사랑이 순간의 부정적인 순간을 상쇄할 만큼 지속적으로 컸다면, 아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따뜻했던 경험의 기억으로 힘을 얻고 살아가는 게 아닌가 싶다.


감정은 본능에서 비롯되어 완전히 이길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내 감정을 들여다보고 부정적인 감정의 원인이 무엇인지 성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이의 감정과 나의 감정을 분리하고, 나의 부정적인 감정을 고스란히 아이에게 흘려보내지 않도록 꾸준히 의식해야겠다. 자칫하면 내 아이를 나의 감정 쓰레기통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아이는 채워져 가는 쓰레기통을 어떻게 비워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하며 살아야 할 수도 있을 테니까.


© awcreativeut, 출처 Unsplash


육아는 마라톤이다. 단기간에 승부를 낼 수 있는 게임이 아니다. 아이와 오랜 기간 동안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부모가 저지른 잘못을 어떻게 처리하는 것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권위와 자존심을 끝까지 내세워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체면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엄마는 결코 완벽한 존재가 될 수 없고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아이에게 알려줄 것인가. 나는 후자를 선택하고 싶다. 엄마도 부족한 사람이야, 감정처리에 성숙하게 대처하지 못해서 미안해라고 사과하고 부족한 부분을 아이 앞에 인정하는 건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오히려 아이와 연결된 사랑의 끈을 오랫동안 놓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믿고 싶다.


엄마도 처음부터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으니 그렇게 엄마도 아이와 함께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며 성장해나가는 게 아닐까. 아이에게 순간의 잘못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죄책감을 느끼고 후회하고 자책하여 눈물을 흘리는 건 또 엄마 아니겠는가.


상처가 곪아 터지기 전에 미리 예방하자. 매번 아이와 똑같은 감정으로 엄마가 날을 세운다는 것은 진흙탕에서 계속 마라톤을 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내 감정이 방치되고 있지 않은지 나를 충분히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그리고 아이에게 잘못한 게 있다면 진심을 담아 사과하는 것이다. 엄마의 진심이 담긴 포옹은 아이를 행복하게 해 준다. 아이는 엄마의 마음을 누구보다 더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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