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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우킴 Oct 12. 2020

가을 운동회날 있었던 일

햇살이 눈부셨던 가을날, 우리는 운동장 한가운데 모였다. 음악에 맞춰 빙글빙글 돌다가 꽃 모양을 만들었다가 파도타기를 만들었다. 6학년 여자 친구들은 곧 다가올 가을 운동회 날 전교생 앞에서 부채춤을 출 예정이었다. 그 당시 우리 반 담임 선생님이 행사를 담당하셨다. 일 년에 딱 한 번 있는 연례행사라 긴장을 많이 하셨는지, 선생님은 학교 수업 시간에도 방과 후에도 우리들을 불러 모아 쉴 새 없이 연습을 시키셨다. 선생님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우리는 최선을 다했고, 반복되는 연습 덕에 부채춤은 일취월장했다.


운동회 당일 우리는 얼굴에 연지 곤지를 찍고, 머리에는 족두리를 쓸 예정이었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집에 있는 한복으로 각자 입고, 부채를 꼭 챙겨서 등교하라고 일러주셨다.  운동회날을 앞두고 엄마는 옷장에서 오랫동안 묵힌 한복을 꺼내 나에게 한번 입혀보셨다.


"어머나! 왜 이렇게 작아졌니! 이거 아까워서 어째...”


"그러게.. 너무 짧아졌네. 그럼 엄마, 나 한복 새 걸로 하나 사줘."


"뭘 사니.. 그냥 입지. 어차피 운동회날 딱 한 번만 입고 말 건 데, 그냥 입어라."


"싫어. 이렇게 짧아진 걸 창피해서 어떻게 입어? 나 안 입어!”


일 년에 한두 번 입을까 말까 한 한복은 이미 내 것이 아니었다. 한복 저고리는 그렇다 치고 한복 치마 끝자락은 내 발목 위로 껑충 올라와 있었다. 나는 한참 폭풍 성장 중이었다. 이럴 때 언니가 있으면 언니 옷이라도 빌려 입을 수 있었을 텐데. 나에게는 여동생 말고는 언니는 없었다. 작아진 한복을 입기 싫어 징징거리는 나를 보고 엄마는 좋은 생각이 있다며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나도 별생각 없이 엄마를 믿기로 했다. 엄마가 어디서 이쁜 새 한복을 사 오시리라 내심 기대하면서.


“엄마, 내 한복 어딨어?”


"이리 와봐, 이거 한번 입어봐! 엄마가 만든 거야."


엄마는 며칠 전 보여줬던 같은 한복을 내게 내미셨다. 분명 같은 한복이긴 한데 뭔가 이상해진 게 분명했다.


"이게 뭐야 엄마? 왜 치마 끝에 색이 달라? 너무 이상하잖아! 이걸 어떻게 입어??!"


“이쁘지 않니? 엄마 눈에는 너무 이쁜데?”


“하나도 안 이뻐! 진짜 이상하단 말이야!”


원래 나의 치마는 연노랑색이었다. 엄마는 집에 있던 진분홍색 천을 덧대어 내 발목 길이에 맞춰 길게 만든 것이었다. 엄마가 밤을 족히 새우며 손바느질했을 거라 짐작했지만, 치마를 본 순간 나는 엄마에게 대뜸 짜증을 냈다. 그냥 새 한복을 하나 사주면 될 텐데, 왜 굳이 엄마는 고생을 사서 마음에 들지도 않는 치마를 만드셨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른 친구들이 입는 한복이랑 모양이 다를 거라고 생각하니 순간 창피해져 울음이 터져 나왔다.


운동회날 난 싫으나 좋으나 그 한복을 입고 학교에 가야 했었다. 친구들이 내 한복을 보고 이상하다고 뭐라 할까 봐 조바심이 났고, 다른 사람들 눈에 띄는 게 겁이 나 의기소침해져 있었다. 하지만 정작 내 한복 치마에 관심 가져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각자 이쁘게 보이기 위해서 연지 곤지 찍고 머리 장식하느라 정신이 없었을 뿐.


우리 차례가 되어 운동장으로 입장했다. 형형색색 한복을 맞춰 입은 여학생들이 하나 둘 모이니 학부모들과 선생님들은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나는 내 한복 치마 때문에 신경이 쓰인 나머지 연습 대비 실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다.


6학년 마지막 운동회는 그렇게 끝났다. 그때 찍은 사진을 보면 내 표정은 정말 어색하기 짝이 없다. 웃는 건지 안 웃는 건지 가늠하기 어렵다. 엄마가 직접 디자인했던 한복 치마도 보았다. 생각보다 그렇게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연노랑에 검은색도 아니고 파란색도 아닌, 그나마 파스텔 계열인 진분홍이라 멀리서 보면 원래 디자인이 저렇게 생겼거니 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 tatatoto26, 출처 Unsplash

유난히 짜증이 많고 예민했던 13살 소녀는 이제 사춘기 딸을 키우는 엄마가 되었다. 내 기준에 맞지 않다고 툴툴대기만 했던 엄마의 방식은 그 시절 엄마가 처한 환경에서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지금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가히 흉내도 낼 수 없는 엄마의 지혜임을.


요즘은 클릭 몇 번으로  다음날 아침 문 앞에서 원하는 물건을 즉시 받아 볼 수 있다.  돈만 있으면 참 편리한 세상이다. 물질적인 욕구를 쉽고 빠르게 충족할 수 있는 이 세상에서 아이들은 어떤 기억을 가지고 살아갈까.


어렸을 적 기억을 떠올릴 때 마음 한편이 따뜻하게 채워지는 에피소드 하나쯤은 있었으면 좋겠다. 세월이 흘러 희미하게 남아있지만 생각만 해도 입가에 옅은 미소가 머무를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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